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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광 농업으로 부활 꿈…후쿠시마 역발상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 4호기 앞에서 방재복을 입은 근로자들이 1일 사용후 핵연료 회수작업에 필요한 건물 방재막의 철제 골격을 세우고 있다.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2년을 앞두고 이날 국내외 언론에 원전 사고 수습현장을 공개했다. [후쿠시마 교도=뉴시스]

“살아 있는 게 제일 힘들어. 주변에 아는 사람도 없고, 대지진 뒤에 도대체 얼마나 많이 옮겨 다니면서 살았는지 몰라.”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에서 북쪽으로 24㎞쯤 떨어진 미나미소마(南相馬)시 하라마치(原町)구의 우시고에(牛越) 가설주택. 지난달 28일 이 단지에서 만난 하나부사 사하코(花房 サハ子·81)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2011년 3월 11일 대지진과 함께 덮친 쓰나미로 가족을 잃고 혼자가 됐다. 2년이 지났지만 절망은 오히려 더 커졌다. 미나미소마는 쓰나미와 원전사고 등 복합 재해를 당한 곳이다. 원전 부근에 위치한 탓에 방사능 피난이 불가피했다. 하나부사 할머니처럼 우시고에 가설주택 입주자 350명 중 상당수는 하라마치보다 남쪽에 있는 오다카(小高)구에 살았다. 오다카의 대부분은 후쿠시마 제1원전으로부터 반경 20㎞ 안쪽이다. 지난해 4월 경계구역에서 해제돼 비로소 출입이 가능해졌지만, 그곳으로 돌아가 다시 정착한 사람은 거의 없다. 방사능 제거와 상하수도 복구가 제자리걸음이기 때문이다. 미나미소마 시청의 오다카구 담당자는 “방사능 쓰레기를 버릴 장소를 확보하지 못해 오염물 제거는 진척이 없고, 수도 역시 2014년 3월이 돼야 복구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시청에서 국도 6번을 남쪽으로 달려 오다카를 직접 찾았다. ‘여기서부터 원전 20㎞ 이내 지역’이란 전광판 옆을 스쳐 차를 몰았다. 후쿠시마 원전의 북쪽인 이 지역이 서쪽·서북쪽 지역보다 방사능 수치가 낮다지만, 적게는 시간당 0.32마이크로시버트(도쿄의 7배), 곳에 따라선 2마이크로시버트까지 측정된다.

 인적 없이 쓰레기만 쌓인 오다카역 주변 주택가, 평일 오후 3시임에도 모든 가게의 철문이 굳게 닫힌 상점 중심가, 무너진 채 방치된 주택, 쓰나미에 휩쓸린 차량들이 흩어져 있는 해안 마을…. 누군가가 가져다 놓은 꽃다발만 빼면 시간이 2년 전에서 멈춰 있었다.

 미나미소마는 농지 부족과 일손 부족에 시달리는 일본의 축소판이다. 7만1000명이었던 주민들은 대지진 후 1만 명만 남기고 모두 시를 떠났다. 현재 인구는 4만6000명까지 회복했지만 젊은 층과 학생들의 귀환이 늦어 거리엔 노인들뿐이다. 2% 안팎에 불과한 오염 제거 작업 진척률, 전체 8400ha 중 3분의 1이 쓰나미의 직격탄을 맞은 농지 피폐화로 시름시름 앓고 있다.

 하지만 모두가 절망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미나미소마 부흥의 선두에 서 있는 이가 사쿠라이 가쓰노부(櫻井勝延·57) 시장이다. 그는 재작년 지진 발생 직후 유튜브를 통해 지진의 참상을 전했고, “일본 정부는 절대 못 믿겠다”며 전 세계에 지원을 요청했다. 그가 시사주간지 타임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되면서 미나미소마는 전 세계인의 뇌리에 ‘일본 대지진 비극의 상징’으로 새겨졌다.

 지난달 28일 시청에서 만난 그는 “사무라이 정신으로 일하기 때문에 포기는 있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이달 문을 여는 ‘미나미소마 솔라 농업 파크’에 힘을 쏟고 있다. 쓰나미 피해지 2.4ha에 연간 32t의 양상추를 생산하는 식물공장을 짓고, 또 이 공장에 전력을 공급할 태양광 발전소를 함께 세우는 농업프로젝트다. ‘방사능 농산품’으로 낙인찍힌 후쿠시마 농업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겠다는 게 그의 포부다.

 이처럼 일본 내에서도 천대받는 ‘메이드 인 후쿠시마’ 극복에 몰두하는 건 미나미소마뿐이 아니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서쪽으로 50여㎞ 떨어진 고리야마(郡山)시의 농산품 직판장 ‘베렛슈’는 원전사고 이전보다 오히려 매상이 늘었다.

 ‘㎏당 100 베크렐 이하’로 규정된 일본 정부의 방사능 허용 기준치보다 더 엄격한 ㎏당 20베크렐 이하의 농산품만을 파는 엄격한 방사능 관리가 그 비결이다. 쌀과 야채를 이곳에 공급하고 있는 34세의 젊은 농업경영자 후지타 고시(藤田浩志)는 기자에게 “후쿠시마에서만 만들 수 있는 더 신선한 농작물로 승부하겠다”며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방사능 엑소더스, 후쿠시마 엑소더스의 와중에 후쿠시마로 귀환하는 젊은이들도 있다. 도쿄의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지진 직후 고향 후쿠시마로 돌아와 자원봉사단체를 조직한 20대 여성 가마다 지에미(鎌田千瑛美·27)는 “도쿄의 윤택한 생활이 나에겐 더 스트레스였다. 방황하는 고향 젊은이들과 함께 대화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서승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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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