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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했던 젊음은 떠나가고 마흔아홉, 사람을 보듬었다

‘빨치산의 딸’로 불리는 소설가 정지아는 “어린 시절 존재가 거부당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문학은 그 시절 그에게 구원이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열다섯 살의 나는 어른이 되었다고 확신했다. 스물다섯 살의 나는 인생을 안다고 자부했다. 서른다섯 살의 나는 소설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고 거들먹거렸다. 마흔아홉 살의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다.’

소설집 『숲의 대화』 펴낸 정지아



 5년 만의 소설집 『숲의 대화』(은행나무)를 내놓은 정지아가 쓴 ‘작가의 말’은 이렇게 시작됐다. 1990년, 인생을 안다 자부하던 25살에 빨치산 부모의 이야기를 쓴 장편 『빨치산의 딸』로 충격을 줬던 그다. 그 책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판매금지됐다. 그랬던 그가 이제 스스럼없이 말한다. “아무것도 모르겠다”고. 마음을 훌쩍 열어젖힌 덕이다.



 “스스로 편견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학생을 가르치며 많이 느꼈어요. 내가 고생은 남부럽지 않게 했다는 생각에, 한계에 부딪힌 아이들이 왜 극복을 못 할까 그랬거든요. 근데 살펴보니 대부분이 가정에 문제가 있더군요. 제 부모님은 가난했고 이데올로기적으로 치우치긴 했지만 제게는 절대적인 지지와 사랑을 주셨어요. 내 고통만 크다고 여겼던 건 무지하고 오만이었던 거죠.”



그래서일까. 책에 실린 작품 속 인물은 노선과 계층, 입장과 처지가 다르지만 서로 날을 세우지 않고 상대를 받아들인다. 만석꾼 자식으로 빨치산이 된 최와 한국전쟁 때 미군부대에 들어갔던 박, 프랑스 유학파로 대학교수가 된 김의 투닥거림을 그린 ‘혜화동 로터리’나 귀농한 전직 신문기자와 현지 주민의 부딪침을 다룬 ‘즐거운 나의 집’이 그렇다.



 “차이가 갈등을 빚어내요. 갈등이 역사 이래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이유죠. 나도 누군가에게 다르다는 걸 깨달으면 되는 건데. 우리 모두 다름을 품었으면 좋겠어요.”



 ‘봄날 오후, 과부 셋’을 비롯, 소설에 유머가 흐르는 것도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져서 그렇다 했다. “예전에는 세상을 정면으로만 봤어요. 이전 작품들은 한 사람의 마음만 깊이 바라봤으니까. 이제 측면으로 보기 시작했어요. 유머는 그런 비틂에 서 나오나 봐요.”



 정씨는 “어떤 인생이든 한 우주만큼의 무게가 있다”고 했다. 여전히 세상에 ‘겨우 존재하는 사람들’을 주목한다. 경계에 서 있돼, 그 경계를 넘어서려 애쓰는 이들이다. 중증장애인임에도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베트남 여인을 과수원에 숨겨주는 남자(‘천국의 열쇠’)나 한산 이씨 종손이지만 장가를 못 가는 아들을 외국인 여자와 결혼시킨 부모(‘핏줄’) 등이다.



 책 마지막에 실린 ‘나의 아름다운 날들’은 한 차선만을 고집했던 그가 차선을 변경하면서 켠 깜박이등 같다. 부유하게 태어나 고위공무원의 아내로 진창에 발 한번들이지 않은 채 고상하고 우아하게 살아온 김 여사의 이야기는 그의 작품에서 보지 못했던 스타일이다.



 “세칭 속물이라 했던 사람들과 섞이지 않고 살았는데 그런 사람들에게도 의미가 있더군요. 설령 내 판단이 옳았고, 내가 어떤 가치를 지향하든 속물이라 매도하는 사람들도 가족을 위해 세상을 위해 열심히 살아온 사람이에요. 단순하게 인생을 이해했던 나 자신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고. 앞으로 나올 작품의 예고편이라고 할까요.” (웃음)



 그는 “사람은 사람 속에서 살아야 한다”고 했다. 사람의 숲에서, 서로 기대고 살아가자는 것이다. ‘숲의 대화’라는 소설 제목이 이를 압축해 보여주는듯 했다.



글=하현옥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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