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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축전을 읽으면 북한 세습통치가 보인다

북한의 대규모 공연은 외부세계를 의식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다. 대규모 스펙터클을 통해 북한이라는 국가가 내부 주민에 대해, 또 외부세계와 대해 어떻게 기능할지를 계산한 정치와 예술의 결합체다. 사진은 만경대학생소년궁전 학생공연 중 ‘통일무지개’ 장면. [사진 창비]


극장국가 북한

권헌익·정병호 지음

창비, 339쪽, 2만원




북한의 세 번째 핵실험으로 나라 안팎이 시끄럽다. 기존 대북 정책의 실패 논란이 일고 있다. 이 난국을 겪으면서 떠오르는 첫 번째 단어는 ‘반복’이다. 이번 도발은 분명 새로운 사건이다. 하지만 이미 두 차례 경험이 있기에 일정 부분 기시감도 있다. 문제는 이 ‘반복’이 핵실험에만 제한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분단과 한국전쟁 이후 남북간의 크고 작은 충돌은 근본적으로 반복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핵문제나 남북문제, 나아가 통일문제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이념적 입장에 따라 편향성이 강했다. 또 그 이해의 범위나 깊이가 턱없이 부족했다.



 이 책이 반가운 것은 최근의 암담한 남북관계와 지지부진한 북한 연구 때문이다. 지난해 미국에서 출판된 『North Korea: Beyond Charismatic Politics』의 한국어판이다. 인류학자들이 북한의 권력문제를 다루었다는 것부터가 흥미롭다. 북한연구의 다양성 측면에서 환영할 일이다.



이우영
 저자들은 정치학자·국제정치학자들이 과점해왔던 북한 연구의 폭을 넓혔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로 있는 권헌익 교수는 사회주의 체제였던 구(舊) 소련 시베리아 연구와 체제전환 국가인 베트남의 추모문화 연구로 세계적 인정을 받았다.



 또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정병호 교수는 탈북자 적응문제,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문제 등에 참여해왔다. 여러 차례 북한을 방문하는 등 현장과 실천을 중시해왔다.



 한글판 제목이 말하고 있듯이 이 책의 목표는 ‘극장국가’ 이론으로 북한권력의 현실을 설명하는 데 있다. 개인적 차원에 바탕을 두고 있는 ‘카리스마’가 개인을 넘어서서 대를 이어 3대째 지속되는 이유를 천착하고 있다.



 ‘극장국가’는 정통성과 권위는 물리적 강제가 아닌 상징과 의례를 통하여 재생산된다는 이론이다. 인류학자 클리포드 기어츠(Clifford Geertz)가 만들고, 일본 역사학자 와다 하루키(和田春樹)가 북한 분석에 일차적으로 적용했다.



 저자들은 극장국가가 북한의 정치현상을 가장 적절하게 설명할 수 있다고 본다. 영어제목으로 인용된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카리스마 이론도 끌어들인다.



북한의 선전용 포스터. ‘선군정치’란 군사우선 또는 군대우선의 정치이념을 뜻한다.
 저자들은 유격대 국가이론과 가족국가 개념을 들어 김일성과 빨치산이 1967년 이후 권력을 독점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구현된 국가적 스펙터클과 문학예술현상에 주목한다.



 대표적인 게 아리랑축전이다. 학생 ·여성· 군인 등 고도로 훈련된 시민-배우가 해마다 10만 명 이상이 동원된다. ‘예술과 정치의 첨예한 결합체’다. 아리랑축전에서 공연하는 대중들은 국가의 가상적 이미지를 현실로 만드는 데 참여하게 된다.



 아리랑 공연은 2002년 시작됐지만, 그것은 1970년대 초 선보인 정치적 예술의 정점으로 봐야 한다. 이에 앞서 ‘피바다’ ‘꽃 파는 처녀’ 등의 혁명가극이 있었다. 두 작품에 나타난 주인공들의 비극적 삶은 민족 전체의 운명을 상징한다. 국가 전체가 하나의 통일된 생명체이자 확대된 가족을 이룬다, 대중들은 조상을 기억하는 것처럼 국가에 대한 충성을 체화하게 된다.



 1930년대 김일성의 유격전투도 과거의 유산에 그치지 않는다. 계속 재현되고 재경험되는‘ 살아있는 전통’으로 자리잡게 됐다. 이 과정에서 유격대국가는 극장국가의 예술적 밑바탕이 됐고, 또 극장국가는 통치의 패러다임으로 기능하게 됐다.



 저자들은 특히 김일성의 사망을 계기로 개인적 카리스마가 세습적 카리스마로 전환됐으며, 그 전환이 효과적으로 진행됐다고 지적한다. 그렇다고 북한체제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북한 정권이 핵무장을 추진하고, 인민의 생존보다 군의 권력을 우선하는 것을 ‘잔인하고 비도덕적인 경제정책’으로 비판하고 있다.



 또 이러한 인위적인 예술정치는 한계가 분명하기에 북한의 새 지도부가 역사에 대한 겸손한 태도를 보여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극장국가로서의 정치적 전략을 끝내는 행동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다양한 생각과 입장이 교차하는 21세기 국제사회에서 북한 사회의 정통성 또한 다른 사회에서 인정·승인할 때에만 의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몇 가지 아쉬운 점도 있다. 첫째, 고통받고 있는 북한 주민에 대한 구체적 논의가 부족한 편이다. 둘째, 저자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활용하는 북한의 다양한 기획들(아리랑에서 혁명열사릉, 그리고 혁명가극들까지)간의 차별성도 상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셋째, 북한 권력에 대한 이론적인 검토와 현실에 대한 판단 사이에 간극이 존재한다.



 예컨대 “북한과 한민족임을 주장하면서도 인위적인 북방경계선 너머의 동포들이 겪는 고통에 관한 공동체적 생존의 윤리를 망각했던 것으로 보이는 남한이 바꾸기를 바란다”는 저자들의 주장에 동감하지만, 핵을 무기로 오직 정권의 안위만을 관철하려는 북한 권부를 바로 눈 앞에 두고 있는 남한 독자 입장에서는 혼란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은 북한 문제를 고민하는 전문가나 학자들에게 자극이 될 것은 분명하다. 관성적으로 북한을 이야기해온 사람들에게는 성찰의 계기가 된다. 세계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국가로 남아있는 북한의 작동원리를 들여다보는 길라잡이가 되기에 충분하다.



이우영 북한대학원 대학교 교수



●이우영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석·박사). 경남대 북한대학원 겸임교수, 통일연구원 책임연구원을 지내고 2008년부터 북한대학원 대학교에 재직하고 있다. 공저 『북한체제의 이해: 제도와 정책의 지속과 변화』 『남북한 비교론』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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