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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넘보는 차이나 파워의 두 얼굴



전 세계 국경을 넘나드는 중국의 자본과 노동력은 다른 나라의 경제 성장을 돕는 약이 되기도 하고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는 독이 되기도 한다. 최근 유럽에선 부동산 투자를 기대하며 중국인을 열렬히 환대하는 지역이 생겨났다. 그러나 중국인 때문에 전통 산업이 무너졌다는 비난이 쏟아져 나오는 나라도 있다. ‘차이나 파워’의 명암이 선명하게 펼쳐진 유럽의 현장을 살펴본다.

거실 창으로 사파이어 빛깔의 지중해가 펼쳐지고, 뒤편에 18홀 골프장이 맞닿아 있는 바닷가 언덕의 지하 1층, 지상 2층의 빌라. 부동산중개업자 게오르게 요아누는 “110만 유로(약 15억6000만원)만 내면 당장 인수 가능하다. 내부 구조는 원하는 대로 바꿔 줄 수 있다”고 열심히 설명했다. “좀 비싸다”고 하자 “바다가 안 보이는 쪽이면 50만 유로짜리도 있다”며 앞장설 채비를 했다.

영주권 따면 유럽 거주와 세금·학비 혜택
지난달 22일 지중해 섬나라 키프로스의 남서부 해안도시 파포스를 찾아갔다. 중국인 부동산 투자 열기가 한창 뜨거운 곳이다. 공항을 나서자 순환고속도로 입구에 대형 부동산 광고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중엔 “바다가 보이는 빌라를 30만 유로(약 4억2000만원)에 판다”는 뜻의 중국어가 적혀 있었다. 중국어 간판은 라르나카∼파포스 고속도로(130㎞) 구간에서 2∼3㎞마다 등장했다. 황인종 부부가 아들딸 두 자녀와 함께 행복한 표정을 짓는 광고판도 눈에 띄었다. ‘둘째 아이는 이곳에서 키우라’는 뜻으로도 해석됐다. 1가구 1자녀 정책을 고수하는 중국 정부는 한족(漢族)의 경우 둘째 아이 출산을 금지하고 있다.
호텔 입구에서 객실로 안내하던 직원은 머뭇거리다 “파포스에 왜 왔느냐”고 물었다. 부동산 사러 온 중국인으로 여기는 눈치였다. “집을 좀 보러왔다”고 대꾸했다. 그러자 “친척이 파포스에서 제일 큰 부동산회사 직원”이라며 즉석에서 전화를 걸어 약속을 잡았다.

호텔로 찾아온 아일랜드 출신의 중개업자 수전 브래디에게 맨 먼저 이끌려 간 곳은 중국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다는 아파트 단지였다. 300채의 아파트 중에 40채가 중국인에게 팔렸고 6채만 분양이 안 됐다고 했다. 단지 안에 수영장·헬스클럽이 있었다. 방 두 개짜리가 36만 유로, 방 세 개짜리는 49만 유로였다.

브래디는 “집을 사면 영주권은 빠르면 4주, 늦어도 8주 안에 나온다”는 말을 반복했다. “집을 팔지 않는 한 영주권은 영원히 소멸되지 않는다”고도 했다. 키프로스 정부는 지난해 8월 30만 유로 이상의 부동산을 구입하는 외국인에게 영주권을 주기 시작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반년 새 약 2000채의 집이 중국인에게 팔렸다. 그중 실제로 중국인이 거주하는 집은 10%도 안 된다고 한다. 영주권이 진짜 목적인 것이다. 유럽연합(EU) 회원국인 키프로스는 인구 80만 명의 소국이다.

키프로스 영주권은 EU 내에서의 자유로운 왕래를 보장한다. 중국인들은 유럽 국가에 가려면 한국인과 달리 사전에 별도 비자를 받아야 한다. 유럽에 이미 정착한 중국인에게 키프로스 영주권은 소득세를 줄이는 수단으로 쓰인다. EU 다른 나라에서 사업을 해도 키프로스 거주자로 등록돼 있으면 세율이 낮은 키프로스에 개인 소득세를 내면 된다. 자녀 유학에도 도움이 된다. 영국 대학들은 EU 거주자의 학비를 자국민과 동일하게 받는다. EU 바깥에서 오는 유학생 학비의 절반 정도다. 브래디는 “이틀 전에 상하이(上海)에서 온 고객은 미국의 좋은 대학에 아들을 유학 보내려 집을 샀다”고 말했다. 미국 명문대 지원 때 중국인보다 유럽인이 유리하다는 생각이 작용했던 것으로 짐작됐다. 일부 미국 대학은 중국 유학생 비율이 너무 높아지자 입학생 숫자를 통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파포스에서 만난 부동산중개업자들은 관광이나 식사를 제의하며 환심을 사려고 애썼다. 중국인으로 가장한 덕분에 받은 융숭한 대접이었다. 하지만 키프로스에서처럼 중국인들이 늘 유럽인의 환영을 받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역 주민과 갈등을 빚는 곳도 많다. 이탈리아 중부 도시 프라토가 대표적이다.

프라토 장악한 저장성 원저우 출신들
지난달 25일 프라토 서남부의 공단지역을 돌아봤다. 듣던 대로 중국어 간판을 내건 의류공장이 셀 수 없이 많았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 지역에는 약 4000개의 중국인 의류업체가 자리 잡고 있다. 중국 원단을 수입해 중국인 노동자가 옷을 만든다. 생산제품에는 ‘메이드 인 이탈리아(Made in Italy)’라고 적힌 라벨이 붙여져 대부분 중국으로 수출된다.



이 지역에 중국인 옷 공장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약 10년 전이라고 한다. 이탈리아 직물공장이나 의류업체에서 일하던 중국인들이 스스로 독립해 가내수공업 형태로 옷을 만들기 시작했다. 장사가 잘되자 공장 수는 점점 불어났고 중국 대륙에서 친척·친구가 몰려왔다. 이 지역의 중국인은 대부분 ‘중국판 유대인’이라 불리는 저장(浙江)성 원저우(溫州) 출신이다. 상술이 뛰어나고 결속력이 강하다.
프라토시에 등록된 중국인 거주자 수는 9600여 명. 하지만 실제로는 3만∼4만 명이 사는 것으로 추정된다. 인구 20만 명 소도시의 거주자 중 10% 이상이 불법 체류자인 셈이다. 경찰이 공장을 급습하며 이따금 불법 체류자를 단속하지만 쏟아져 들어오는 중국인들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차이나 파워가 드세진 사이 프라토에서 이탈리아인들의 영역은 쪼그라들었다. 프라토 상공회의소에 따르면 10년 전 원단·의류를 생산하는 이탈리아인 회사는 6000개가량이었으나 요즘 그 절반에도 못 미친다. 3대째 경영하던 의류업체를 지난해 폐업했다고 밝힌 주민 페데리코 마르체티(53)는 “불법 노동자를 고용하고 세금도 제대로 내지 않는 중국 업체와의 경쟁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겠느냐”고 하소연했다. 현지 언론에는 ‘900년 전통의 직물도시가 중국인 때문에 초토화되고 있다’는 자극적 표현이 실리기도 한다.

이에 대해 중국인들은 “어차피 망해 가는 공장을 우리들에게 비싼 값에 떠넘기고선 이탈리아인들이 원망을 쏟아낸다”고 항변한다. 2년 전에 공장을 열었다는 후즈펑(胡志峰·37)은 “이탈리아 회사들은 주로 원단을 만들고 우리는 옷을 만들기 때문에 서로의 경쟁 상대가 아니다. 국제시장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사업을 접고서는 우리를 탓한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경제의 중심지 밀라노도 양쪽의 반목이 심각해 보였다. 그 갈등의 흔적이 도심 북쪽 차이나타운의 역사에서 고스란히 발견됐다. 밀라노 차이나타운은 2년 전 시에서 대대적인 정비를 해 전 세계의 그 어떤 중국인 거리보다 산뜻했다. 그런데 바로 그게 중국인들에겐 엄청난 압박이었다.

사연은 이랬다. 1920년대에 조성되기 시작한 차이나타운은 약 20년 전 규모가 급격히 불어났다. 주로 도매로 옷을 파는 가게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옷을 내리고 싣는 차량들 때문에 길이 막히기 일쑤였고, 지역 주민들은 시 당국에 불평을 쏟아냈다. 그 결과 경찰이 상주하다시피 하며 불법 주차 차량에 범칙금을 부과했다. 중국인들은 “장사를 하지 말라는 거냐”며 항의했다. 2007년 4월엔 400여 명이 거리로 몰려나와 폭력시위까지 벌였다. 시 정부는 중국인들에게 도심 외곽의 옛 자동차공장 부지로 옮겨 갈 것을 제의했다. 이에 중국인들이 반발하자 차이나타운의 중심축인 파올로 사르피 거리를 차량통행 금지구역으로 정하고 길가에 화단을 설치해 주차공간 자체를 없애 버렸다. 곳곳에 단속용 폐쇄회로TV(CCTV) 카메라까지 매달았다. 이곳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는 쉬진옌(徐金燕·41)은 “보기엔 깨끗해졌을지 모르지만 장사엔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이미 다른 지역으로 가게를 옮긴 이들도 꽤 있다”고 말했다.

중국인은 유럽의 조용한 해안도시를 들썩이게 하기도, 공단이나 거리를 장악해 원성을 사기도 한다. 유럽에 뻗어 나가는 ‘차이나 파워’의 두 얼굴이다. 1600여 년 전 훈족의 기습으로 민족 대이동을 겪고 마르코 폴로의 동방 기행담에 놀랐던 유럽인들, 그들은 21세기의 새로운 중국을 학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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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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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