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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고건의 공인 50년 (3) 탄핵 그리고 대통령 대행 ③

고건 대통령 권한대행은 2004년 3월 22일 촛불시위를 주도한 시민단체를 포함해 18개 단체 대표를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 초청했다. 고 대행은 “탄핵 찬반 시위를 자제해야 할 시점”이라고 당부했다. 왼쪽부터 최열 환경운동연합 대표(현 환경재단 대표), 송보경 시민사회발전위원회 위원장(소비자리포트 대표), 이학영 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총장(민주통합당 의원), 김상희 여성민우회 대표(민주통합당 의원). [중앙포토]

청와대에서 나와 국무총리실이 있는 서울 세종로 정부 중앙청사로 향했다. 차를 타고 가는 5분이 지난 5시간보다 더 길게 느껴졌다. 갑작스레 대한민국이 내 어깨에 얹혀 있었다. 하지만 감정에 잠겨 있을 시간이 없었다.

 “대통령 탄핵으로 한국 경제가 정치적 격랑 속에 빠져들고 있다.”(워싱턴포스트)

 “외국 투자자들에게는 정치 불안이 북한 핵 위기보다 더 심각한 불확실성의 원천이 됐다.”(파이낸셜타임스)

 외신은 분주하게 한국의 위기를 타전했다. 금융시장은 요동쳤다. 2004년 3월 12일 종합주가지수는 전날보다 2.43% 급락한 848.8로 마감했다. 오후 5시50분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과 정세현 통일부 장관을 총리 집무실로 불렀다. 반 장관에게는 “정부 방침이 해외에 제대로 전파됐는지 확인하라”고, 정 장관에게는 “남북관계 상황 관리에 차질이 없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반드시 해야 할 일도 남아 있었다.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와 전화 통화였다. 오후 6시15분이었다.

 “헌정의 비정상 운영을 초래한 탄핵 소추에 대해 깊은 유감입니다. 전 국무위원의 뜻입니다. 하지만 국정 현안을 일체의 동요 없이 추진해 나가기로 했습니다.”

 수화기 너머 최 대표는 잠깐 숨을 고르는 듯하더니 답했다. “국정운영에 한나라당이 적극 협조하겠습니다.”

 1998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나는 국민회의 후보로, 최 대표는 한나라당 후보로 맞붙었다. 6년이 지나 나는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최 대표는 대통령 탄핵 소추안 의결을 이끈 야당의 대표로 다시 만났다. 통화는 짧았다.

 오후 8시 1급 이상 간부들을 모아 회의를 하고 나서야 공식 일정을 마칠 수 있었다. 이날 밤 극도의 피곤이 몰려 왔지만 잠이 올 리 없었다. 그래도 13일 아침은 왔다. 오전 9시 중앙청사 총리실 브리핑룸. 수많은 카메라 앞에 섰다.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저는 헌법에 따른 국정의 관리자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비상한 각오로 국가적인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혼신의 노력을 다해 나가겠다는 것을 다짐 드립니다.”

 오전 9시30분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열었다. 대통령 권한대행 자격으로 주재한 첫 공식 회의였다. 30분 뒤 경제·외교·안보장관회의를 개최했다. 오후엔 톰 리지 미 국토안보부 장관을 만났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러 한국에 왔지만 권한대행인 나와 마주 앉아야 했다. 대통령을 대신한 첫 외빈 접견이었다.

 “탄핵 소추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상황은 안정돼 있습니다. 한·미 동맹을 기반으로 한 외교정책 기조를 계속 유지할 것입니다.”

 나의 말에 리지 장관은 답했다.

 “현재 한국이 정치적으로 어려운 상황임에도 대외적으로는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14일 오전 충남 논산으로 향했다. 폭설 피해를 본 농가 현장을 챙기기 위해서였다. 분초를 다투는 위기 상황이지만 ‘한국 국정은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대외에 알리는 게 중요했다. 폭설 현장 점검 일정을 마치고 서둘러 귀경했다. 서울에서 시민단체 주요 인사들과 점심이 예정돼 있었다. 약속 시간인 오후 1시를 한참 넘긴 오후 2시쯤 인사동 밥집 ‘산호’에 도착했다.

 “아이고, 늦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현장에 다녀오느라….”

 서영훈 전 적십자사 총재, 이세중 전 변호사협회장, 최열 환경운동연합 대표, 한덕수 국무조정실장, 그리고 지금 서울시장인 박원순 변호사가 나를 맞았다. 그들을 만난 것은 탄핵 소추 가결 반대 촛불 시위 때문이었다. 당시 촛불 시위는 문화행사로 진행되고 있었다. 법으로 시위를 막을 방법은 없었다. 양해부터 구했다.

 “이미 탄핵 소추안 가결에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와 국민의 뜻은 충분히 표현됐다고 봅니다. 더 이상의 촛불 집회는 반대편 입장에 서 있는 이들을 자극할 수 있습니다. 4·15 총선이 코앞에 닥친 지금 상황에서 시위를 자제하는 게 현명할 것 같아요.”

 최열 대표가 입을 열었다. “다음 촛불 시위 날짜와 장소는 이미 정해져 공고됐습니다. 모든 준비도 마쳤고요. 한 번만 더 촛불 시위를 하고 더 이상은 하지 않도록 힘쓰겠습니다.”

 부탁을 들어줘 고마웠다. 5년 전 환경운동연합에서 나와 이세중 전 협회장은 공동대표로, 최열 대표는 사무총장으로 함께 활동했다. 신뢰와 우정이 있어 가능했다 생각한다.

 숙제는 남아 있었다. 13일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 조순형 민주당 대표와 김종필 자민련 총재 등 3당 대표가 만나 18일 임시국회를 소집하겠다고 합의했다. 이날 나에게 시정연설을 하라는 요구도 했다. 탄핵 정국의 정치게임이었다. 나도 정치적으로 응수했다.

"원내 4당이 합의를 해오면 시정연설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금융시장도 챙겨야 했다. 탄핵 사태 첫날 월가에서 한국의 외평채 가산금리가 급상승했다. 우리 국가신인도에 대한 해외시장의 평가가 급격히 나빠지고 있다는 신호였다. 반 장관에게 연락이 왔다.

 “중·일·러 장관과는 통화를 했습니다. 그런데 아직 미국 장관과는 통화를 못했습니다.”

 “왜 통화를 못합니까?”

 “시차 때문인지 연결이….”

 “새벽이라도 깨워서 연락하세요.”

 한국 시간으로 다음날인 3월 13일, 미국시간으로 12일 리처드 바우처 미 국무부 대변인은 “한·미 동맹은 여전히 강력하고 안정적이며 긴요하다”고 밝혔다. 요동치는 금융시장을 가라앉히는 단초가 됐다. 반 장관이 애쓴 덕분이었다.

 월요일인 15일 종합주가지수는 지난 12일보다 0.4% 오른 852.26으로 마감했다. 급등했던 환율도 하락세로 돌아섰다.

 폭풍 같은 나흘이 지났다. 눈을 감았다. 2002년 12월 말 당선자 신분이었던 노 대통령과 만났을 때 그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몽돌과 받침대….”

정리=조현숙 기자

◆ 역사 속 지식

외평채 가산금리


외국환평형기금은 원화를 노린 투기자본의 공격에 맞서고 원화 환율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정부가 쌓아놓은 자금이다. 이 기금을 모으려고 발행하는 채권이 외평채다. 채권의 특성상 투자자에게 금리를 얹어줘야 한다. 경제 상황에 따라 가산금리( 기준금리에 덧붙는 금리)가 달라진다. 한국경제가 탄탄할 때는 금리를 낮게 매겨도 채권이 팔리지만 경제가 어려워지면 그 위험만큼 높은 금리를 얹어야 한다. 외평채 가산금리는 한국 대외신인도가 어느 수준인지 평가하는 잣대가 된다. 외평채 가산금리가 급등한다는 것은 한국경제를 보는 외국인 투자자의 시각이 그만큼 부정적이란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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