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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 설립자 고 조영식 박사 1주기

고 조영식 박사는 미래 학생들에게 쓴 편지에서 “인류 문화 발전과 세계평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인간성을 기르는 교육을 강조한 고인은 진정한 휴머니스트였다. [중앙포토]
“인간 이전에 학문 없고 인간 위에 학문이 있을 수 없다.”



49년 전 미래의 학생들에게 부친 편지 … “인간 위에 학문 없다”

 경희대 설립자 고(故) 조영식(1921~2012) 박사가 49년 전 미래의 학생들을 위해 쓴 친필 편지에서 밝힌 내용이다. 조 박사는 “설립자로서 창학 정신을 다음 세대에 전달하기 위해 메시지를 남긴다”며 “먼 미래에도 인류문화 발전과 세계평화 건설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1964년 10월 2일 조 박사가 직접 쓴 이 편지는 지난해 10월 학교 측이 고인의 유품을 정리하다 발견했다.



 조 박사는 편지와 함께 당시 경희대 재학생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내용을 본인의 본관 집무실 금고에 보관해 왔다. 당초 개교 50, 100주년에 개봉하기로 한 일종의 타임캡슐이었다. 그러나 1999년 개교 50주년 때는 고인이 생존해 있어 열어보지 않았다. 학교 측은 지난 18일 고인의 1주기 기념식 때 편지 원문을 처음 공개했다. 설문조사 내용은 지난 연말에 먼저 언론에 보도됐다. [중앙일보 2012년 12월 21일자 43면]



 누런 갱지에 정성스러운 붓글씨로 쓰인 편지엔 조 박사의 사상과 건학이념이 담겨 있다. 200자 원고지 27장 분량이다. 그는 편지 첫머리에서 “법이 있기 전에 사회가 있고 그 전에 도덕이 있다”며 “인간성을 기르는 교육이 경희대의 교육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본인의 말처럼 고인은 생전에 인간을 사랑한 휴머니스트였다. 편지 곳곳에는 인간, 평화, 문화와 같은 단어들이 수없이 등장한다.



 “선악이 있어 인간을 인간다운 길로 이끄는 것처럼 사회에도 정사(正邪)가 있어 정의의 대도(大道)로 나아갑니다. 정의와 복지, 평화와 같은 가치를 추구하는 데 인류의 대의가 있는 것이죠. 역사상 모든 인간의 값진 기여와 업적은 대부분 이 속에서 창조됐습니다.”



조 박사는 “학문의 목적은 인류문화 향상과 복리 증진, 나아가 세계평화 건설에 기여하는 데 있다”며 휴매너티(humanity·인간애)가 중심인 교육철학을 강조했다.



 편지에는 전후 혼란한 시대상에 대한 고민도 배어 있다. “2차대전이 끝난 지 20년 가까이 됐지만 동서 양 진영의 긴장은 아직 팽팽하고 언제 또 무서운 전쟁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세계 인구의 60%는 저녁에 배고픔을 참지 않고는 침상에 들 수 없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시대에 대한 그의 고민은 단지 체념과 부정으로만 끝나지 않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희망의 메시지로 승화된다.



① 1979년 고 조영식 박사가 저술한 『오토피아(Oughtopia)』 표지. ②③고인이 갱지에 붓글씨로 직접 써내려간 편지. 지난해 10월 학교 측이 고인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본관 집무실 금고에서 발견했다.
 “현재는 비관도 낙관도 모두 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이 같은 국난에서 한국민은 언제나 더욱 강해졌습니다. 현 시대는 암흑으로 뒤덮여 있지만 검은 먹구름 뒤에는 우리의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눈부신 광명이 있을 겁니다.” 고인의 예측대로 대한민국은 49년이 지난 지금 국내총생산(GDP) 규모 세계 12위의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고인은 편지 말미에 미래 세대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편지의 내용처럼 조 박사는 지인들에게 인문주의자 ·평화주의자 등의 이름으로 기억된다. “전란의 폐허 속에서도 인류애와 평화와 같은 이상을 교육철학으로 삼았죠. 언제나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던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사상가요, 행동가였습니다.” 김종회 한국문학평론가협회장(경희대 교수)의 회고다.



 그의 사상은 생전에 저술한 51권의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특히 1979년 세상에 내놓은 『오토피아(Oughtopia)』는 인류애를 바탕으로 한 그의 철학이 집대성돼 있다. ‘ought to be’와 ‘topia’의 합성어인 ‘오토피아’는 이상 속에만 존재하는 ‘유토피아’와 달리 노력을 통해 실현이 가능한 사회를 뜻한다.



오토피아는 민족·국가·종교 간 갈등을 뛰어넘어 인권주의, 호혜주의, 문화주의 등에 기초해 전 세계가 공존공영 하는 사회다. 이 같은 사상을 바탕으로 국제 평화운동을 벌여온 그는 1981년 세계대학총장회의에서 ‘평화의 날’ 제정을 주도했다. 같은 해 코스타리카 정부의 도움으로 유엔 총회에 이 안건을 제출했고, 참여 국가들의 만장일치로 9월 셋째 주 화요일이 ‘세계평화의 날’로 제정됐다.



 한 시대를 평화주의자와 인문주의자로 살았던 그는 가족에겐 어떤 존재였을까. “한평생 학자로 일관된 분이셨죠. 학생들과 강단에서도, 가족들과 밥 먹을 때도 늘 인류와 문화·평화에 대한 말씀을 했습니다.” 아들인 조인원 경희대 총장의 말이다.



조 박사는 자녀들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독후감을 쓰게 했고 매일같이 밥상머리 교육을 했다. 1988년 조 총장이 미국에서 공부(정치학)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조 박사는 환영 인사 대신 15년 전 아들이 대학 1학년 때 쓴 독후감을 내밀었다. “8년 만에 유학을 마치고 온 아들에게 독후감을 큰소리로 읽어보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성장했는지 스스로 생각해 보라는 뜻 같았습니다. 선친께서는 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중시했습니다.”



 한때는 선친의 학문이 조 총장의 뜻과 달라 갈등을 겪기도 했다. “한창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왔을 때는 철학과 신학, 민속학 등 다양한 분야가 접목돼 있는 아버지의 사상이 학문적 가치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천명(知天命)인 50세가 넘어서면서부터 이해가 되더군요. 요즘 말로 통섭을 했던 겁니다.” 인류와 문명, 평화에 대한 그의 열정은 오토피아평화재단, 인류사회연구원, 평화복지대학원, NGO대학원 등의 설립으로 이어졌다.



 조 총장도 선친의 뜻을 받들어 ‘인문학’을 중시하는 ‘후마니타스 칼리지’를 2011년부터 운영해 오고 있다. 후마니타스 칼리지는 국내 최초의 학부생 교양교육 총괄 기구로, 경희대생들은 졸업 전 총 35학점의 교양강좌를 이곳에서 이수해야 한다. 후마니타스(Humanitas)는 라틴어로 ‘이상적 인간’이란 뜻이다.



조 총장은 후마니타스가 뜻하는, 또한 선친이 바랐던 경희의 인재상을 이렇게 설명했다.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이해, 공동체적 가치를 갖춘 실천적 지식인을 육성하는 게 목표입니다. 바로 사람을 모든 가치의 중심에 놓을 줄 아는 인재죠. 이들이 사는 세상이 바로 오토피아입니다.”



윤석만 기자



◆고(故) 조영식 박사



평북 운산에서 태어나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1951년 경희대 전신인 신흥초급대학(2년제)을 인수해 교육자의 길을 걸었다. 65년 미국·영국 등의 대학 총장들과 세계대학총장회의(IAUP)를 창립했고 68년 IAUP 서울대회를 유치했다. 유엔 ‘세계평화의 날’ 제정을 주도하는 등의 공로로 아인슈타인 평화상, 마하트마 간디상, 국민훈장 무궁화장 등 67개의 상훈을 받았다. 고(故) 오정명(1921~2008) 여사와의 사이에 조정원 세계태권도연맹(WTF) 총재, 조인원 경희대 총장 등 2남과 조여원 경희대 교수, 조미연 경희학원 이사 등 2녀를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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