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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 느껴지나요, 희망 본능의 맥박

지난해 말께 인편을 통해 박시호님의 『여섯 번째 행복편지』가 내게 전달됐다. 스폰 형식으로 친지들에게만 전달되는 자비 출간 책자다. 일정이 빼곡한 연말이라 짬을 내기가 어려워 나중에 읽을 요량으로 일단 거실 테이블 위에 놓아 뒀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가 올 연초 문득 눈에 들어왔다.
마침 그간 지쳤던 심신의 고삐를 풀고 칩거 중이었기에, 불량한 자세로 페이지를 넘겼다. 그러다가 화들짝 자세를 고쳐 잡고 읽은 대목! 영문 대조 번역 경구였다. 내 마음을 잡아챈 것은 대문자로 쓰인 영어 동사들이었다.

바라만 보지 마세요, 관찰하세요.(Don’t just look, OBSERVE.)
삼키지만 마세요, 맛보세요.(Don’t just swallow, TASTE.)
잠들지만 마세요, 꿈꾸세요.(Don’t just sleep, DREAM.)
생각만 하지 마세요, 느껴보세요.(Don’t just think, FEEL.)
존재하지만 마세요, 살아가세요.(Don’t just exist, LIVE.)

하나씩 음미해 보면 ‘생판 낯선 세상’을 열어 주는 키워드들이다.
‘관찰하세요’(OBSERVE)! 피상, 껍데기에 휘둘리지 말고 그 알속의 소중한 것들을 포착하라.
‘맛보세요’(TASTE)! 만유의 본래 진미를 허투루 꿀꺽하지 말고 잘근잘근 한껏 누려라.
‘꿈꾸세요’(DREAM)! 마치 깊은 잠에 빠진 듯 시체처럼 소요하지 말고 3D 입체영상으로 자신의 흥분되는 미래를 그려라.
‘느껴보세요’(FEEL)! 탁상공론의 공허를 떨치고 오감, 육감으로 그대의 상상을 리얼한 실재처럼 황홀하게 만져라.
‘살아가세요’(LIVE)! 시간의 흐름에 타성으로 무료히 휩쓸리지 말고 그대만의 존재 의미를 째깍째깍 일구라.

우선 나를 위한 유쾌한 꼬집음이었다. 이 비밀스러운 각성의 기쁨을 나는 견딜 수가 없다.
더구나 봄이다. 깨어남의 계절! 봄바람이 살랑살랑 내 마음속 봄을 일깨우고 있다. 자연계에만 봄이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의 생체시계에도 4계절이 있다. 마음속 4계절! 사람마다 생체시계의 주기는 다르지만 그 순서만은 어김없이 똑같다. 겨울이 지나면 반드시 봄이 오고, 다시 여름과 가을을 거쳐 어느새 또 겨울이 와 있고….
그 누가 이 순리를 거역할 수 있겠는가? 나는 이 돌고 도는 순환적 흐름의 중심에 우리들 희망 본능이 있다고 믿는다. 희망 본능은 우리 안에 피처럼 흐르고 있다. 피가 흐르는 한, 희망 본능의 맥박은 뛰고 있다. 쿵쾅쿵쾅! 물론 그것의 세고 약함은 각자의 생체시계 속 4계절의 순환에 조율되어 있는 것이고.
희망 본능의 존재는 나만의 가설이 아니다. 철학자들은 그 단초를 ‘현존재’니 ‘자유’니 ‘초월욕구’니 하는 인간의 특성에서 찾았다. 예술가들은 그들 예술혼의 무한한 동경 그리고 자연에 대한 심미안적 관조에서 그 실마리를 봤다. 예컨대 빈센트 반 고흐는 평생 집요하게 그를 괴롭히던 치열한 고뇌 중에도 불현듯 다음과 같은 희망의 편린을 보았다.

“겨울이 지독하게 추우면 여름이 오든 말든 상관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부정적인 것이 긍정적인 것을 압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냉혹한 날씨는 결국 끝나게 되어 있고, 화창한 아침이 찾아오면 바람이 바뀌면서 해빙기가 올 것이다. 그래서 늘 변덕스러운 우리 마음과 날씨를 생각해 볼 때, 상황이 좋아질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
나에게는 이 말이 그의 그림처럼 휘어잡는 인상(impression)으로 덮친다. 그림에 설명이 필요 없듯이, 그의 말에도 군말이 필요 없다는 공감! 그리하여 또 쿵쾅쿵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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