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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열의 정치학…관습만 있고 규정은 없는 중국의 권력 서열

질서를 중시하는 중국 정계에서 지도자의 서열은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다. 현직과 은퇴한 지도자가 참석하는 행사를 보도할 때의 명단의 서열은 종종 다양한 정치적 의미를 숨기고 있다.1980년대까지 많은 원로 지도자들은 여전히 일선에서 근무했다. 권위와 경력에서 이들은 현직 지도자는 아니었지만 서열에서 현직을 앞섰다.이들 지도자 명단은 뉴스 보도를 통해 대중들에게 노출됐다. “중앙매체는 모두 중앙에서 한 장의 명단을 하달 받았다. 이 명단에 따라 현직 및 퇴직 지도자들의 앞 뒤 순서를 매겼다”



2013년1월21일 관영 신화사가 보도한 ‘양바이빙(楊白氷)동지 베이징서 화장’이란 제목의 뉴스에서 장쩌민(江澤民) 전 중공중앙총서기의 이름이 정치국 상무위원 7명과 전직 상무위원 4명 뒤인 12번째에 등장했다. 국가급 정직 지도자인 후진타오(胡錦濤), 우방궈(吳邦國), 원자바오(溫家寶), 자칭린(賈慶林) 뒤였다. 이 보도 이전의 모든 뉴스보도에서 장쩌민의 이름은 총서기 뒤, 다른 상무위원 앞이었다.



1월22일 신화사는 장쩌민의 서열이 변한 원인을 밝혔다. 18차 당대회 이후 장쩌민이 직접 지금부터 당과 국가영도인의 서열에서 자신을 기타 노(老) 동지와 똑같이 배열하도록 중앙에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한 공산당원의 고상한 품격과 굳은 절개와 너그러움을 체현한 것”이라는 설명이 덧붙었다. 또 다른 장면. 2012년12월6일 중국농공민주당 제15차전국대표대회가 베이징에서 열렸다. 중공중앙정치국상무위원 위정성(兪正聲)이 축사를 했다. 그는 흰색 셔츠와 붉은색 넥타이 차림으로 중공중앙의 축사를 읽었다. 위정성 외에도 이날 행사에는 전국인민대표대회, 국무원, 전국정협 지도자가 참석해 축사를 했다. 현장에서 좌석 서열과 뉴스 보도 서열은 다음과 같았다. 위정성, 전국인대 상무위원회부위원장 화젠민(華建敏), 국무위원 량광례(梁光烈), 전국정협부주석 쑨자정(孫家正)….



이 순서는 임의로 정한 것이 절대 아니다. 관례에 따르면 현임 당과 국가 영도인 서열은 일반적으로 당의 영도자가 가장 앞서고 중공중앙정치국상무위원이 그 다음, 정치국 위원, 정치국 후보위원, 중앙서기처서기로 이어진다. 그 뒤에 전국인대와 국무원, 인민법원, 검찰원의 지도자 순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전국인대 상무위원회 부위원장, 국무원부총리, 국무위원, 전국정협부주석, 중앙군사위원회위원이 뒤를 잇는다. 중앙서기처 서기의 뒤의 서열은 주로 행정직무에 따른다. 당원 여부는 기준이 아니다. 전국인대 상무위원회 부위원장 가운데에는 장수성(蔣樹聲), 저우톄눙(周鐵農) 등 비당원이 적지 않다. 이들의 서열은 당원인 다이빙궈(戴秉國), 량광례(梁光烈)에 우선한다.



단 행정직무가 결코 서열의 유일한 근거는 아니다. 18차 당대회 이전 왕강(王剛) 전국정협부주석의 이름은 항상 다른 부위원장, 부총리 앞에 자리잡았다. 이는 실수가 아니다. 중앙정치국위원을 포함한 배열 규칙을 따른 것이다. 왕강은 당시 중앙정치국위원으로 여러 직무를 겸직한 지도자였다. 겸직 지도자의 경우 서열은 맡고 있는 지위 중 가장 높은 직위를 기준으로 한다. 왕강의 경우 정치국위원이 당시 최고 직무였다. 즉 정치국위원을 기준으로 서열을 매겼다.



중앙정치국위원의 서열은 직무와 당내 경력에 따라 서열을 정하는 중앙정치국상무위원과 달리 성씨(姓氏)의 필순에 따른다. 이 때문에 왕강은 17대 중앙정치국위원 가운데 명단의 가장 앞자리를 차지했다. 중앙정치국위원 중 전국인대상무위원회 부위원장 왕자오궈(王兆國), 부총리 후이량위(回良玉)이 성씨 필순에 따라 왕강의 바로 뒷자리를 차지했다. 1987년 13차 당대회에서 선출된 중앙위원회는 역대 가장 적은 5명의 중앙정치국상무위원만을 선출했다. 당시 서열은 중공중앙총서기, 국무원총리, 중앙기율위서기, 중앙서기처상무서기, 국무원상무부총리 순이었다.



당시 당 총서기는 국가주석을 겸직하지 않았다. 1988년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 7기 1차회의에서 양상쿤(楊尙昆)이 국가주석에 당선됐다. 하지만 양상쿤은 정치국상무위원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다른 정치국상무위원과 같이 보도될 때 순서는 총서기 뒤 총리 앞 자리에 위치했다. 전인대 7기 2차 회의에서 완리(萬里)가 전인대 상무위원회 위원장에 당선되고, 리센녠(李先念)은 정협회의에서 전국정협주석에 당선됐다. 그들 역시 모두 정치국상무위원은 아니었다. 하지만 국가급 지도자로 이들의 이름은 총리 리펑(李鵬) 뒤, 중앙기율위원회 서기 차오스(喬石) 앞에 자리 잡았다.



1993년 중공중앙총서기 장쩌민이 국가주석과 군사위원회 주석직을 동시에 맡게 됐다. 이 때부터 전인대상무위원장(차오스)와 전국정협주석(리루이환(李瑞環))은 줄곧 정치국상무위원을 맡았다. 총서기, 총리, 전인대상무위원회위원장, 전국정협주석 이 네 개의 국가급 지도자의 서열은 고정되기 시작했다. 단 위원장 서열은 총리 뒤였다. 1998년 전 국무원총리 리펑이 전인대상무위원회 위원장에 당선되면서 전인대 위원장이 총리 앞에 위치했다.



국가급 정직(正職)을 맡은 정치국상무위원 뒤의 다른 상무위원의 서열은 고정되지 않았다. 15기 중앙정치국상무위원 가운데 중앙기율위 서기 웨이젠싱(尉健行)은 부총리 리란칭(李嵐淸) 앞에 위치했지만 16기 중앙정치국상무위원 가운데 황쥐(黃菊) 부총리의 서열은 우관정(吳官正) 중앙기율위 서기 앞에 자리잡았다. 17기 정치국상무위원 가운데 리커창(李克强) 부총리의 서열도 허궈창(賀國强) 중앙기율위서기 앞을 차지했다.



1980년대 문혁후 간부의 단층이 생겼다. 적지 노간부들이 일선에서 근무했다. 이들은 정직 지도자는 아니었지만 서열에서 정직 지도자를 앞섰다. 덩샤오핑(鄧小平)의 지위는 가장 특수했다. 그는 당에서 어떤 최고 지도자 지위도 맡지 않았다. 하지만 그와 다른 당 최고 지도자가 동시에 참석할 경우 서열은 구체적인 상황을 살펴봐야 한다.



1989년11월 85세인 덩샤오핑은 모든 현직에서 물러났다. 뉴스보에서 그는 중앙총서기 장쩌민 뒤, 다른 지도자 앞에 위치했다. 당시 덩샤오핑을 제외하고도 천윈(陳雲), 펑전(彭眞), 덩잉차오(鄧穎超) 등 정치국상무위원 앞에 위치한 이미 일선에서 물러난 원로 지도자도 적지 않았다. 1989년10월1일 저녁, 베이징에서 40주년 건국기념행사가 열렸다. ‘인민일보’는 “장쩌민, 덩샤오핑, 양상쿤, 리펑, 천윈, 완리, 리센녠, 펑전, 덩잉차오, 차오스, 야오이린(姚依林), 쑹핑(宋平), 리루이환, 왕천(王震) 등 당과 국가 영도인들이 천안문 성루에 올라 수도 군중들과 함께 경축했다”고 보도했다.



이 명단에서 이미 퇴직한 지도자 중 덩샤오핑, 펑전, 덩잉차오는 국가급 정직 영도를 역임했다. 천윈은 비록 국가급 정직 영도자를 맡지는 않았지만 당시 중앙고문위원회 주임이었기 때문에 당내 지위가 매우 높았다. 16차 당대회 이래 전국당대표대회 개막사에서는 모두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류샤오치, 주더, 덩샤오핑, 천윈 등 이미 돌아가신 원로 무산계급혁명가와 혁명 선열을 위해 묵념”이라고 배열한다.



2011년7월1일 중국공산당 창당 90주년 기념대회에서 2세대 지도자 대부분이 죽고, 3세대 지도집체 중 퇴임한 전직 상무위원들의 서열에 새로운 변화가 생겼다. 행사에 참가한 중앙영도인 명단 가운데 앞에는 현직 중앙정치국상무위원, 이어 정치국위원, 그 다음에 리펑, 주룽지, 리루이환, 쑹핑, 웨이젠싱, 리란칭, 쩡칭훙, 우관정, 뤄간 등 전 상무위원의 서열은 재임시와 일치했다. 이들 전직 상무위원은 퇴직 후에도 현임 상무위원과 같은 대접을 받았다.



신구 당과 국가 지도자가 함께 출석하는 경우에는 현직이 앞서고 전직이 뒤에 위치했다. 그리고[和]를 기준으로 앞에는 현임 지도자, 뒤에는 전임 지도자가 자리잡았다. 현직과 전직을 구분하는 기호로 ‘그리고[和]’외에도 ‘쉼표(,)’, ‘및[以及]’이 쓰인다. 지도자의 이름 배열은 중요한 정치 정보를 담고 있지만 성문화된 제도나 규범은 없다. 양더산(楊德山) 중국인민대학당사당건연구실 주임은 이러한 서열에는 관습화된 규율은 있지만 정식 문건 규정은 없다고 말한다. 국가급 주요 행사나 당내 주요 간부 사망시 뉴스 보도에서 “이러한 보도 가운데 중앙언론은 모두 중앙에서 하달된 명단을 갖고 있다. 이 명단에 따라 현임과 전임 지도자 서열을 보도한다.” ‘인민일보’ 1면을 편집하던 언론인의 말이다.



중국 정치의 특수성 때문에 중국 지도자의 이름 배열 순서는 외부의 차이나 워처들이 정치변동을 관찰하는 중요한 창구다. 이 창구는 문혁이 발동할 당시에도 작동했다. 문혁 초기 류사오치의 정치국상무위원 서열이 2위에서 8위로 밀려났다. 이는 그가 출당되고 박해당해 끝내 죽음에 이르는 전조였다. 문혁이 끝난 뒤 노간부들의 명예회복이 이뤄졌다. 이들의 이름이 뉴스보도에 등장하면 바로 활동 재개의 표시였다. 개혁개방 이후 정치 질서가 회복되고 서열 변동은 크게 줄어들었다. 퇴직 지도자가 늘어나면서 서열의 변화는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신경진 기자 xiao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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