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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연의 시시각각] 우리 머릿속 불가사리

이규연
논설위원
흔히 열 받는 일이 생길 때 술이나 매운 음식을 찾는다. 화끈하게 청양고추가 든 낙지볶음에 소주를 마시기도 한다. 스트레스와 알코올, 스트레스와 매운 음식의 연관성은 어느 정도 밝혀졌다. 그렇다면 알코올과 매운 음식은 어떤 사이일까. 최근 우리 연구진(부산대 김성곤 교수)이 ‘이웃사촌’이라고 그 답을 제시했다. 알코올과 매운 음식 모두 우리 뇌 속 아편계 통로를 활발히 움직이게 한다는 것이다. 부작용 정도가 달라서 그렇지, 뇌에게 소주·낙지볶음·아편은 비슷한 존재들이다.



 스트레스로 커진 불안을 억누르고 쾌감을 얻기 위해 사람들은 눈·입·코·귀·피부로 물질을 섭취한다. 횟수가 잦아질수록 점점 물질의 노예가 된다. 세상에는 별별 중독이 다 있다. 며칠 전 지상파 예능프로그램에 한 달에 맛소금을 15봉지가량 섭취하는 여성의 사연이 소개돼 시청자를 놀라게 했다. 아이스크림·피자·치킨 등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음식에 맛소금을 친다. 소금통을 머리맡에 두고 자고 외출할 때도 반드시 지참한다. 이미 심각한 대사이상이 왔지만 소금 없이는 심심해 못 산다고 여성은 말한다.



 술·도박·마약·소금이 전통적인 중독 물질이라면 스마트폰·온라인게임 등은 정보사회가 만든 중독 매개체다. 변화 속도가 유난히 빠른 한국에는 신·구 중독이 공존한다. 경쟁을 숭상하기에 스트레스도 넘쳐난다. 중독사회의 요건을 다 갖추었다. 실제로 국제비교를 해보면 5대 중독 중 마약을 제외한 도박·알코올·온라인·니코틴의 중독 수준은 모조리 상위권에 속한다. 온라인 중독 면에서는 불명예 일등국이다.



 우리 머릿속에서 여러 중독 통로가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다는 사실이 최신 연구로 확인됐다. 매운 음식과 알코올 중독이 이웃사촌이듯, 알코올 중독이 담배 중독으로, 인터넷 중독이 도박·마약 중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복합중독은 고려 말 혼돈기에 출현했다는 불가사리 괴물을 떠올리게 한다. 밥알이 뭉쳐져 탄생한 괴물은 쇠붙이를 먹어치우며 좀처럼 죽일 수 없는 불가살(不可殺)의 존재가 된다. 스트레스·불안이 만들어낸 머릿속 불가사리도 갖가지 중독 물질을 먹어치우며 덩치를 키운다.



 한국의 구세대는 오랫동안 중독에 관대했다. 알코올 중독자를 애주가, 니코틴 중독자를 애연가라 부른다. 노름을 ‘즐긴다’고 표현한다. 표현 뒤에는 태도가 있고, 태도가 행동으로 표출됐다. 신세대 역시 일찍 인터넷·온라인게임에 손을 댄다. 5분에 한 번씩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데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20조원 이상의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는 알코올 중독을 막기 위해 정부가 쓰는 돈은 고작 80억원 수준이다. 한국은 중독사회이자 중독 무방비사회인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가 도박 사이트를 운영한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면서 국가의 사행정책을 원색적으로 비판했다. 거악(巨惡)을 저지르는 국가의 손으로 (피의자를) 중죄로 단죄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는 취지였다. 사행 욕구를 풀 배수구는 몇 개 만들어주고 나머지를 단속하는 선택이 상식에서 벗어난 정책은 아니기에, 국가와 거악을 연결한 판사의 표현은 분명히 과했다. ‘국가와 지방정부가 엄청난 세수를 거둬들이면서 도박 중독 같은 거악을 방치하는 상황을 감안한다’고 표현했다면 논란은 적었으리라.



 어제 광주광역시가 5대 중독을 통합 관리하는 센터를 선보였다. 복합중독에 입체적으로 대응하려는 지방정부의 시도다. 범정부 차원에서 복합중독과 맞설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중독은 전설의 불가사리처럼 완전 퇴치가 안 되는 구조적 병폐다. 하지만 노력하면 그 몸집을 줄이고 증식 속도는 늦출 수 있다.



 개인 차원에서도 머릿속 불가사리가 커지지 않게 노력해야 한다. 폭주 기관차에서 잠시 내려 덜컹거리던 마음을 가라앉히자. 술 없는 낙지볶음 식사도 도움이 된다. 스스로에게 한 줄의 시를 보내면 더욱 좋다고 서울대 윤대현 교수는 조언한다. ‘그래, 이 정도면 괜찮아’.



이규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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