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육사 수석졸업' 23세女, 알고보니 남친이…





육사 수석 졸업 양주희 소위













학예사나 초등학교 교사가 되고 싶었던 제주 소녀는 고등학교 3학년 때 꿈을 군인으로 바꿨다. 학교로 찾아온 육군사관학교 생도의 “조국을 위해 일해보자”는 말에 필이 꽂혔다. 최선을 다해 육사에 지원했으나 보기 좋게 떨어졌다. 원래 꿈꾸던 곳으로 돌아가야 하나 갈등하던 순간 예비 합격자로 간신히 구제됐다. 자연히 입학 성적은 동기생 237명 중 237등. 끝자리를 겨우 붙잡았던 소녀는 그러나 4년 뒤엔 ‘13-10001’이란 군번을 받았다. 2013년도 1번, 즉 수석이란 뜻이다. 양주희(23·여·육사 69기) 소위가 그 주인공이다.



군에 여풍(女風)이 거세다. 8일 계룡대에서 진행된 육·해·공·해병대 합동 임관식에서 양 소위는 역시 여성인 박근혜 대통령에게 대통령상을 받았다. 수석 졸업생에게 주는 상이다. 양 소위와 함께 박기은(23·여) 소위도 4600여 명의 학군사관(ROTC) 후보생 가운데 수석을 차지했다.



 육사 수석은 지난해에도 여성인 윤가희(25) 중위였다. 비록 양 소위는 ‘개교 이래 첫 여자 수석’이란 타이틀은 윤 중위에게 내줬지만 꼴찌로 입학해 수석으로 졸업하는 의미 있는 기록을 달성하면서 군에 여풍을 확산시켰다. 4년 전 꼴찌로 육사에 입학할 때 이런 순간이 오리라고 생각했을까. 6일 계룡대에서 합동 임관식 행사 예행연습을 하고 있던 양 소위를 만났다.



 - 육사 입학 때부터 주위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던데.



“이제는 꼴찌로 육사에 들어간 걸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합격 소식을 가입교(기초군사훈련을 위한 소집. 가입교에 참석하지 않으면 합격을 취소한다) 당일 오전 9시 넘어서 받았다. 부랴부랴 짐을 싸고, 길었던 머리를 깎고, 안경도 하나를 더 여분으로 맞춰 서울로 가기 위해 공항에 갔는데 설 연휴 다음날이라 비행기 표가 없었다. 대기자로 이름을 올려놓고 있는데 1등석이 나와 오후 8시 육사에 (동기생도 가운데) 마지막으로 도착했다. 그러니 내가 꼴찌라는 걸 모두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선배 생도가 ‘좋지 않은 성적으로 들어와 잘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격려해준 기억이 난다.”



- 입교 첫날 기분이 어땠는가.



“어떻게 말로 할 수 있겠나. 천신만고 끝에 들어왔으니 밤에 잠이 오질 않았다. 앞으로 어떻게 생활해야 잘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잘해야겠다고 다짐하다가 그냥 잠들어버렸다.”



 - 육사에 지원한 이유는.



“매년 3월 말에서 4월 초 육사 생도들이 모교를 방문해 홍보 활동을 한다. 고3 때인 2008년 육사 생도들을 보고 동경하게 됐다. 내가 다니던 제주 신성여고 선배 가운데는 육사 생도가 없어 인근 남자학교인 오현고를 졸업한 생도가 찾아왔다. 회색 제복을 입고 왔는데 너무 멋있었다. 그 선배가 ‘자기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는 게 보람 있고 뿌듯하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순간 전율이 느껴졌다. 그때까지 진로에 대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게 내 길이구나’ 하는 결심이 섰다.”



- 체력검정을 준비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원래 문화재에 관심이 많아 학예사가 꿈이었다. 인권 변호사나 선생님도 생각하고 있었다. 정확히 진로를 결정하지 않고 공부만 하고 있었는데 육사에 관심이 생기면서 육사만 바라보고 준비했다. 참고서마다 육사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며 공부를 엄청나게 했던 기억이 난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매일 오후 7시 집 주변의 헬스장을 찾아 러닝머신을 뛰고 근력 운동을 했다.”



- 예비 합격자로 입교했는데 성적이 어땠나.



“1차 필기시험과 2차 체력검정은 통과했는데 3차인 수학능력시험 성적이 좋지 않았다. 합격자는 오전 8시를 전후해 휴대전화 문자로 알려주는데 연락이 없었다. 오로지 육사만 바라보고 달려와 낙담이 컸다. 재수를 해 다시 도전하려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고민하다가 ‘나의 꿈에 초등학교 선생님도 있었으니 교대를 가는 것도 괜찮을 거야’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래도 육사에 대한 미련이 남아 인터넷을 뒤져보니 가입교 전날까지 연락이 오면 입학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런데 가입교 전날까지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자정이 지나도 연락이 없어 마지막 끈을 놓아야 할 것 같았는데 가입교 당일 오전에 연락을 받은 것이다. 아침에 어학원에 있었는데 부모님이 ‘육사에서 연락을 받았다’고 하시더라. 사기 전화인 줄 알았다. ‘그런 전화에 속으면 안 된다’고 했는데 정말이더라.”



꿈에 그리던 육사에 꼴찌로 들어간 양 소위는 하루 3~7㎞를 뛰고, 매일 새벽 1~2시까지 책을 놓지 않았다. 그 결실은 한 학기 만에 나타났다. 1학년 1학기 성적은 동기생 237명 가운데 8등. 한 학기 뒤엔 5등으로 올랐다. 수석의 징조가 보이기 시작했다. 2학년 때부터 1, 2등을 했다. 3학년 때는 직책도 맡았다. ‘보급보좌관’ 생도를 했다. 보급품을 분배하고 서류를 작성하는 일이었다. 4학년 1학기 때는 중대장을 했다.



- 수석을 하고 나니 어떤가.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청와대 경호실 요원들이 행사장 주변을 점검하고 다니는 걸 보니 설레고 떨린다. 뛰어난 동기가 많은데 수석을 차지한 건 영광스러운 일이다. 다만 수석은 뭔가 다를 것이라는 주변의 시선이 부담스럽다. 하지만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군 생활을 통해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다.”



- 최초의 여성 국군통수권자가 주는 상을 받는데.



“여성이 체력적으로는 떨어질 수도 있지만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대통령님의 응원이라 생각한다. 한계도, 힘든 일도 있겠지만 잘 극복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 성적이 올라간 비결은.



“그냥 열심히 했던 것 같다.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는데, ‘절대 수업시간에 졸지 마라’는 것이다. 새벽 1시를 전후해 자고 오전 6시에 일어나 하루 종일 수업과 체력단련, 공부를 하다 보면 피곤하다. 그래서 수업시간에 조는 경우가 있는데 참아야 한다. 학기 초에 나오는 시험과 학업 스케줄을 달력에 표시해두고 능동적으로 준비해나가야 한다. 내 경우엔 그게 주효했던 것 같다.”



- 힘들었던 훈련은.



“2학년 때 받았던 공수훈련이 힘들었다. 우선 수백m 공중에서 뛰어내릴 때 나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았다. 2학년 때 네 번을 뛰었는데 헬기에서도 뛰고 코끼리라 불리는 기구(氣球)에서도 뛰었다. 마지막 낙하 때는 왼쪽 다리가 골절돼 한동안 깁스를 해야 했다. 훈련 후 중국 탐방을 갔는데 처음엔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열외를 신청했는데 그냥 가라고 하더라. 백두산 등정 때 마지막 부근에서 훈육관님이 저를 업고 백두산을 올라갔다 왔다. 지상훈련 때는 ‘얼차려’를 엄청나게 많이 받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생도 시절이다.”



특전사에는 공수훈련을 위한 기구가 3개 있다. 기구의 모양이 코끼리처럼 생겨 군에선 코끼리라 부른다. 지상에서 기구를 타고 200m 이상을 올라가 뛰어내리게 돼 있어 헬기나 수송기보다 더 공포심을 느낀다고 한다.



양 소위는 인터뷰 내내 웃음을 보이며 또박또박 질문에 답했다. 그는 4년 동안 미팅을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고 했다. 인터뷰 때도 그는 전투복을 입고 나왔다.



 - 친구들은 한창 멋 낼 나이에 전투복을 입은 게 후회스럽지 않았나.



“방학 때 훈련을 마치고 친구들을 만나면 나는 새까맣게 타 있고, 친구들은 화장도 하고 뽀얀 얼굴이어서 부러울 때도 있었다. 힘들 땐 이불 속에서 펑펑 울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걸 나는 하지 않았나. 토요일 외박을 나가면 친구들 옷을 빌려 입고 명동에서 영화나 연극을 보면서 나름 여대생의 생활도 즐겼다. 그러나 전투복이 제일 편하더라. 그런데 전투화를 많이 신다 보니 새끼발가락이 전투화에 쓸리면서 발톱이 앞으로 자라지 않고 위로 두툼해지더라.”



- 미팅은 왜 안 했나.



“(웃으며)1, 2학년 때는 학업에 집중했고 3학년 때 동기생이 프러포즈를 해 왔다. 그와 교제하며 많이 의지했다. 육사 생활에 힘이 됐다.”



- 교내에서 교제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동기생 커플이 나 말고 또 있다. 선후배 커플도 있고. 주말엔 외출을 하니 그때를 많이 이용해 교제했다. 학교 안에서 잠깐씩 마주칠 때는 눈인사 정도밖에 못했다.“



 육사는 최근 1학년을 제외한 생도들의 교내 교제를 허용했다. 1학년 생도들은 주말에 일반 대학생들을 면회 형식으로 초대해 육사 안에서 미팅을 하기도 한다.



 8일 임관한 양 소위는 광주 상무대로 이동해 6월 중순까지 소위를 대상으로 하는 초군반 훈련(전술 훈련, 참모 업무, 부대 관리 등)을 받고 6월 중순께 1사단에 배치된다. 그는 “부대원들과 함께하는 소대장이 되고 싶다”며 “군에서 내쫓지 않는 한 높은 계급까지 올라가 국가와 국민에게 봉사하는 군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글=정용수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