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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재미없는 레슬링이 자초한 ‘올림픽 퇴출’

김 환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13일 경기도 용인시 삼성트레이닝센터에서 만난 2012 런던올림픽 레슬링 금메달리스트 김현우(25·삼성생명)는 “꿈을 꾸는 것 같다”고 했다. “정말로 레슬링이 올림픽에서 퇴출되는가”라며 수차례 되물었다. “레슬링 역사가 얼마나 오래됐는데 설마…”라며 혼잣말을 했다.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안한봉(45·삼성생명) 감독도 “믿을 수 없다. 밤새 잠을 설쳤다. 후배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레슬링이 2020년 올림픽부터 퇴출될 위기에 처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집행위원회는 12일 레슬링을 2020년 대회부터 채택할 25개 핵심 종목(Core Sports)에서 제외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국내 레슬링계는 충격에 빠졌다. 역대 올림픽 메달 집계에서 유도(40개)에 이어 2위(35개·금메달 11개, 은메달 11개, 동메달 13개)에 올라 있고, 오랫동안 국민에게 사랑을 받아온 종목이기에 허탈함은 더 컸다.

 양정모는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한국 올림픽 역사상 첫 금메달을 안겼다. 이후 레슬링은 안한봉·심권호(1996 애틀랜타·2000 시드니 금)부터 정지현(2004 아테네 금)·김현우까지 수많은 스타를 배출했다.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이겨내고 올림픽 때마다 감동의 드라마로 국민을 웃기고 울렸다.

 레슬링은 인간 신체의 순수함과 올림픽 정신을 가장 잘 드러내는 종목이다.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맨몸을 맞대 힘과 기술을 겨룬다. 시대가 변하며 다양한 기술이 등장했지만 ‘힘과 힘의 대결’이라는 바탕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 레슬링 퇴출을 결정한 IOC에 대해 “상업주의에 물들어 올림픽 정신을 훼손했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하지만 레슬링계가 참사를 자초한 측면도 있다. 국제레슬링연맹(FILA)은 “레슬링이 재미없다”는 목소리를 애써 외면했고, 변화에 둔감했다. 재미있고 공격적인 경기를 유도하기보다는 이기기 위해 수비에 집착하는 걸 방치했다. 런던올림픽에 무려 18개의 금메달이 걸릴 정도로 몸집은 비대해졌다. 하지만 개성 있는 스타 선수나 화려한 기술은 나오지 않았다.

 아직 희망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레슬링은 5월 열리는 IOC 집행위원회에서 야구-소프트볼·가라테·우슈 등 올림픽 신규 진입을 노리는 7개 종목과 경쟁한다. 퇴출 여부는 9월 열리는 IOC 총회에서 확정된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역전의 기회는 있다.

 올림픽만 바라보고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레슬링 유망주들이 크게 동요하고 있다. 이들에게서 희망을 빼앗아가지 않으려면 레슬링계가 크게 각성해야 한다. ‘지상에서 가장 오래된 스포츠’도 세상의 변화를 이길 수는 없다.

김 환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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