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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의 시시각각] 빽바지는 가고 난닝구는 남고

권석천
논설위원
“너무 늦어버리기 전에 내가 원하는 삶을 찾고 싶어서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떠납니다.”

 진보정의당 소속 유시민 전 의원(이하 경칭 생략)이 어제 트위터를 통해 정계은퇴의 뜻을 밝혔다. 그의 이름처럼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흥미로운 건 민주통합당의 뒤끝 있는 반응이다.

 “기득권과 기성정치에 끊임없이 도전한 그의 비주류 정신은 높이 살 만하지만 그가 서 있던 곳에는 분열의 씨앗이 뿌려졌다는 것이 세간의 평가다.”

 이러한 논평은 ‘빽바지-난닝구’ 논쟁을 연상시킨다. ‘빽바지’는 유시민이 2003년 4월 재·보선 당선 후 국회 본회의장에 옅은 베이지색 면바지를 입고 나타난 이후 개혁파(수도권+친노무현계)의 상징이 됐다. ‘난닝구’는 2003년 9월 새천년민주당이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으로 갈라서기 직전 당무회의장에서 러닝셔츠 차림의 50대 남성이 당 사수를 외친 뒤 당권파(호남+구민주계)를 가리키는 용어로 자리 잡았다. 양측의 갈등은 2005년 4월 열린우리당 전당대회에서의 노선 다툼을 시작으로 고비가 있을 때마다 불거졌다.

 당내 분란의 한복판에 섰던 유시민은 이후 정치적 롤러코스터를 타야 했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후 야권 대선후보 지지율 1위로 급부상했으나 다음해 6·2 지방선거에서 김문수 경기도지사에게 패했다. 민주노동당 등과 통합진보당을 꾸린 뒤 지난해 통진당 비례대표 부정선거 사태로 또 한 번 위기를 맞았다. 당시 당권파(경기동부연합)의 행태를 비판하며 ‘유시민의 재발견’이란 말도 나왔지만 결국 “한때는 대통령 후보로 거론됐던 사람인데 아주 망했다”(지난해 11월 거리캠페인)는 자신의 표현대로 되고 말았다.

 하지만 민주당이 퇴장하는 유시민의 뒤통수에 대고 ‘분열의 씨앗’을 거론한 것은 지나친 감을 지우기 어렵다. 더욱이 민주당은 지난해 12월 대선 패배 후 계파 싸움과 무능 정치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상황이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지난주 금요일 “광주에서 허벌나게 치욕적 비난 받고 목포로 갑니다” “광주 개XX들아 술 주면 마시고 실수하고 그러면 죽고”라는 취중 트윗을 날린 것은 그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차라리 BBK 의혹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징역 1년을 살고 출소한 ‘나꼼수’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나는 지난 6일 저녁 서울시청 신청사에서 열린 ‘오마이뉴스’ 주최 특강에서 그의 변신을 느꼈다. 그는 교도소 독방에서 단련했다는 식스팩 못지않게 업그레이드된 인식을 선보였다.

 “지난 대선 때 저들(새누리당)은 잘했고 우리(민주당)는 못했다. 국민들에게 절실하게 다가가는 노력이 부족했다…정권교체 안 돼도 다음 달 세비는 나온다. 당은 반성 못하고 우당탕탕할 것이다. (국회의원) 임기가 너무 많이 남았다. 나를 버려야 하는데 버리는 사람이 단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500여 명의 참석자 중엔 젊은 얼굴들뿐 아니라 나이 지긋한 얼굴도 있었다. 이들은 속이 후련한 듯 단상을 향해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민주당은 이런 민심을 얼마나 체감하고 있을까. 5월 전당대회에서 새 지도부를 선출한다고 달라질 수 있을까.

 유시민의 정계은퇴에 대해 이백만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페이스북에서 “유시민의 좌절은 우리의 좌절”이라고 했다. “유시민이 그동안 했던 정치는 정당개혁운동이었다. 더 엄격히 말하면 외부로부터의 ‘민주당’ 개혁운동이었다.”

 정치인 유시민의 실험은 실패했다. “왜 저토록 옳은 이야기를 저토록 싸가지 없게 할까”라는 평도 들었던 그였지만 이젠 한 사람의 시민, 지식소매상으로서 기탄 없이 옳은 이야기를 해주길 기대한다. 문제는 빽바지가 사라진 정치권에 오롯이 남은 민주당이다. 솔직히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정부·여당을 견제하고 정치의 생산성을 높일 건강한 야당과 새로운 정치는 불가능한 것인지 답답한 노릇이다.

권석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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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