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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고건의 공인 50년 (13) 사스(SARS) 대책

2003년 4월 28일 서울 세종로 정부 중앙청사에서 열린 사스(SARS) 대책 관련 민·관 합동협의회. 사스 방역을 도와달라고 정부가 민간 의료단체에 요청하는 자리였다. 참석자들이 고개를 돌려 브리핑을 듣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김의숙 대한간호협회장, 김재정 대한의사협회장, 김화중 보건복지부 장관, 고건 국무총리, 강문원 대한병원감염관리학회장, 김진표 재정경제부 장관,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 뒷줄 왼쪽부터 권오규 청와대 정책수석, 이영탁 국무조정실장, 박봉흠 기획예산처 장관, 조영동 국정홍보처장, 최재덕 건설교통부 차관. [중앙포토]


2003년 2월 중국과 홍콩에서 폐렴과 비슷한 괴질이 돈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괴질로 중국에서 죽어나간 사람이 수백 명이고 공포 때문에 검증 안 된 온갖 민간요법이 판을 친다는 내용이었다. 외신에 소문처럼 간간이 나오는 얘기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 둘 사실로 드러났다. 3월 17일 세계보건기구(WHO)는 이 괴질에 정식 이름을 붙였다.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 바로 사스(SARS)였다. 사스 공포는 한국까지 덮쳤다. 우리나라에서도 사스와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환자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4월 사스 환자를 치료하던 홍콩 의사가 죽었다는 보도를 봤다. 감염자가 전 세계 수천 명에 치사율도 높다는 설명이 덧붙었다. 심각하다 느꼈다. 직접 챙겨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괴질 환자 치료 의사 사망하자 전세계 '공포'



 4월 23일 관계차관 대책회의를 열었다. 보건복지부는 국립보건원을 중심으로 사스방역대책본부를 가동시키겠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보건원의 사스 전담 인력은 4~5명에 불과했다.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중화권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관광객, 유학생 등이 하루 7000명을 넘던 때다. 공항은 사스 방역의 최전선이다. 해외에서 밀려오는 외국·한국인 관광객 중에 감염자 한 명이라도 공항을 벗어나 국내로 들어온다면 큰일이다.



 4월 25일 인천공항으로 갔다. 먼저 사스 발병 지역인 홍콩에서 온 항공기 입국장을 방문했다. 감염 의심자 채혈 현장도 찾았다. 방역 창구 직원들은 고생이 많았는지 다들 피곤해 보였다. “24시간 교대로 일하고 인력이 부족해서 힘이 든다”고 했다.



 바로 메모지에 내 사무실 팩스 번호를 적어 현장에서 일하고 있던 간호사에게 줬다. “모든 애로사항은 여기 총리 사무실 팩스로 직보해 주십시오. 바로 처리 하겠습니다.”



 현장을 다녀오니 사태가 더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지부 주도의 사스 방역대책본부로는 역부족이었다. 이런 대규모 방역은 한 부처의 힘만으로 안 된다. 상위 부처인 국무조정실이 나서 국방부, 행정자치부 등 관련 부처를 총동원해야 했다. 조영길 국방부 장관을 불렀다.



 “사스 방역도 국가를 방어하는 일 아니겠습니까. 군의관과 군 간호 인력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군 의료진 70여 명을 공항 사스 방역에 투입할 수 있었다.



 이날 국무조정실 차원의 상황실을 만들라는 지시도 했다. 박철곤 복지노동심의관에게 실무 책임자 역할을 맡겼다. 여러 부처나 이해당사자가 복잡하게 얽힌 일을 잘 풀어내는 사람이었다.



2003년 4월 28일 고건 당시 국무총리가 보고 읽었던 사스(SARS·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 대국민 담화 원고. [고건 전 총리 제공]
 4월 28일 범정부 차원의 사스 정부종합상황실이 출범했다. 당시 복지노동심의관으로 상황실 부실장을 맡았던 박철곤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의 설명이다.



 “사스 방역의 1차 목표가 국내 유입 차단이었습니다. 그런데 공항 현장에 가봤더니 입국자 체온을 측정하는 열 감지기가 1대뿐이었습니다. 일일이 체온을 재기엔 입국자가 너무 많았죠. 복지부에 예비비를 지원했고 서둘러 이동식 열 감지기 10대를 구입했습니다. 6대는 인천공항에 설치했고 김해·제주공항은 물론 중국 베이징의 공항에도 1대 보냈습니다. 또 착륙한 비행기에서 사람들이 내리지 못하도록 막고 나서 직접 기내로 들어가 열 감지기로 체온을 재고…. 곳곳을 다니며 정말 전쟁하듯이 사스를 막았죠.”



 물론 정부만으로도 안 됐다. 민간의 협력도 필요했다. 4월 28일 오전 김광태 대한병원협회장, 김재정 대한의사협회장, 강문원 대한병원감염관리학회장 등 민간 의료단체 대표를 초청해 의견을 들었다. 이어 낮 12시 오찬을 겸한 사스 관계장관 회의를 열어 “대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관련 부처 모두가 나서 대응하라”는 주문을 했다. 그리고 오후 2시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정부는 사스 의심 환자를 10일간 강제 격리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습니다. 필요 시 자택 격리나 병원 격리 조치에 지체 없이 동의해 주십시오.”



 그렇게 사스 방역을 전쟁처럼 치렀다. 상황실로부터 하루 두 번 보고를 받으며 직접 챙겼다. 의심 환자는 있었지만 확진 환자는 1명도 내지 않으며 사태를 수습할 수 있었다. 싱가포르도 사스에 뚫렸지만 우리나라는 달랐다. 2003년 6월 19일 상황실 해단식이 열렸다. 고생한 직원들이 너무나 고마웠다. 해단식 자리에서 강조했다. “지난 55일간 상황실 직원들, 국립보건연구원 직원들, 일선 검역요원들, 군 인력 등이 24시간 밤잠 설치며 열심히 방어해준 덕분에 사스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해 WHO는 우리나라가 사스 예방 모범국이란 평가를 내놨다.



 7월 31일 노무현 대통령이 국립보건원을 찾았다. 사스 방역 평가 보고를 받은 노 대통령이 미국의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같은 조직을 만드는 방안을 공식화했다. 그전 노 대통령과 주례 오찬에서 ‘한국판 CDC’가 필요하다는 김문식 국립보건원장의 건의를 전달했는데 받아들여졌다. 다음 해인 2004년 1월 19일 정식 출범한 질병관리본부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지난해 방역망이 뚫리면서 우리나라가 구제역 청정구역에서 제외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2003년 생각이 났다. 그때 우리는 사스와 1차 전투는 이겼을지 몰라도 전염병과의 전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왜 그전과 같은 열정이, 치열함이 없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정리=조현숙 기자



◆ 이야기 속 지식



사스(SARS)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원인이다. 정확한 감염 경로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주로 환자가 기침을 했을 때 나오는 침방울 등이 바이러스를 옮기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잠복기는 길게는 7일 정도로 발병하면 폐렴과 비슷한 증상이 나타난다. 중국·홍콩 지역에서 확산되기 시작했고 2002년 말부터 2003년 7월까지 전 세계에서 8000여 명이 넘는 감염자와 770여 명의 사망자를 냈다. 공식 확인된 수치가 이 정도고 실제 환자 수는 더 많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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