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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고건의 공인 50년 (7) 대통령의 종이 한 장

오랫동안 많은 대한민국 총리가 대독(代讀)·방탄(防彈) 총리로 불려왔다. 대통령 대신 자리에 참석해 청와대가 써준 연설문을 읽거나 대통령이 받아야 할 비판을 대신 받는 게 본업(本業)이라는 일종의 야유였다. 그 틀을 깨려고 부단히 노력해 왔다. 그 얘기를 잠깐 해보려고 한다.

 1997년 3월 5일 나는 김영삼 정부 마지막 총리가 됐다. 마지막 내각에는 출범 초기와 같은 기대 섞인 환호가 없다. 엎질러진 물을 다시 그릇에 담는 것처럼 힘든, 뒤처리 전담반의 노역만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한보 사태’ 때문이었다.

 이날 오전 취임식을 마치자마자 청와대에서 서둘러 들어오라는 연락이 왔다. 김영삼 대통령의 호출이었다. 대통령 집무실 회의탁자를 사이에 두고 김 대통령의 오른쪽 옆에 앉았다. 그는 한 장짜리 서류를 들고 있었다.

 “개각을 해야겠습니다.”

 그러고는 종이에 적힌 명단을 읽어 나갔다.

 “경제부총리 강경식, 통상산업부 장관 임창열, 건설교통부 장관 이환균….”

 난 받아 적기 바빴다. 그래도 임명제청권을 행사할 총리인데, 명단이 적힌 종이 한 장 더 뽑아주면 될 것을. 대통령 비서실 관행이 고약하다 싶었다. 다 읽은 김 대통령은 서류 너머로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어떻나? 괜찮나?’ 하는 눈빛이었다.

 “경제개각만 하셨네요.”

 “그래요.”

 “한보 사태 수습이 급선무입니다. 시중 여론에서 대통령도 경남, 한보 회장도 경남, 법무부 장관도 경남, 검찰총장도 경남, 중수부장도 경상도. 전부 경상도라 한보 사태 수사가 제대로 될 것이냐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정국을 수습하려면 안우만 법무부 장관은 바꾸는 것이 좋겠습니다.”

 “….”

 즉석에서 해임 제청권을 행사했다. 김 대통령은 판단이 빨랐다.

 “그럼 누가 좋겠어요?”

 “신문에 오르내리는 사람으로 최상엽 전 법제처장, 그리고 아무개가 있습니다.”

 김 대통령은 바로 인터폰 버튼을 ‘삑’ 눌렀다. 비서실에 최 전 처장을 연결하라고 지시했다. 그러고 그에게 “법무장관을 맡아달라”고 했다. 전화기에서 “아, 네, 알겠습니다”란 답이 흘러나왔다. 휴대전화가 귀하던 시절이다. 최 전 처장이 전화기 옆에 없었다면 두 번째 후보에게 법무장관 자리가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YS식’ 개각은 그만큼 순식간에 진행됐다.

YS 재임 중 함께했던 총리들과 만찬 1998년 1월 7일 퇴임을 앞둔 김영삼 대통령이 재임 중 임명했던 총리들을 불러 만찬을 했다. 왼쪽부터 이홍구(94년 12월~95년 12월), 이영덕(94년 4~12월), 황인성 전 총리(93년 2~12월), 김 대통령, 이수성 전 총리(95년 12월~97년 3월) 그리고 고건 당시 총리(97년 3월~98년 3월). 그때 한나라당 명예총재였던 이회창 전 총리(93년 12월~94년 4월)는 참석하지 않았다. [중앙포토]

 통화를 마친 김 대통령은 다시 물었다.

 “그럼 다 된 건가요?”

 “네. 다 좋습니다. 다만 이번에 꼭 안 해도 되지만 곧 대통령 선거를 관리해야 합니다. 선거 주무장관이 내무부 장관인데 지금 한나라당 현역 서정화 의원이 맡고 있습니다. 중립성 문제도 있고 선거 전 적당한 시기에 바꿔야….”

 말을 맺기도 전 김 대통령은 답했다.

 “언제 또 개각하노. 그럼 내무장관으로 누가 좋겠어요?”

 1안으로 호남 출신 아무개, 2안으로 강운태 전 농림부 장관을 얘기했다. 김 대통령은 다시 인터폰 버튼을 누르더니 “강운태 전 장관 연결하라”고 했다. 강 전 장관도 전화기 옆에 있었고 신임 내무부 장관으로 낙점됐다.

 김 대통령이 다시 물었다.

 “다 됐습니까?”

 “하나 더 있습니다.”

 짜증 낼 만도 한데 김 대통령은 그러지 않고 차근히 내 얘기를 들었다.

 “경제팀은 경제부총리 중심으로 팀워크가 맞아야 합니다. 강경식 경제부총리 내정자를 불러서 임창열 통상산업부 장관 이하 명단을 알려주고 의견을 확인해야 합니다.”

 “옳은 얘기지. 그럼 발표를 언제 하면 되겠어요?”

 “지금 제가 3부 요인 예방 일정이 있어서. 오후 1시 반에서 2시 사이 전화드리겠습니다.”

 김 대통령은 인터폰 버튼을 다시 한 번 꾹 눌렀다.

 “개각 발표 오후 2시로 미루세요.”

 총리 집무실로 돌아와 오전 11시 강경식 경제부총리 내정자를 불렀다.

 “부총리로 내정된 것 아시죠?”

 “네. 알고 있습니다.”

 “그럼 다른 경제부처 신임 장관들은 누군지 아세요?”

 “그건 모릅니다.”

 나는 신임 경제부처 장관 내정자 이름을 쭉 불러줬다. 그리고 물었다.

 “어때요? 신임 장관들과 팀워크가 잘 맞을 것 같습니까?”

 “네. 잘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답은 시원스러웠다. 오후 2시를 조금 남긴 시각. 3부 요인 중 한 명인 윤관 대법원장을 만나는 일정이 끝났다. 대법원의 청사 별실 하나를 비워달라고 미리 부탁해뒀었다. 1층의 그 방으로 들어가 김 대통령에게 전화했다.

 “강경식 경제부총리 내정자가 경제부처 신임 장관 후보들과 팀워크를 잘 이룰 수 있다고 합니다. 그대로 개각 발표하시면 되겠습니다.”

 김 대통령은 흡족해했다. 오후 2시쯤 개각 명단이 발표됐다.

 그리고 1년이 지난 98년 3월 3일. 대통령 집무실 같은 장소에 내가 있었다. 회의 탁자 앞에 앉은 대통령만 바뀌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서류 한 장을 들고 앉아 쭉 읽어나갔다. 새 정부 내각이다 보니 명단이 길었다.

 물론 내 앞에 명단이 적힌 종이는 없었다. 대통령 비서실의 고약한 버릇은 여전했다. 하지만 듣는 나는 1년 전보다는 훨씬 여유로웠다. 명단에 있는 이는 나와 일할 사람이 아니다. 받아 적을 필요가 없었다. 김 대통령이 읽어 내려가는 후보자 면면을 떠올리며 ‘아, 이 사람은 JP 지분이로구나. 함께 일할 JP와 인선 협의가 됐구나’라고 혼자 생각했다. 난 형식적 임명 제청을 맡을 뿐이었다.

 김종필 총리 후보는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의 반대로 국회 임명 동의를 아직 받지 못했다. 서리 신분으로 임명 제청한 장관들이 행한 업무는 법적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 내가 DJ정부 일일 총리로서 장관 임명 제청을 맡게 된 사연이다. 명단을 다 읽은 김 대통령은 내 얼굴을 쳐다봤다.

 “고심하셨네요.”

 내 할 얘기는 그뿐이었다. 김 대통령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러면 제청해 주시는 겁니까?”

 “아, 제가 제청해야죠. 어떻게 하겠습니까? 제가 제청하러 오지 않았습니까?”

 “아, 정말 고맙습니다.”

 김대중 대통령과 나의 첫 단독 면담은 그렇게 짧게 끝났다. 김영삼·김대중 대통령 시절 개각을 떠올리면 대통령이 홀로 쥐고 있던 종이 한 장이 생각난다. 그동안 대통령과 총리 간 장관 인선 논의가 ‘협의’보다는 ‘통보’에 가까웠다는 것을 짐작게 하는 풍경이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과 나는 달랐다.

정리=조현숙 기자

이야기 속 사건 - 한보 사태

문민정부 말기인 1997년 1월 한보철강 부도로 드러난 대규모 권력형 비리사건. 한보철강 부도 직후 검찰 수사를 통해 당시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이 부실·특혜 대출을 받으려고 여야 국회의원, 은행장, 장관은 물론 대통령 측근까지 금품을 주고 로비한 사실이 드러났다. 한보 사태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그해 5월 현직인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씨가 금품 수수혐의로 수사를 받아 조세포탈죄로 구속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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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