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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래의 세상탐사] 일하려면 구악이 필요하다고?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드러난 국무총리·장관 후보자 18명의 흠결을 보면서 30여 년 전 일이 문득 떠올랐다.

 ‘10명 중 절반이 넘는 6명이 뭘 하거든 무조건 따라 해라. 널 포함하면 7대 3이다. 그땐 ‘대세’요 ‘관행’이다. 너만 고집부리면 바보 된다’.

 수학 선생님이던 은사의 말이었다. 이 조언을 행동으로 옮긴 건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바뀐 고등학교 3학년 기말고사 때다. 상대평가가 1등부터 꼴찌까지 줄을 세우는 거라면, 절대평가는 일정 수준만 되면 몇 명이든 1등급이 될 수 있는 제도다. 당시 체육 과목은 입시 반영도가 낮아 거의 공부하지 않았다. 그래서 체육 필기시험은 ‘경쟁하지 말고 다같이 1등급을 받자’는 담합 분위기였다. 시험감독도 마음씨 좋은 영어 선생님이었다. 잠깐 서로 눈치를 보다가 이내 책상 밑에서 교과서와 노트를 꺼내 보며 답을 쓰는 ‘공개적인 커닝’을 했다. 시험감독 선생님은 아무 말 없이 지켜본 뒤 끝나는 종이 울리자 커닝을 하지 않은 20여 명의 시험지를 따로 분류해 가져갔다. 얼마 뒤 반 전체 60명 중 커닝한 70%인 약 40명의 성적표는 최하 등급으로 나왔다. 반면 정직하게 시험을 치른 30%인 약 20명은 시험 점수가 낮았지만 성적표는 모두 1등급으로 나왔다.

 당시 조언을 했던 은사를 다시 만났을 때 우연히 이 얘기를 나눴다. 그 은사는 당황하면서 “내가 잘못 말했다”라고 후회하던 모습이 선하다. 그는 “앞으로는 대세, 관행이라며 옳지 않은 쪽 70%에 서지 말고, 힘들고 바보 소리 듣더라도 옳은 쪽 30%에 서라”고 덧붙였다.

 잣대는 좀 다르겠지만 박근혜 정부의 총리·장관 후보자를 보면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옳지 않게 산 대한민국 지도층의 70%에 속한 사람들로 보인다. 이들은 각종 의혹에 대해 하나같이 “당시로서는 위법이 아니고, 대세요 관행이었다”고 해명한다.

 청문회에서 홍역을 치른 뒤 최근 임명된 총리는 불법 증여, 아들 병역 의혹, 재산신고 누락, 전관예우라는 지적을 받았다.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교통법규 위반 때문에 차량압류 통보를 다섯 번이나 받은 의혹을 산다.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교원자격증 없는 딸의 인턴교사 채용 특혜 의혹을 받았다. 외교부 장관 후보자의 딸은 ‘가계 곤란 장학금’을 다섯 차례나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무기중개상 취업 경력자로 지목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는 상가 임대소득을 축소 신고해 세금 탈루 의혹을 사고 있다. 여성·외국 국적자를 뺀 14명의 후보자 중 절반은 병역 기피 의혹을 받는다. 두드러기, 손가락 마비, 허리디스크 등 병역 면제 이유도 다양하다.

 여권 일부에서는 ‘이런 식으로 걸러내면 나랏일을 할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이 대목에서 30여 년 전 젊은 시절에 분개했던 또 다른 얘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다. 국세청에 근무하던 지인이 당시에 해 준 말 때문이다. 검찰이 서울의 한 세무서를 수사했다. 말단 직원들이 뇌물을 받아 세무서장에게까지 상납해 30여 명이 부패사슬로 엮여 있었다. 젊은 검사가 전원을 기소하겠다고 별렀다. 다음 날 그 세무서의 거의 모든 직원이 ‘휴가를 간다’며 자리를 비웠다. 며칠 뒤 국세청장이 비밀리에 검찰총장을 찾아가 ‘국가 업무가 마비된다’며 선처를 요청했다. 일주일 뒤 모든 직원은 휴가를 마치고 복귀해 열심히 국가 업무를 봤다고 한다. 지금이야 그렇지 않겠지만 ‘국세청에는 이런 무용담이 많다’는 말에 더 분개했었다.

 “세금을 걷는 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국사(國事)? 높은 양반들이 무지렁이들 협박할 때 쓰는 말 아닌가. 막말로 궁(宮)지기였던 한명회가 국무총리급인 영의정을 두 번 했어도 문제없었고, 공수부대장이었던 전두환이 대통령을 해도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 확 쓸어버리고 깨끗한 사람들로 바꾸지 못할 이유가 없잖는가.”

 시대와 상황이 바뀌었다 해도 요즘 젊은이들이 고위직 후보자들을 바라보는 감정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갈 길은 멀고, 되는 일 없이 바쁘기만 한 요즘의 박근혜 정부. 억울하다고 아무리 해명해도 내각 후보자들에 대한 국민 감정이 곱지 않다. 석 달 전 대선 때 반대표를 던진 48% 국민과 기성세대에 분노하는 20·30대 젊은이들, ‘꼴통 보수’라고 몰아붙이는 야당·진보 진영의 반대 목소리를 무시하기에는 사안이 결코 가볍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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