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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적이고 그로테스크하고 … 재미까지!

오랜만에 하노버에서 만난 선생님(아리에 바르디 하노버 국립음대 교수)과 즐거운 대화 중이었다. 곧 있을 내 독주회 프로그램에 대해 들으신 선생님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셨다. “알캉의 ‘이솝의 향연’을 치면서 나한테 말도 안 했단 말이야?! 내가 그 곡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나야말로 화들짝 놀랐다…단연 최고의 지성을 자랑하는 선생님이 의외로 모든 음악을 차별 없이 좋아하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알캉이라고? 솔직히 나는 그에 대해 한번도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동시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리스트도 질투할 정도의 초절정 기교파 피아니스트였다는 알캉. 악마적 기교로 점철해 놓은 그의 피아노 음악들. 그 정도였다. 자기과시적 기교가 난무한다는 이유로 리스트의 음악을 비하하는 사람들의 현학성을 싫어하는 나지만 알캉의 음악에선 심지어 리스트 음악 특유의 낭만성과 서정성조차 찾기 힘드니까. 마치 하얀 가운을 입고 실험실에서 쓴 것만 같은 과도한 이성미, 그 위에 현대 컴퓨터 음악처럼 일일이 짜맞춘 듯한 메트리크와 한 곡에 음표 3만 개를 난사해 놓은 후대의 라흐마니노프보다도 더한 ‘음표질’은 그의 이름이 오늘날 왜 잊혀졌는지에 대한 답이라고 여겼었다.

[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 샤를 발랑탱 알캉의 ‘이솝의 향연’

프랑스 국립 도서관
샤를 발랑탱 알캉(Charles-Valentin Alkan·사진). 1813년 파리에서 태어난 그는 사립 음악 학교를 운영하던 아버지 알캉 모항주(Alkan Morhange)의 성 대신 이름을 물려받았다. 6살의 나이에 파리 음악원에 입학한 신동 샤를 발랑탱은 다음 해인 일곱 살 때 이미 솔페주(solfege, 기초과정)와 화성학, 피아노와 오르간 모두에서 최고점을 받고 이듬해에는 단독 음악회까지 연 신동이었다. 게다가 이 음악회에서 그가 연주한 것은 피아노도, 오르간도 아닌 바이올린. 모차르트의 재래였다. 샤를 구노, 조르주 비제, 세자르 프랑크 등을 가르친 요제프 치머만에게도 그는 최고의 애제자였다.

20대가 된 그는 기교적인 피아노 연주로 이름을 날리던 리스트, 지기스문트 탈베르크, 프리드리히 칼크브레너 등에 대항하는 최고의 기교파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쇼팽과도 종종 함께 연주했던 그는 문학가 조르주 상드와 빅토르 위고 등과도 깊은 교류를 나누며 파리 사교계의 총아로 주목받게 되었다. 그러나 비사교적인 성격으로 은퇴와 재등장을 반복하던 그는 1853년 연 두 번의 공개 연주를 마지막으로 긴 공백기에 접어들었다. 20년이나 지나 1873년 무대로 돌아왔을 땐 4년간 성실히 연주를 선보였지만 그게 끝이었다. 말년에는 모든 걸 접고 구약성경 번역 등 종교 생활에 심취했다.

“알캉을 좋아하세요?” 내가 선생님께 물었다. “당연하지! 그 사람은 심지어 탈무드에 깔려 죽었잖아!” 아차, 무신론자인 선생님 본연의 유대인 프라이드를 깜박했다. 1888년 작고한 그의 사인이 책장 높이 있는 탈무드를 꺼내려다 그의 위로 엎어진 서고에 의한 압사라는 설은 제일 많이 알려지기는 했으나 확실하진 않다. “게다가 그 곡은. 테마부터 완전히 하시딕(Hasidic)이잖아. 유대인이 아니고는 전혀 쓸 수 없는 멜로디와 화성이지. 하지만 물론 그게 다는 아니야. 다시 한 번 봐. 그 곡은 정말 모든 면에서 대단한 곡이야.”

‘Le Festin d’Easop’, 한국말로 풀이하면 이솝의 ‘잔치(Feast)’쯤 되는 이 곡은 ‘단조 연습곡 작품번호 35’ 중 마지막 열두 번째 곡으로 여덟 마디의 주제를 스물 다섯 개로 변주한 변주곡이다. 그런데 집에 와서 다시 보니 이 10분 미만의 짧은 곡이 실로 엄청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일단 화성법들이 대단히 진보적이다.

크로마티시즘에 온갖 불협화음, 무조 화성에다가 농담처럼 등장하는 교회 선법까지… 라이벌이었던 리스트가 무조 음악의 시초로 논의될 정도의 진보적 발전을 이룩하기 수십 년 전에 작곡된 곡이지만 그만큼 앞서 있다. 악기론적으로도 탁월하다. 쇼팽의 24개의 연습곡에 있는 모든 피아노 기교가 이 곡 하나에 다 들어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주제는… 유대인이 아닌 나로서는 유대 전통 음악을 쉽게 떠올리지는 못했지만 이 곡 전체와 그의 다른 음악을 함께 들여다보니 곳곳에서 그의 출신 성분이 뚜렷이 드러났다. 내용 면에서 전통과 혁신을 자유로이 오가는 유대인 특유의 잽싼 마인드와 장조와 단조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화성 전개, 악기적 색깔에 무게를 많이 두고 음고 하나하나의 가치를 높이 살린 특색 등은 같은 피를 가지고 있었던 선배 멘델스존의 음악과도 닮았다. 특히 그 모든 것을 아무 힘도 들이지 않고 쓴 듯한 매끄러운 텍스처가 가장 닮았다. 하지만 고유의 악마적인 시상과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는 멘델스존보다 오히려 더 뛰어나다. 중간중간 드러나는 광기 역시 강한 내러티브를 배경으로 하는 리스트의 이유 있는 광기보다 훨씬 더 공포스럽고 통찰력 있다.

무엇보다 선생님을 매료시키는 것은 ‘재미’라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음악회장에서 꼭 어떤 숭고한 감동을 받아야만 가치 있다 생각하지만 내 생각은 완전히 달라. 감탄스러운 기교에 얼굴을 찡그릴 사람은 한 명도 없어. 그 재미야말로 가장 원초적인 감동이지.” 그 ‘감동’을 찾는 사람이라면 앞으로 주저 없이 알캉을 추천해야겠다.

도민이 행복한 더 큰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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