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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된 신대륙의 광대함과 위대함 그리고 인간군상

추상표현주의, 미니멀리즘, 대지미술, 팝아트, 개념미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이같이 다양한 미술 사조를 내세우며 세계 미술계를 주도했다. 그래서 한때는 미국 미술이 곧 세계 미술이었다. 미술관과 미술시장을 지배하는 공룡급 스타작가들도 다수 배출했다.
그런데 지금 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영나)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미국 미술 300년’(Art Across America·2월 5일~5월 19일)전은 “잭슨 폴록과 앤디 워홀이 전부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번 전시는 양국 간 문화교류와 역사인식 심화 차원에서 기획된 교환 전시인 만큼 뜨르르한 스타 작가들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삶과 밀접한 공예작품과 회화를 통해 미국의 역사를 압축하는 방식을 택했다.

국립중앙박물관 ‘미국 미술 300년’

거친 신대륙은 어떻게 최대의 자본주의 국가 미국이 되었는가. 유럽 이민자들이 만든 ‘작은 유럽’은 어떻게 독자적인 브랜드를 가진 문화를 창출해 나갔는가. 이번 작품들은 미국의 300년 역사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잘 모르던 미국 미술의 재발견이다.

1 토머스 모란(1837~1926)의 ‘콜로라도 강의 그랜드캐니언’(1892, 1908년 재제작), 캔버스에 유채, 134.6×238.8 cm, Image courtesy of Philadelphia Museum of Art 2 윌리엄 웬트(1865~1946)의 ‘자연의 신이 이룬 곳’(1925), 캔버스에 유채, 127×153 cm, Photoⓒ2012 Museum Associates/LACMA 3 윌리엄 키스(1839?~1911)의 ‘요세미티 계곡’(1875), 캔버스에 유채, 102.9×184.2 cm, Photoⓒ2012 Museum Associates/LACMA
‘작은 유럽’ 만들던 이민자들의 흔적 오롯이
전시장에 들어서면 조금은 어눌한 초상화들이 관람객을 맞는다. 나란히 걸려 있는 유럽 이주민들, 흑인 선원,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 인디언 추장의 얼굴들은 미국의 인종적·문화적 다양성을 설명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캐드왈라더 가족 초상’과 18세기 화려한 가구, 공예품들은 신대륙에 ‘작은 유럽’으로서의 미국을 건설하려고 했던 사람들의 흔적이다. 영국, 독일, 아일랜드 등 유럽 각국에서 온 이민자들의 문화는 아메리카라는 신대륙에서 서로 융합되어 가기 시작했다.
1846년 그레이슨은 시에라네바다 산 등정으로 마무리된 긴 여행을 기념할 그림을 주문했다. 멋진 사슴가죽 코트를 입고 지팡이에 기대어 선 그레이슨의 모습은 17세기 영국 궁정화가 반 다이크가 그린 ‘사냥터의 찰스 1세’의 포즈를 연상케 한다. 뒤를 이을 어린 아들, 부인을 대동한 그는 새로운 왕국의 새로운 왕족처럼 등장하고 있다. 들짐승들이 평화롭게 노니는 낙원 같은 이곳은 제목대로 ‘약속의 땅’, 그 이름도 상큼한 캘리포니아, 미국의 서부였다. 미국의 진짜 역사는 서부 개척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기회의 땅은 아메리칸 드림의 본격적인 배경이 됐다.
개척은 새로운 땅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요세미티 공원이나 그랜드 캐니언 같은 광대한 자연은 미국적 정체성 형성에 큰 역할을 한다. 19세기 미국 시인 월트 휘트먼이 “본질적으로 미국 자체가 가장 위대한 시”라고 읊을 수 있었던 것은 광대한 자연과 그 속에서 모든 것의 공존 가능함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높낮이 없이 모든 사물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한 휘트먼의 시는 평등과 민주주의라는 미국적 이상을 노래했다. 대형 풍경화들은 작은 사이즈로만 인쇄되던 흑백 사진의 한계를 넘어 정복된 땅의 광대함과 위대함을 보여준다.
이 멋진 그림들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다. 이 그림들은 해당 지역의 개발을 금지하는 법령 제정의 기폭제가 되어, 실제 풍경들이 여전히 ‘그림처럼’ 남아 있게 했다. 정복된 사람들, 사라져 가는 인디언들의 모습은 모험의 후일담들처럼 그림 속에 남아 있다.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으려니와’라는 작자 미상의 소박한 그림은 미국에 와서 내 땅을 가지고 건전하게 일하는 이민자들의 소망과 이상, 청교도적인 윤리를 보여준다. 19세기 풍속화 중에는 ‘유년기’를 테마로 한 작품이 많았다. 아이들이 살아가면서 배워야 할 윤리와 쾌락을 가르쳐주는 그림들은 건설기 미국의 낙천적인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윈슬로 호머의 ‘건전한 만남’은 국가적 차원에서 전개되었던 금주운동과 관련이 있다. 강렬한 햇빛 아래서 우유 통을 들고 있는 건강한 농민 여성의 팔뚝은 미셸 오바마의 저 유명한 팔뚝의 원조를 보는 것 같다.

4 미키 하야카와 (1899~1953)의 ‘흑인’ (1926), 캔버스에 유채, 66.4×50.8cm, Photoⓒ2012 Museum Associates/LACMA 5 앤디 워홀(1928~1987)의 ‘재키(네 개의 재키)’(1964), 네 개의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을 이용한 실크스크린, 각 패널 50.8×40.6cm, © The Andy Warhol Foundation for the Visua Arts, Inc. / SACK, Seoul, 2013
1차대전·대공황에도 붓 놓지 않은 작가들
19세기 말부터는 존 싱어 사전트, 마리 카사트, 제임스 휘슬러 같은 국제적인 기량을 인정받는 작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인상주의 시기에 파리에서 활동했다. 20세기 초반 당시 유럽의 첨단 사조인 초현실주의, 입체주의, 다양한 추상미술이 미국이라는 문화적 용광로로 활발하게 흘러 들어왔다.
다른 한편 존 슬로안, 조지아 오키프 같은 토종 작가들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미국적인 삶에 천착해 나갔다. 조지아 오키프는 미국의 자연을 빌려 죽음과 초월, 삶에 대한 에로스적 열망을 표현했다. 황무지 위에 건설된 유령의 도시 같은 독특한 미국 풍경을 그린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볼 수 없는 것이 이 전시의 한 가지 아쉬운 점이다. 잭슨 폴록의 스승이었던 토머스 하트 벤턴의 ‘노예들’은 미국 역사의 어두운 측면을 보여준다.
유럽이 1차대전의 전화에 휩싸일 때도 미국은 승승장구했다. 영원히 지속할 것 같았던 미국의 번영은 1929년 대공황으로 중지된다. 일종의 예술가 구호활동이었던 연방예술정책(Federal Art Project) 덕택에 대공황기에도 예술가들은 붓을 놓지 않을 수 있었다. 혹독한 시기에 젊은 시절을 보낸 작가들은 미국 미술을 세계 미술의 반열에 올려놓는 작가가 되었다. 아돌프 고틀립, 로버트 마더웰, 마크 로스코, 잭슨 폴록 같은 추상표현주의자들이 그들이다. 낙천적이든 비관적이든 모든 현실의 모습은 추상적인 화면 속으로 사라졌다.

6 토머스 하트 벤튼 (1889~1975)의 ‘노예들’ (1924~27), 합판 위 면직물에 유채, 168.8×183.3×3.7cm, 테라 미국미술재단, Photography ⓒTerra Foundation for American Art, Chicago 7 어니스트 마틴 헤닝스 (1886~1956)의 ‘지나가는 길’(1924년경), 캔버스에 유채, 111.8×124.5 cm, 휴스턴미술관, Image courtesy of The Museum of Fine Arts, Houston 8 조지 드 포레스트 브러시 (1855~1941)의 ‘베 짜는 사람’(1889), 캔버스에 유채, 30.5×38.1 cm, 테라 미국미술재단, Photography ⓒTerra Foundation for American Art, Chicago
가장 미국적인 작품, 팝아트
그들의 뒤를 이어 재스퍼 존스, 로버트 라우센버그, 앤디 워홀 등 팝아트 작가들이 등장했다. 60~70년대 정점에 오른 소비 문화를 반영하는 팝아트와 대량으로 생산된 상품을 닮은 미니멀리즘은 가장 자본주의적이며, 가장 미국적인 작품들이다. 플라스틱이라는 신소재를 채택해 대량으로 제작되었던 임스 부부의 의자는 중산층의 합리적인 기호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전시는 이쯤에서 끝난다.
앤디 워홀의 ‘재키’는 대중매체에 돌아다니는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사진 4장을 이용해 만든 작품이다. 이 중 하나는 케네디 생전의 젊은 영부인 시절의 행복한 재키의 모습이고 셋은 케네디의 장례식장에서 찍힌 슬픈 모습이다. 누구보다 그 스스로가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사람이었지만, 앤디 워홀은 미국적 비극을 작품 속에 담아내는 데 게으르지 않았다. 아메리칸 드림은 꿀 때는 달콤하지만, 실행될 때는 꼭 그런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앤디 워홀의 이 정도 작품이면 몇십억원을 호가한다. 비극조차도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소비할 수 있는 것은 발달한 자본주의의 진정 놀라운 힘이다.
전시에 출품된 168점은 LA카운티미술관, 필라델피아미술관, 휴스턴미술관, 테라 미국미술재단의 소장작품들이다. 2014년에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을 중심으로 한 ‘조선미술대전’이 이들 미술관들을 순회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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