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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조작 수렁, 죽었다 산 두 사내

승부조작을 했다는 오명을 씻고 제2의 축구 인생을 시작한 이정호(왼쪽)와 김응진. [사진 부산 아이파크]
경기 후 거친 숨을 토해내는 그들의 얼굴은 기쁨과 감격에 겨워 웃는 것 같기도, 우는 것 같기도 했다. 축구 선수 이정호(32)와 김응진(26·이상 부산 아이파크)은 계사년 설날, 그라운드에서 다시 태어났다. 부산 아이파크는 10일 홍콩 스타디움에서 열린 컵대회에서 홍콩 올스타와 격돌했다. 평범한 대회였지만 승부 조작 혐의로 영구 제명 징계를 받았다가 되살아난 두 명에게는 너무도 특별한 한 판이었다. 경기 후 이정호는 “이젠 딸에게 당당한 아빠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응진은 “앞으로는 어머니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지옥에서 보낸 한 철=2010년 10월 27일 수원전을 약 한 달 앞두고 친하게 지내던 동료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조폭에게 협박을 받고 있다. 가족이 다 죽는다”며 “승부 조작을 도와달라”며 막무가내로 돈을 건넸다. 이정호와 김응진은 경기 당일 고민 끝에 최선을 다해 뛰고, 돈은 나중에 돌려주기로 했다. 그러나 경기 후 돈을 돌려줄 수 없었다. 동료가 잠적해 버렸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조폭에게서 협박받고 있다는 건 승부조작으로 유인하기 위한 거짓말이었다.

 7개월 후 창원 지검에서 승부조작 사건을 본격 수사하기 시작했다. 이정호는 “일이 터지고 나서야 큰 죄를 저질렀다는 걸 알게 됐다. 죄책감에 하루에 두 시간도 못 잤다. 매일 쫓기는 기분이었다. 검찰에 자진 신고를 한 뒤에야 비로소 마음도 편해지고 잠도 잘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자진신고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프로연맹으로부터 영구 제명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축구에 걸었던 일생이 와르르 무너졌다.

 ◆“악의 구렁텅이 빠지는 건 한순간”=승부조작으로 영구 제명된 사람은 58명이다. 그중 이정호·김응진처럼 법정에서 무죄가 입증된 사람은 5명뿐이다. 성실하게 자진신고를 했고, 경기 중 오프사이드로 골로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이정호가 헤딩으로 상대 골망을 흔드는 등 최선을 다해 뛰었다는 점을 인정받았다.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무죄가 나오자 프로연맹에서도 지난해 11월 징계를 철회했다. 그리고 원 소속팀이던 부산 아이파크는 둘을 다시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그들 이외에 홍성요(34·전 부산)도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은퇴를 선택했다.

 이정호는 “재판이 진행 중이던 지난해 4월 첫딸이 태어났다. 아이가 자라 아빠가 승부조작을 했다고 알까 봐 개명을 할까 고민하기도 했다 ”고 회상했다. 김응진은 “힘든 시기였지만 어머니가 나만 보면 ‘너 때문에 내가 산다’고 말씀하시며 용기를 줬다. 무죄가 확정되던 날 어머니를 잡고 엉엉 울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어머니를 위해 뛰겠다”고 말했다.

 둘은 승부조작에 대해 “ 정말 한순간의 실수 때문에 악의 구렁텅이에 빠진 선수가 많다. 승부조작을 가볍게 생각하면 절대 안 된다. 절대로 우리 같은 후배들이 다시 나와서는 안 된다”며 몸서리쳤다.

 홍콩 올스타와의 경기를 3-1 승리로 이끈 부산의 윤성효 감독은 “두 선수의 몸 상태가 생각보다 좋다”고 평가했다. 가까스로 주홍글씨를 지울 기회를 잡은 둘은 “관중 앞에 선다는 게 이렇게 가슴 뛰는 일인 줄 몰랐다”며 축구 시즌 개막을 기다리고 있다.

김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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