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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중년 로망, 노망으로 끝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퇴직 후 경기도 양평 전원주택에서 지내는 선배를 어제 만났다. 교통이 불편하지 않은지, 밤에 무섭지 않은지, 겨울에 난방비는 얼마나 드는지…. 나를 포함해 점심을 함께한 동료들로부터 질문이 쏟아졌다. 하긴, 대한민국의 중년치고 은퇴 후 전원생활을 꿈꾸어보지 않은 이가 있을까.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남자주인공(승민)은 집 개축을 의뢰한 옛 연인(서연)에게 설계안을 설명하다 한마디 한다. “나야 뭐, 건축주가 좋다면 좋은 거지.” 서울월드컵경기장 등을 설계한 류춘수 건축사는 이 대목을 아쉬워한다. “설계는 건축주가 좋다고 좋은 게 아니야!”라고 말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승민이 공사장에 드나드는 장면도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건축가와 시공업자를 혼동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安藤忠雄)가 자신의 실질적 데뷔작으로 꼽는 것은 오사카시의 ‘스미요시 나가야(長屋)’다. 이 작품으로 일본건축학회상(1979년)을 받았지만 건물 자체를 놓고는 말이 많았다. 사방을 콘크리트 벽으로 막고 출입구 외엔 창문이나 통로가 전혀 없었다. 안 그래도 좁은 공간을 3등분해 가운데를 하늘이 뻥 뚫린 중정(中庭)으로 만들었다. 1층은 거실과 식당, 2층은 부부·자녀 침실이었다. 중정 탓에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식당이나 다른 방으로 이동해야 했다. 건축주가 이해했기에 가능한 설계였다. 자서전에 따르면 안도는 고객이 찾아오면 스미요시 나가야를 예로 들면서 “산다는 것은 때로 엄혹한 일이다. 내게 설계를 맡긴 이상 당신도 투쟁하며 살 각오를 해달라”고 요구했다. 고객 중 절반은 바로 꽁무니를 뺐다(신초샤 발행 『건축가 안도 다다오』).



 그러나 사진작가인 내 친구는 건축가에게 설계와 시공을 모두 맡겼다가 낭패를 겪었다. 나중에 작품으로 발표할 예정이라며 “완공 후 열쇠를 줄 때까지는 공사장에 오지 말라”길래 동의했다. 같은 예술가로서 이해하자는 마음이었다. 다 지어진 집은 겉모양은 멋졌지만 내부는 황당할 정도였다. 화장실에 수건걸이·수납장도 없었다. 창문마다 비가 새서 방수공사를 죄 다시 했다. 준공검사조차 마치지 않아 집주인이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겨울엔 난방비가 엄청났다. 이충기(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는 “건축가와 건축주는 건물의 작품성과 기능성, 공공성 측면에서 의견이 서로 조화를 이뤄야 이상적”이라고 말한다. 내 친구는 조화가 깨진 케이스다.



 그래도 이 땅의 많은 중년들은 오늘도 ‘내가 지은 집’을 꿈꾼다. 대도시 생활에 물린 사람일수록 그렇다. 봄맞이 여행길에 만난 낯선 동네를 배경으로 머릿속에서 갖가지 형태의 집을 짓다 부수고 다시 짓는다. 일종의 로망이다. 비록 현실에선 중년의 때이른 노망(老妄)으로 판정 나는 한이 있더라도.



글=노재현 기자

사진=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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