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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희 1호 제자 김민자 삶과 예술세계

김민자가 1930년대 중반 최승희와 2인무로 춘 ‘조선풍의 듀엣’의 한 장면. 왼쪽이 김민자, 오른쪽이 최승희다. [사진 연낙재]
무용가 김민자. 일반인은 물론, 무용계에서도 낯선 이름이다. 지난해 99세 나이로 타계했다. 40년 넘게 세상과 벽을 쌓고 살아온 은둔의 인물이다. 하지만 그가 한국 무용사(史)에 끼친 업적은 적지 않다. 바로 최승희 1호 제자였다.



일본 무대서 파트너 역할
모던댄스·전통무 넘나든 춤꾼
4월 대학로 연낙재서 회고전

 1913년 태어났다. 최승희(1911∼1969)보다 두살 어렸다. 집안은 유복했다. 아버지는 중국 상하이 등에서 사업을 했고, 김민자는 경기고녀(현 경기여고)를 다닐만큼 공부도 잘했다. 1929년 ‘최승희 무용연구소’가 설립되자 이듬해 문하생으로 들어갔다. 또래 중 재능이 뛰어났고, 그런 김민자를 최승희도 유독 아꼈다. 33년 최승희가 일본으로 건너갈 땐 제자 중 김민자만 데려갔다.



 일본에서 김민자는 바빴다. 최승희 딸을 키우는 보모를 했고, 일본 근대 무용의 선구자 이시이 바쿠에게 모던 댄스를 배웠으며, 당시 한국엔 소개되지 않았던 발레를 엘리아나 파블로바에게 익혔다. 무엇보다 최승희 춤의 파트너가 그의 주된 역할이었다. 최승희와 숙명의 라이벌이었던 조택원(1907∼1976)마저 일본에 머무를 땐 김민자에게 2인무를 제안했다는 기록을 보면, 그의 뛰어난 기량을 짐작할 수 있다.



 37년 최승희가 세계 순회공연에 나서자 김민자는 홀로 도쿄(東京) 무용연구소를 운영했다. 2년 뒤 한국으로 귀국해 서울 발레연구소를 설립하고, 40년엔 개인 발표회를 여는 등 최승희 그림자에서 벗어나 독자 행보에 나섰다. 그는 모던댄스, 발레, 조선춤 등 다양한 장르의 춤을 체득해 자신만의 몸짓으로 구현해낼 줄 아는 춤꾼이었다. 최승희·조택원과 같은 안무가는 아니었으나 한국 근대무용 최초의 전문 무용수였던 셈이다. 그의 대표작은 한국적 서정미가 넘쳐나는 ‘봄처녀’다.



 하지만 중년 이후는 다소 불행했다. 6·25 전쟁 당시 검사였던 남편이 납북되면서 홀로 남겨진 상처가 컸다. 60년대 들어서 조선악극단, 예그린악극단 등에서 안무를 했지만 명성에 비해 활동은 미미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성기숙 교수는 “광복 이후 송범·임성남 등이 한국 무용계 주류로 발돋움하면서 김민자는 구세대가 되고 말았다. 무용계 주도권 싸움에서 뒤쳐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민자는 60년대 후반 불교에 귀의, 서울 종암동 영산법화사에서 40여년간 불자로 살다가 지난해 11월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아 김민자의 춤 인생을 조명하는 행사가 마련된다. ‘최승희 1호 제자 김민자의 삶과 예술세계’란 이름으로 4월말 서울 대학로 춤자료관 연낙재에서다. 학술세미나·영상감상회·회고전 등이 열린다. 02-741-2808.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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