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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준 부인 "美명문대 정치학과 졸업한건…"

김영명 이사장이 예올 한옥 마당에서 부여 공예품인 컵받침을 들고 서있다. [안성식 기자]
‘예올’의 김영명(57) 이사장을 만난 건 지난 4일 서울 가회동 예올 한옥에서다. 한옥의 마당은 전날 내린 눈으로 솜이불을 깔아놓은 듯했다.



예올 재단 10돌 김영명 이사장
전통문화 보존만 하면 사라지죠, 생활 속으로 들어와야죠

 빌딩 숲 사이 자그마한 한옥. 이곳에서 ‘부여, 지역문화 싹틔우기 프로젝트’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예올이 지난 10개월간 진행해 온 문화지원 활동의 결과물을 담은 전시회다. 충남 부여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최공호 교수와 학생들, 그리고 이 지역 장인(匠人)들이 함께 만든 공예품들이 전시돼 있다. 부여 전통 문양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꽃병·그릇·쟁반·가구·벽걸이 등이다.



 “백제의 수도 부여는 역사와 문화는 풍부하지만 전통공예라고 할 만한 것은 거의 남아있지 않아요. 20~30년 후 부여의 전통공예라고 할 만한 문화를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예올은 2006년부터 장인 후원 사업을 시작했다. 처음엔 1년에 한 명씩 장인을 선정해 일정 금액을 지원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1년 지원이 끝나면, 그만이라는 게 문제였다. 그래서 만든 게 부여 프로젝트다. 장인들과 학생들이 교류하면서 전통의 현대화에 대해 고민하고, 전문 디자이너들의 조언을 받는 것. 나아가 일반에 판매 가능한 제품까지 만들어 내는 방식이다.



 “지금까지 없던 후원 방식이었죠. 특히 부여 지역 학생들이 가장 신나했어요. 이 프로젝트가 씨앗이 돼서 지역 경제도 활성화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전통이란 보존의 대상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의 대상이라는 그의 지론이 이 프로젝트를 이끌어 낸 힘이었다. “전통이란 생활 속에 살아있어야 생명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존재하는 전통문화를 있는 그대로 보존하는 데만 집중한다면 그 수가 줄어 사라지거나 박물관 유리관 안에서나 볼 수 있겠죠. 박제처럼요.”



 그는 올해 예올 설립 10주년을 맞아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2002년 친언니 김녕자(전 이사장)씨와 함께 한국 전통문화유산의 계승·보존을 위한 재단법인 예올을 창립한 지 11년 만이다. “한·일 월드컵이 열릴 때였어요. 월드컵 조직위원장이던 남편(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을 도와 외국 손님들을 많이 만났는데, 그들에게 한국을 제대로 알리기가 쉽지 않았어요. 뭔가 도움될 방법을 찾다가 예올을 창립했죠.”



 문화재 지킴이 활동, 전통 장인 후원, 한국 역사와 문화에 관한 외국인 대상 영어 강좌 등이 예올이 중점을 둔 프로그램이다. 예올은 작가 윤후명씨가 지어준 이름. “‘예’란 옛 것, 예쁜 것, 예의바른 것 등을 뜻합니다. 올은 ‘올곧다’ ‘올올이’ 할 때 쓰이는 올로 곧다, 돌아보다 등의 뜻이 있죠. 엄마의 마음으로 우리 문화재를 지켜나가자는 의미를 담았어요. 창립 회원 모두가 엄마였거든요.”



 그는 중국이나 미국 문화와 구별되는 우리 전통문화의 특징으로 자연과 교감하는 소박한 아름다움을 꼽았다. 그의 선친은 김동조 전 외무부 장관이다. 외교관이던 아버지를 따라 어린 시절 대부분을 해외에서 보냈다. “한옥의 작은 창으로 바깥을 바라보면 마음의 위로를 얻는 것 같아요. 선비 문화의 단아함, 질그릇의 소박함이 주는 편안함은 다른 어떤 나라 문화에서도 찾을 수 없어요.”



 김 이사장은 정몽준 의원의 부인으로 더 알려져 있다. 그는 인터뷰에 앞서 “정치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했다. 미국 명문 웰즐리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것도 정치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은 아니라고 했다. 고교 시절부터 진짜로 하고 싶었던 건 미술이었다. 좋은 강의를 찾아 다니다 정치학을 전공하게 됐단다.



 “뭔가를 만드는 것, 창작하는 것이야 말로 세상에 태어나서 해볼 만한 일”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지난해 중앙대 사진 아카데미에 등록한 이유다. 3년 후, 60세가 되는 해에 사진전을 여는 게 그의 목표다. 결혼 30주년이던 2009년 그는 남편에게 “앞으로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살겠다”고 선언하며 3주간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시작한 게 사진이다.



 “결혼하고 네 아이를 낳고 바쁜 남편 내조하느라 30년 넘는 세월이 흘렀어요. 이제 뭔가를 창작하기엔 늦었지만 창작 작업을 하는 사람들을 돕는 데 힘을 보태고 싶어요.”



글=박혜민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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