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사느라 지지고 볶는 사립탐정 부부 러시아 갱 두목 사건에 휘말리는데

역자: 조영학 출판사: 황금가지 쪽수: 396 가격: 1만2000원
“나한테 빚졌잖아요.” 이 한마디에 목숨이 몇 개라도 모자랄 일에 뛰어드는 사립탐정. 도대체 무슨 빚을 얼마나 졌길래.

데니스 루헤인의 추리소설『문라이트 마일』

데니스 루헤인(48)의 켄지와 제나로 시리즈의 여섯 번째이자 마지막 이야기다. 루헤인, 굳이 소개가 필요할까 싶다. 추리소설과 담 쌓은 분이라도 영화 ‘미스틱 리버’나 ‘셔터 아일랜드’(원작은 『살인자들의 섬』)를 떠올려 보시라. 그 원작자다. 사회파 추리소설로 이름이 쟁쟁한 작가다.

어릴 적 길거리에서 험하게 큰 두 남녀, 패트릭 켄지와 앤지 제나로가 주인공이다. 보스턴의 탐정 콤비로 호흡을 맞추는 건 전작과 같다. 다만 그동안 친구인지 애인인지 애매하던 둘이 이번엔 결혼해 살림을 차렸다. 어린 딸도 뒀다. 세월이 흘러 둘 다 40대 중년이다. 첫 회인 『전쟁 전 한잔』(1994)에서 펄펄 날던 20대가 아니다.

사립탐정, 폼 나 보이지만 영세 자영업자다. 애가 딸렸으니 생활비·보험료·교육비 등등 돈 걱정이 많다. 생활고의 구질구질함이 그대로 나온다. 폼생폼사에 매진하는 여느 하드보일드 사립탐정과는 다르다. 평론가들은 ‘반영웅(앤티 히로)’이라고도 하더라.

패트릭의 ‘빚’은 12년 전 해결했던 사건에서 생겨났다. 시리즈 4편인 『가라, 아이야, 가라』(1998)의 아만다 실종사건이다. 4살짜리 여아를 마약과 술에 절어 사는 친엄마에게 합법적으로 돌려줄 건가, 아니면 유괴된 채로 인정 많은 가정에서 불법적으로 살게 할 건가. 전자를 택했던 켄지는 고민한다. 정의는 과연 정답인가, 법은 과연 선인가…. 그러다 16살이 된 아만다가 다시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고는 씁쓸한 기억이 계속 떠오른다. 명치끝을 지지며 올라오는 신물처럼.

그런데 이번엔 유괴가 아니다. 아만다 스스로 종적을 감춘 것이다. 러시아 갱 두목 손에 있어야 할 물건을 빼돌린 채. 이쯤 되면 얘기가 조용히 끝나진 않겠다 싶다. 하지만 패트릭은 브루스 윌리스가 아니다. 그래도 걱정은 말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펑하고 뚫리는 게 스릴러 아닌가.

다만 전작을 읽지 않으면 매끄럽게 나가지 않을 수도 있다. 켄지의 수호신인 괴력의 폭력배 부바의 존재감도 흐릿하다. 수사에 늘 한몫하던 앤지도 이번엔 애 보느라 좀 바쁘다. 앤지의 화끈한 성격은 남편과 호텔을 예약하는 장면에서 슬쩍 드러난다. “침대 시트를 아예 짓이겨 다림질도 못 하게 만들자구.” 패트릭의 반응은 영 못 미친다. “목표가 너무 거창한 거 아냐, 살살 하지.”
패트릭은 늘 시니컬하다. 심사가 뒤틀려 내뱉는 말들은 시큼하게 초를 친다.

“이마는 최근에 방부 처리한 듯 맨들맨들하고 미소는 전기충격이라도 받은 사람 같았다.” 성형미인에 패트릭의 배알이 꼴렸다.
“그가 거실을 바라보는 모습이 흡사 통치할 세상을 빼앗긴 현대판 알렉산더 대왕처럼 보였다.” 잘 차려놓고 사는 것도 못마땅하다.
“둘 다 손가방을 넣고 다녀도 될 만큼 콧수염이 짙었다.” 권총을 든 갱의 수염을 관찰할 여유는 아직 있다.
그런데 이런 표현들, 어디서 많이 보지 않았나. 그렇다. 필립 말로의 말투와 비슷하다. 레이먼드 챈들러(1888~1959)가 만들어낸 사립탐정계의 대통령이다. 말로 이전에 말로 없고, 말로 이후에 말로 없다 하지 않았나.

패트릭은 결국 운송회사에 취직한다. 권총도 강물에 내던진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그는 월급쟁이로 경쟁력 있는 사내가 아니다. 마지막이라는 루헤인의 말을 믿진 말자.

구독신청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