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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친구야, 설날 선물 끊기면 세상과의 끈도 정말 끊길까 그래도 ‘오늘이 선물’이야

[일러스트=강일구]




친구A의 한숨 소리. 휴-. 깊고 길었다. 왜?



 “선물 때문에. 요즘 명절 선물 돌잖아. 딱 하나 왔어. 그것도 지인이 보낸 것 하나. 지난 추석 땐 그러려니 했어. 그때도 딱 하나. 이번엔 갑자기 확 울적해졌어. 인간 관계가 딱 끊어진 듯해. 명절은, 명절 선물은 관계의 엄정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징표야. 선물은 인격에 따라붙지 않고 직함에 따라붙는다는 것, 그 쉬운 사실을 깨닫는 데 오십이 넘어버렸어. 이 나이 되니 선물은 그냥 선물이 아니더라고. 세상과의 끈이었어. 나와 세상을 이어주는 끈. 그게 끊겼다고 생각하니 단절감·고독·불안 이런 게 한꺼번에 밀려와.”



 1년 전까지 그는 속칭 ‘갑’에 속한 회사에 다녔다. “스마트폰을 열었어. 연락처에 저장된 수백 개의 이름들. 모두 친숙한 이름들이었어. 언제든 만나고 아무 때든 밥 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아니더군. 갑자기 자신이 없어졌어. 이름 하나하나를 넘기며 생각했지. 이리 보고 저리 보고…. 그러다 이름을 적어봤어. 결국 몇 사람 남지 않더라. 그 몇 사람도 선뜻 전화 걸기가 두려웠어.”



 A는 너무 진지했다. 무슨 말이든 해줘야 할 것 같았다.



 “아직 며칠 남았잖아. 선물 많이 올 거야.”



 “틀렸어, 선물 전에 택배에서 먼저 연락 오잖아. 한 건도 없었어.” 이크, 잘못 건드렸구나. 그럼 다른 걸로 다시.



 “‘선물은 무쇠도 녹인다’고 얘기하던 직장 동료가 있었어. 맞는 말이지. 하지만 반대도 있어. ‘선물로 맺은 관계, 선물 끊기면 끊긴다.’ 그러니까 명절, 선물 스트레스 받지 마.”



 “설날 선물은 인생 성적표 같아. 보통 연말연시에 인사가 나잖아. 그 결과가 설날에 반영되는 거지.”



 내가 다시 위안의 말을 떠올리는 순간, A가 말을 이었다.



 “인류학자 나카자와 신이치는 『사랑과 경제의 로고스』에서 ‘최고의 선물’을 ‘증여’라고 정의했어. 아무 대가 없이 주는 것, 가치를 따질 수 없는 것, 돈이나 다른 걸로 바꿀 수 없는 것. 고대로부터 인간은 선물을 통해 물건이 아닌 사랑과 신뢰를 전달할 수 있기를 바랐대. 나카자와는 또 말했어. 설날이 되면 ‘증여의 원리’가 고대의 망령처럼 되살아난다고. 그 망령이 이제 내겐 발길을 끊은 거지.”



 말문이 막혔다. 떠올랐던 위안의 말은 꿀꺽 삼켜야 했다. 미국의 국민 만화가 빌 킨이 남긴 말, ‘오늘이 선물이다(present is present*)’. 늘 갑이던 A에게 전하기엔 그 ‘오늘’의 유효기간이 너무 많이 지난 듯했다.



 *어제는 역사, 내일은 미지, 오늘은 신의 선물. 우리가 오늘을 선물이라고 부르는 이유지(Yesterday is history, tomorrow is a mystery, today is a gift of God. Which is why we call it the present.)



글=이정재 논설위원·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사진=강일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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