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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와유(臥遊)

와유(臥遊)   -  안현미(1972~ )


내가 만약 옛사람 되어 한지에 시를 적는다면 오늘밤 내리는 가을비를 정갈히 받아두었다가 이듬해 황홀하게 국화가 피어나는 밤 해를 묵힌 가을비로 오래오래 먹먹토록 먹을 갈아 훗날의 그대에게 연서를 쓰리

‘국화는 가을비를 이해하고 가을비는 지난해 다녀갔다’

허면, 훗날의 그대는 가을비 내리는 밤 국화 옆에서 옛날을 들여다보며 홀로 국화술에 취하리


수더분하게 생긴 낯익은 얼굴. 안현미 시인을 처음 만난 게 6년 전쯤 연희창작촌이라고 기억하는데 그녀는 그 이전에 인사를 나누었다고 말한다, 어쩌겠는가. 나의 기억력이 거기까지인걸. 여하튼 그녀의 시는 역동적으로 산란하는 언어를, 꿈틀거리는 욕망을, 그리고 울컥하는 불편을 두루 건네준다. 그런 그녀가 정색을 하고 전통적 여인의 퍼스나를 쓰고 정한(情恨)을 이야기한다. 옛사람이 되어 한지에 시를 쓴다면 오늘밤 내리는 정갈한 가을비를 받아다 한 해를 묵히겠다고. 그리고 이듬해 가을 국화가 황홀하게 피는 밤, 그 빗물로 오래오래 먹먹토록 먹을 갈아 훗날의 그대에게 연서를 쓰겠다고 한다. 이 여인, 욕심이 보통이 아니다. 현재의 빗물을 받아 이듬해 국화향 가득한 밤을 기다리고, 해를 묵힌 물로 곱게 먹을 갈아 다시 훗날의 그대에게 보낼 연서를 쓰겠다니. ‘국화는 가을비를 이해하고 가을비는 지난해 다녀갔’으니 훗날의 그대 가을비 내리는 밤 국화 옆의 내력에 어찌 취하지 않겠는가. 정한의 팜므 안현미, 아무리 가린다 해도 그 일렁이는 에너지를 어떻게 감출 수 있겠는가.

(곽효환·시인·대산문화재단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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