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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 들려주고 아이돌 그룹도 아는 소탈한 ‘名재상’

야당은 “또 한 명의 대독 총리가 될 것”이라 했다. 여당에서도 “적임자를 못 찾아 이명박 대통령이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대타(代打)”라고 했다.

인간 김황식

그러나 2년5개월이 지나고 퇴임을 앞둔 지금, 김황식(65) 총리는 ‘명(名) 총리’ ‘공감·소통의 총리’란 평을 듣고 있다.

김황식 총리가 2010년 인사청문회에서 한나라당 이정현 의원이 ‘파독 간호사’를 다룬 글에 대해 질의하자 울먹이며 답하고 있다. [중앙포토]
김 총리는 재임 기간에 굵은 눈물을 세 차례 흘렸다. 2010년 국회 인사청문회장에서 파독 광부와 간호사 얘기를 할 때, 2011년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로 숨진 전사자 1주기 추모식에 참석했을 때, 지난해 6월 페루 댐 건설공사 사전 조사차 헬리콥터를 타고 나섰다 목숨을 잃은 7명의 해외건설 역군에게 그해 11월 훈·포장을 추서할 때 그랬다.

김 총리의 눈물은 행사장의 권위와 엄숙함에 익숙한 우리 사회에서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공감과 연민을 그토록 여실히 드러내는 총리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국정을 장악하고 업무를 조정하는 데도 실력을 발휘했다. 검·경 수사권 다툼과 과학비즈니스벨트 입지 문제 등에서 뚝심 있는 조정자 역할을 해냈다.

김 총리는 국민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섰다. 우선 소통 수단이 다양했다. 2011년 3월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시작했다. 그해 4월 제주 4·3사건 희생자 위령제 참석차 제주도를 방문했을 때는 ‘자작시’를 발표했다. “…누가 제주를 그저 우리 대한의 사랑스런 막내라고 하는가/ 제주가 노래하면 반도도 노래할 것이요/ 제주가 가슴앓이하면 반도도 가슴앓이할 것이다/ 그렇기에 제주는 희망·평화·번영의 섬이어야 한다….”

젊은 세대와의 소통을 위해서도 노력했다. 지난해 3월 대전의 한 중학교를 방문한 자리에서 아이돌그룹 비스트를 예로 들며 “비스트는 다른 그룹에 속해서 연습하다 탈락한 아이들이 모여서 만든 그룹인데 지금 유럽에서 특히 인기가 있다”고 말했다. 그런 장면은 2010년 총리 취임 인사차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을 찾았을 때와 대조적이다. 자승 스님이 “공정 사회를 강조했는데 (환풍기 수리공 출신으로) 성공 신화를 이룬 허각을 혹시 아느냐”고 묻자 김 총리는 “모른다”고 답하며 민망해 했다.

소탈한 성격은 많은 일화를 낳았다. 2011년 10월 총리공관에 학력 차별을 극복한 기업인 등을 초청한 자리에서 김 총리는 갑자기 바지를 걷어올렸다. 자신이 입고 있는 내복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는 “어릴 때 어른들이 ‘건강 비결은 내의를 빨리 입고 늦게 벗는 것’이라고 했다”며 ‘내복 예찬론’을 펼쳤다. 김 총리는 인사청문회 때 “부친께서 농사도 지었지만 양말 공장, 메리야스(내복) 공장도 하셨다”며 내복과의 인연을 알리기도 했다.

지난해 5월 모교인 광주일고를 찾았을 때는 대학 낙방 경험까지 털어놨다. “소속이 없다는 것이 사람 마음을 굉장히 허전하고 외롭게 만듭니다. 재수하는 친구들끼리 어울리다 보니 정도 깊어지고 동병상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람은 어느 경우든지, 상황에 맞게 성실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김 총리는 여러 면에서 행복한 길을 걸어왔다. 4남3녀 중 막내인 그의 집안은 전남 장성군에서도 손꼽히는 명문가였다. 아버지 는 한학자였고 형과 누나들은 의사, 교사, 군수, 대학총장 등으로 각각 활동했다.

고교 때는 배드민턴과 농구를 즐겨 학교 대표선수로 활약했고, 서울대 법대를 거쳐 사시 합격 후 사법연수원에선 수석을 했다. 공직생활도 순탄했다. 대법관·감사원장을 거쳐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총리에까지 올랐다. 이제 김 총리는 ‘어떻게 인간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새로운 인생’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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