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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민초들의 3·1절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
버지니아 울프가 말했다. “해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새로 읽고 그 감동을 글로 옮기면 우리의 자서전을 쓰는 것이나 다름없다.” 햄릿의 고뇌와 방황, 그 처절한 사랑과 죽음은 우리 모두의 아픔일 수 있다는 뜻이겠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다”라는 햄릿의 독백은 운명의 굴레에 묶인 모든 실존의 절규일 것이다.

 그러나 생사여일(生死如一)을 말하는 동양사상에서 보면 ‘죽느냐 사느냐’는 고민할 만한 문젯거리가 아닐지도 모른다. 삶과 죽음을 하나로 여길 수 있다면 우리의 정신은 얼마나 자유로울 것인가. 비록 그처럼 높은 지혜에는 이르지 못하더라도 무슨 일이든지 죽을 각오로 해낼 수만 있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보람될 것인가. 일제(日帝)의 침략에 비분강개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순국열사들, 죽음으로 신앙을 지킨 순교자들, 사랑을 위해 생명을 버린 순애보(殉愛譜)의 연인들…, 이처럼 치열한 영혼들이 없는 세상이라면 나라의 품격도, 신앙의 자유도, 사랑의 순결도 찾을 길이 없을 것이다. 일제가 내린 훈작(勳爵)으로 호의호식하던 친일매국노들은 민족의 역사 속에서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목숨을 버리는 것 못지않게 어렵고 값진 일이 있다. 나라 위해 목숨을 바치기에 앞서 금쪽같은 자식을 군대에 보내고 어려운 이웃과 아픔을 나누며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가는 일, 신앙을 위해 생명을 버리기 전에 ‘지금 여기에서’ 신앙의 바른 자리를 지켜내는 일…, 이것이 죽어서 국립묘지에 묻히는 것보다 더 고결한 일이요 죽은 뒤에 천당 가는 것보다 더 거룩한 일일 수 있다.

 마땅히 죽어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이를 악물고 쓰라린 삶의 가시밭길을 걸어가야 할 때도 있기 마련이다. 죽지 못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 가치와 살아야 할 이유가 분명히 있기에 고통의 삶을 살아내는 것…, 이것이 진정한 자유이자 참다운 용기일 것이다. 또한 이것이 죽음보다 더 깊은 사랑일 수 있다.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린도전서 13).

 벙어리에 귀머거리인 운보(雲甫)가 조선학도병 격려 포스터에 부끄러운 삽화 몇 점 끄적거려 주고 모질게 살아남지 않았던들 ‘성당과 수녀와 비둘기’가 로마 교황청 안에 걸릴 수 있었을까. 친일의 논란 속에서도 학교를 세우고 신문을 찍어낸 선각자들이 없었더라면 식민지의 척박한 땅에서 민족 언론과 민족 사학이 뿌리내릴 수 있었을까.

 순국열사들의 숭고한 민족혼을 기리는 3·1절이 아흔 네 번째로 지났다. 살 떨리던 치욕의 세월을 억척스러운 삶으로 견뎌낸 옛 어른들께 숙연한 추모의 묵념을 올린다. 3·1절은 열사들의 죽음만을 기억하는 제삿날이 아니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빈주먹, 맨몸으로 이 땅을 지켜온 민초(民草)들에게 경건히 머리 숙이는 감사절이기도 하다. ‘죽음의 피’보다 ‘삶의 땀’이 먼저다. 이 순서를 뒤바꾸는 것은 생과 사의 엄숙한 섭리를 거스르는 신성모독일는지도 모른다.

 역사는 정신과 실태(實態)의 결합이다. 열사들의 장렬한 죽음이 민족사의 혼이요 정신이라면, 민초들의 고단한 삶은 그 정신을 겨레의 터전에 우뚝 세운 우리 역사의 실태일 것이다.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웠을 일제 시절, 이름과 성을 가는 창씨개명의 수모까지 겪으면서도 아들딸 낳아 어렵사리 기르며 피땀 흘려 가르쳐온 어르신들이야말로 수난의 민족사를 지탱해온 버팀목이었다.

 오늘도 민초들의 삶은 여전히 고달프다. 어린 나이에 많은 재산을 물려받고 때가 되면 병역면제 혜택까지 거머쥐는 속칭 ‘신의 아들’들이 떵떵거리는 세상에서, 힘없는 서민들의 가슴이 어찌 막막하지 않으랴. 그래도 희망은 이들에게서 나온다. 누군가의 귀한 자식들이 군복무를 건너뛰고 성공을 향해 질주하는 동안, 선량한 보통 사람의 아들들은 눈보라 치는 전선에서 묵묵히 나라를 지키고 있다. 외국 영주권을 포기하고 조국에 돌아와 자진 입대하는 청년도 적지 않다. 천안함의 46용사는 젊디젊은 나이에 영해의 수호신이 되었다. 이 시대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무명(無名)의 실태들이다. 북한의 3차 핵실험으로 더욱 긴박해진 안보 상황에서 이처럼 반듯한 젊은이들의 모습은 여간 듬직하지 않다.

 ‘죽느냐 사느냐’의 절박한 물음은 비단 저 불행한 덴마크 왕자 앞에만 놓였던 물음이 아니다. 오늘의 민초들인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물음이기도 하다. 자괴(自愧)를 무릅쓰고 그 물음을 이렇게 고쳐 묻는다. “나라를 위해 죽기 전에 나라를 위해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가. 기미년 그때의 민초들처럼, 전방의 듬직한 젊은이들처럼.”

이 우 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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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