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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경의 취리히통신] 남편과 시부모 2시간 ‘전화 수다’ 스페인 사람들, 왜 이러는 걸까요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한 장면. 학교에서 돌아온 빌리가 혼자 방에 들어가 로열발레학교에서 온 통지서 결과를 확인하고 있다. [중앙포토]


스티븐 돌드리 감독의 2000년작 영화 ‘빌리 엘리어트’를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영국 북부의 탄광촌에서 광부인 아버지와 함께 사는 11살 소년 빌리는 권투를 배우기 위해 체육관을 찾았다가 발레하는 소녀들을 보게 됩니다. 하늘거리는 발놀림에 본능적으로 이끌린 빌리는 발레 선생님인 윌킨슨 부인의 격려 속에 발레를 배우기 시작합니다. ‘뼛속까지 남자’인 아버지는 기겁을 하고 아들을 말리러 나서지요. 하지만 그도 곧 빌리에게 남다른 재능이 있다는 걸 알고 지지를 보냅니다.



 파업 중인 탄광촌에서 태어난 한 마리 백조의 성장을 그린 이 영화는 무척 감동적입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어른이 된 빌리가 백조 분장을 하고 어깨 근육을 꿈틀대며 무대로 뛰어들 준비를 하는 부분은 압권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본 부분은 따로 있습니다.



 빌리는 런던의 로열발레학교 입학 시험을 본 뒤 결과를 애타게 기다립니다. 마침내 통지서가 집에 도착했는데, 빌리는 아직 학교에서 돌아오기 전입니다. 할머니와 아버지와 형은 궁금해 미칠 지경이죠. 하지만 봉투를 열어보지 않습니다. 집에 온 빌리는 탁자 위에 놓인 통지서를 들고 혼자 방으로 들어갑니다. 거실엔 터질 듯한 침묵이 흐릅니다. 참다 못한 아버지가 방문을 열었고, 다음 장면에서 아버지는 환호의 비명을 지르며 동네 거리를 내달립니다.



 전 빌리가 부러웠습니다. 로열발레학교에 합격해서가 아니라 11살 소년에게 ‘편지를 혼자 뜯어볼 권리’, 그러니까 빌리의 ‘사생활’을 인정해준 가족이 있어서요. 한국의 부모라면 어땠을까요? 외고나 대학의 합격통지서가 자녀가 없을 때 집에 도착했다면 자녀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 무거운 결과를 홀로, 먼저 받아들이게 할 부모가 몇 명이나 될까요? 어렸을 때부터 일기장 검사를 하고, 학원 시간표를 부모가 직접 짜 아이를 실어 나르며, 취업과 결혼 준비까지 제 일처럼 간섭하는 부모들인데요.



 궁금해서 남편에게 물어봤습니다. 스페인에서도 혹시 어릴 적 부모나 교사가 일기장 검사를 하는지 말입니다.



 “일기장 검사라니? 내가 일기를 쓰는지 안 쓰는지 다른 사람은 몰라야 하는 거 아냐?”



 네, 물론 이곳 스위스에도 학원은 있지만 부모가 학원으로 아이를 실어 나르진 않습니다. 자녀 결혼 준비에 부모가 나서는 일도 없고요. 남편과 저는 결혼 날짜를 정하는 것에서부터 집과 세간살이 장만까지 모두 저희 스스로 알아서 했습니다.



 남편과 시부모님의 관계는 한국인인 제 눈으로 봤을 때 조금 독특하긴 합니다. 남편은 부모를 ‘어머니’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이름을 부르지요. 혹 건조한 관계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남편은 매주 일요일 아침이면 저희가 사는 스위스에서 시부모님이 계신 스페인으로 전화를 걸어 두 시간 넘게 수다를 떱니다. 통화가 끝난 뒤 제가 “뭐 그리 할 말이 많으냐”고 물으면 “친구니까, 친구한텐 밀린 말이 많잖아”라며 웃습니다.



 세상 모든 관계가 그렇듯, 부모와 자녀 사이도 적당한 거리가 있을 때 더 건강해지는 것 같습니다. 이를 소설가 김영하가 『옥수수와 나』에서 절묘하게 표현했더군요.



 “요즘 어떤 엄마들은 아들을 ‘아들’이라고 부르더라. 나는 그럴 때마다 그 엄마들이 어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 것 같아 아슬아슬해. 아들이라고 부르는 순간, 엄마와 아들 사이에 어떤 완충지대도 없어지는 거야. 섹스 파트너라는 말도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내 말은 프라이팬에 뭘 구우려면 말이야, 먼저 기름을 둘러야 한다는 거야. 그래야 서로 들러붙지를 않지.”



김진경 특파원 jeenkyung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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