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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추억도 모으면 돈이 된다

강홍준
논설위원
정확히 34년 전 원고였다. 세월이 꽤 된 탓에 용지는 누렇게 변했으나 보관 상태는 좋았다. 겉표지는 ‘로봇 찌빠. 신문수 글·그림’. 원로 만화가 신문수(74) 화백은 경기도 분당 작업실에서 하나도 버리지 않고 모은 거라며 자랑스럽게 원고를 보여줬다.



 1979년 ‘소년중앙’ 연재. 2010년 KBS TV 애니메이션으로 리메이크. 현재 40대는 물론이고 그 이하에게도 오랫동안 인기를 모았던 만화 콘텐트다. 79년 별책부록으로 나온 1권의 원고 첫 장은 이렇게 번듯하게 살아 있었다.



 “인터넷·e메일이 없던 70년대엔 만화가가 직접 원고를 들고 신문사나 출판사에 갔고 잡지에 실린 원고는 그냥 쓰레기통에 버려졌어요. 그런데 나는 그걸 다 받아 모아둔 거예요.”



 인공로봇이긴 한데 회로에 이상이 생긴 건지 뭔가 모자란 찌빠. 미국 연구소를 탈출해 팔팔이네 집에 찾아온 찌빠는 옛 10대들에게 잠시나마 허탈한 웃음을 던져준 캐릭터다. 72년 ‘어깨동무’에 그렸던 공전의 대히트작 ‘도깨비 감투’도 육필 원고로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이렇게 어느 우연치 않은 자리에서 추억거리를 만나게 되면 옛 감성이 되살아난다. 만화와 만화방에 얽힌 추억, 링 노트에 긁적이던 만화의 습작과 이걸 발견하고 놀라 뒤로 넘어지는 엄마 또는 선생님의 기억까지도.



 과거의 감성은 경쟁과 속도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따뜻함을 준다. 주변 어디를 돌아봐도 서늘한 긴장감뿐인데 옛 기억과 감성을 퍼올리면 그걸 공유할 수 있는 사람과 친구가 된다. 이제 먹고살 만해지니까 잠깐 동안 떠올리는 추억의 되새김질이 아니다. 숨가쁜 세상을 사는 힘을 주기도 한다. 현재 30대가 지난해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 열광했듯이 복고와 빈티지는 열풍이자 이 시대를 특징 짓는 현상이다.



 그렇게 보면 어느 세대나 그들이 공유하는 추억거리와 감성이 있다. 중·장년층 회원 수만 8000명가량 되는 ‘클로버문고의 향수(클향)’라는 동호회가 72년부터 84년까지 어문각에서 발행한 ‘클로버문고’를 복원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들 역시 같은 추억을 공유해 각박해진 세상을 꿋꿋하게 살아갈 이유를 찾으려 한다.



 그런데 추억할 거리가 갈수록 진귀해지면서 돈도 되고 있다. 하나의 사례만 말하겠다. 70, 80년대 풍미했던 잡지 ‘소년중앙’은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가 없다. 오재록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원장은 “부천에 있는 만화 박물관에도 20여 권 정도밖에 없는 게 소년중앙”이라고 말했다.



69년부터 94년 폐간할 때 이 책을 발행한 중앙일보도 전 권을 다 보유하고 있지 않다. 게다가 70, 80년대 아이들의 혼을 빼놓았던 별책부록도 마찬가지다. 책이 낡아 네 귀가 다 떨어져나간 ‘소년중앙’ 한 권이 경매에서 28만원에 팔렸다. ‘소년중앙’ 500권을 묶어 1억3000만원에 팔겠다는 경매도 있었다고 한다.



 옛 만화가 돈이 되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귀중본으로 여겨지던 만화를 대했던 당시 어른들의 태도 덕분이었다. 학교에서 만화는 학교 앞에서 파는 불량식품과 같은 취급을 당했다. 친구들 사이에서 돌려다 보다 빼앗기는 압수물품이었다. 집에서는 공부에 당최 도움이 안 되는 방해꾼이라고 여겨졌다. 그래서 매주 학교에 가져다 내야 하는 폐품 목록에 들기까지 했다.



 지금은 한자나 영어·중국어까지 익히는 학습 만화만이 남아 있다. 강렬한 색상으로 아이들의 눈을 사로잡아 뭔가를 도저히 까먹을 수 없게 만드는 학습 콘텐트다. 또한 PC나 스마트폰으로 잠깐씩 보는 웹툰이 대세다. 눈만 뜨면 공부, 공부 소리만 하는 요즘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허용해주는 유일한 숨통이랄까.



 단어를 외우는 데 또는 시험 성적을 올리는 데 도움을 주는 학습 만화나 웹툰의 생명력이 얼마나 갈지 아직은 알 수는 없다. 다만 잠깐이나마 공부 시름 잊고 침 발라가며 종잇장을 넘기던 때만큼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추억은 모으면 돈도 된다. 그것이 종이신문, 종이잡지라면 더욱 가치 있겠다.



강 홍 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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