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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친아'인줄 알았던 율곡, 알고보니 문제아?

율곡 평전

한영우 지음, 민음사

372쪽, 2만3000원




율곡 이이(1536~1584)를 모르는 국민은 없다. 신사임당의 아들이자 10만 양병설을 편 충신이고, 『고산구곡가』(高山九曲歌)의 시인이자 이기이원적 일원론을 완성한 철학자. 위인전에 반드시 수록되는 5000원 지폐의 주인공.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감히 말하자면 누구나 율곡을 알지만 율곡을 정말 아는 이는 매우 드물다. 한영우 교수의 『율곡 평전』에는 뜨거운 가슴과 명민한 머리를 지닌 사내의 치열한 일생이 빼곡히 담겼다.



율곡 이이
 율곡에 대한 기존 이미지는 ‘엄친아’에 가깝다. 신사임당에게서 조기 교육을 받고 건실하게 자란 모범생. 그러나 평전에 등장하는 청소년기의 율곡은 방황을 거듭하는 ‘문제아’이다. 열 여섯살에 어머니를 잃은 것이 결정타였다. 급기야 열 아홉살에 출가하여 금강산에서 1년 동안 승려 생활을 한다. 이 때문에 환속 후 『자경문』(自警文)을 지었으며, 알성시를 치를 땐 성균관 출입이 잠시 막히는 등 ‘따돌림’까지 당했다.



 선조가 즉위한 뒤, 30대의 율곡은 본격적으로 시대와 불화했다. 흔히 선조 시절은 목릉성세(穆陵盛世)로 꼽힌다. 사림이 정계의 주도권을 잡았을 뿐만 아니라 탁월한 문학 작품들이 양산된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율곡은 동시대인들과 완전히 다르게 당대를 파악했다. 1581년 2월 26일 경연장에서 그가 편 주장을 보자.



 “지금 나랏일이 안으로는 기강이 무너져 백관이 맡은 직분을 다하지 않고, 밖으로는 백성이 궁핍하여 재물이 바닥나고 따라서 병력이 허약합니다.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 반드시 토붕와해(土崩瓦解)되어 다시 구제할 계책이 없을 것입니다.”



 왕과 신하들이 이만하면 태평성대가 아니냐며 자족할 때, 율곡은 당대를 ‘중쇠기(中衰期)’로 간주했다. 태조의 창업기와 세종의 수성기를 거쳐, 성(盛)이 극에 달하여 잘못이 만들어지고 법이 오래되어 폐(弊)가 생긴 중기의 쇠퇴기란 뜻이다. 무사안일과 수구에 머물면 나라가 멸망하는 위기상황이었다.



 율곡은 중쇠기를 극복하기 위해 ‘경장(更張)’을 강조했다. ‘경장’이란 국가의 기본 틀은 그대로 두되 낡고 병든 부분만 도려내는 일이다. 한영우 교수는 이것을 “혁명적인 개혁도 아니고 그렇다고 현실에 안주하는 것도 아닌 중간적 형태의 온건한 개혁”이라고 평하였다.



 율곡은 16살 아래인 선조를 개혁 군주로 만들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동호문답』(東湖問答), 『성학집요』(聖學輯要) 같은 책을 쓰고, 『만언봉사』(萬言封事)로 일컬어지는 긴 상소를 세 차례나 올렸다. 예의를 다하면서도 비판은 냉정했고 주장은 날카로웠다. 왕은 거침없이 바른 말 하는 신하가 껄끄러웠고 신하는 거듭 청해도 바뀌지 않는 왕에게 지쳐갔다. 그러나 율곡은 마지막까지 나아가서 아뢰었다. 선조는 끝내 직언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율곡의 수고가 헛된 것은 아니다. 율곡이 평생 지어 올린 글은 훗날 영조와 정조 그리고 고종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율곡은 또한 갈라지고 나눠 다투는 이들을 화해시키고 융합하고자 했다. 동인과 서인의 분당을 중립적인 입장에서 ‘조제보합(調劑保合)’했고, 신분과 빈부의 차이를 뛰어 넘는 지역공동체를 이루고자 다양한 형태의 향약을 실시했다. 철학에서도 ‘이(理)’와 ‘기(氣)’를 통합된 것으로 파악하고 칠정을 포함한 인간 행위를 긍정하였다.



 평전 속의 율곡은 평생 분주했다. 『은병정사학규』(隱屛精舍學規·이이가 문인들을 가르친 은병정사의 학칙)에 적힌 대로,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자정까지 집중해도 끝내기 힘들 만큼 많은 일을 했다. 아홉 번 거듭 장원을 한 천재적인 두뇌를 지녔다고 해도 이 끈기와 열정은 놀랍다. 문득 궁금해졌다. 율곡은 왜 이토록 부지런히 쓰고 바삐 움직였을까. 나라를 통합시키고 백성을 위하며 강한 군대를 키울 마지막 기회로 여겼기에 안간힘을 쓴 것은 아닐까. 그에겐 기약할 다음이 없었다.



 새 정부가 들어선다. 2013년을 태평성대 호시절로 만족할 사람이 있을까. 빈익빈 부익부에서부터 북핵까지 문제가 산적해 있다. 세 번째 ‘만언봉사’에서 율곡은 정치인을 상중하로 나누고, “상지(上智)는 난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다스리고 나라가 위태롭기 전에 미리 보전하는 사람”이라고 적었다. ‘중쇠기’의 징조를 확인하고 ‘경장’을 새롭게 펼칠 때가 바로 지금이 아닐까. 『율곡 평전』을 정독할 이유이기도 하다.



김탁환 소설가



●김탁환 서울대 국문학과 졸업(석사). 16세기를 다룬 장편소설 『불멸의 이순신』과 『나, 황진이』를 썼고 두 작품은 드라마로 방영됐다. 그 외 대표작으로 『혜초』 『열하광인』 등 백탑파 3부작, 『노서아 가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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