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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중국 지도부는 왜 프랑스혁명을 연구하나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유상철
중국전문기자


지난해 연말의 일이다. 중국 공산당의 군기(軍紀)반장 역할을 맡게 된 왕치산(王岐山) 정치국 기율검사위원회 서기가 전문가 좌담회를 소집했다. 주제는 반부패(反腐敗). 무겁고 엄숙한 분위기였다고 한다.

 한데 왕치산이 갑자기 책 한 권씩을 돌리기 시작했다. "지금 많은 이들이 포스트 자본주의 시대 책을 보는데 그 이전 시기의 것도 봐야 한다”는 말과 함께. 책을 받은 전문가들은 다소 놀랐다.

 이제까지 중국에서 잘나가는 책은 대부분 중화(中華)의 영광을 다룬 것들로 대당제국(大唐帝國)이나 대청제국(大淸帝國) 등을 소재로 한 게 많았다. 그러나 이번 책은 부상이 아닌 쇠망(衰亡)에 관한 것이었다.

 그것도 중국에서 멀리 떨어진 프랑스 이야기인 데다 시기 또한 200여 년 전의 사건을 다루고 있었다. 프랑스 정치학자 알렉시스 토크빌이 1856년에 펴낸 『앙시앵 레짐(舊體制)과 프랑스혁명』이다.

 1789년의 프랑스혁명을 분석한 이 책은 토크빌의 역작이다. 하나 중국에선 프랑스 연구자들 사이에서나 읽혀질까, 대중적인 서적은 아니었다. 그런 책을 왕치산이 일독을 권한 이유는 무얼까.

 이 책에서 강조된 ‘토크빌의 역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역사 교과서는 흔히 독재자의 폭정이나 부패가 극에 달해 민중의 삶이 도탄에 빠질 때 혁명이 일어난다고 말한다.

 그러나 토크빌은 ‘혁명이 발생하는 건 상황이 가장 나쁠 때가 아니라 상황이 개선될 때이며 특히 물질적 조건이 개선되는 시기’라고 분석했다. 중국 지도부의 고민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중국의 상황이 프랑스혁명 전야와 닮아 있다는 위기의식이다. 지금 중국 인민의 생활 수준은 1949년 건국 이래 가장 높다. 지난해 중국의 1인당 GDP는 6200달러를 기록했다. 광둥(廣東)성 선전(深?)의 경우엔 2만 달러로 한국에 가깝다.

 그러나 현재 중국 사회에 대한 인민의 불만 역시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중국에선 50인 이상 모이는 집단 시위가 매일 500건 이상 발생한다. 강제 철거 반발, 부패 관리 척결, 정치 개혁 요구 등 시위의 이유는 참으로 다양하다.

 토크빌은 ‘일부 폐단이 시정될 경우 아직 시정되지 않은 문제는 더욱 참기 힘든 것으로 보이게 된다’고 했다. 실제로 중국 인민의 삶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개선됐지만 요구는 더욱 커지는 추세다. 배가 고플 때는 배고픔에서 벗어나려는 한 가지 고민밖에 없지만 배가 부르고 나면 더 많은 번뇌가 뒤따르는 법이다.

 중국 경제학계의 거두 우징롄(吳敬璉) 박사는 중국의 “경제사회 모순이 거의 임계점에 다다랐다”고 말한다. 싱가포르국립대학의 중국정치 전문가 정융녠(鄭永年) 교수도 중국은 “개혁하지 않으면 혁명을 당할 것(不改革就是被革命)”이라고 경고한다.

 중국의 지난 20세기는 혁명의 역사였다. 청조(淸朝)를 무너뜨린 신해(辛亥)혁명과 중화인민공화국을 건설한 공산혁명, 또 건국 이후엔 대약진(大躍進)운동과 문화대혁명 등 혁명과도 같은 사회운동의 연속이었다.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 이후엔 혁명의 깃발이 공산당의 수중에서 지식인과 학생의 손으로 넘어갔다. 1989년의 천안문 사태, 노벨상 수상자 류샤오보(劉曉波)가 주도한 ’08 헌장’ 사건, 색깔혁명의 영향을 받았던 재스민(茉莉花)운동 등.

 청말(淸末)의 사상가 량치차오(梁啓超)는 중국에서 혁명은 다반사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중국 백성이 저항하는 방법은 두 가지. 하나는 노동을 거부하는 것, 다른 하나는 반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타성(他姓)에 의한 왕조 교체를 예사롭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역성(易姓)혁명은 실패하면 도적이 되지만 성공하면 황제가 된다. 이에 따라 오직 강한 자만이 존경을 받고 그 외의 것은 중요치 않다. 결국 중국에는 반란이 그치지 않아 중국의 수천 년 역사는 진한 피로 쓰이게 됐다고 량치차오는 말했다.

 바깥에서 볼 때 현재 한창 부상하고 있는 중국을 혁명적 상황에 처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중국의 위정자들 생각은 다른 모양이다. 중국의 성장(省長)급 이상 고위 관료들에겐 모두 토크빌의 책을 읽으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대개 혁명의 도화선은 무거운 세금이다. 세계 4대 혁명 중 러시아혁명을 제외한 영국혁명과 미국혁명, 프랑스혁명 등이 모두 세금 문제에서 비롯됐다. 그래서인지 차기 총리가 확실한 리커창(李克强)의 정책 초점이 감세에 맞춰져 있다고 중국 전문가들은 말한다.

 주요 대상은 소미(小微)기업이다. 소미기업은 중국에서 근년 들어 출현한 개념이다. 중소기업보다 작은 개념으로 소형기업, 미형기업, 가내수공업 등을 망라한다. 많은 일자리를 만드는 소미기업의 세 부담을 덜어줘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자는 취지다.

 이런 조치는 박근혜 당선인이 중소기업 보호를 위해 ‘손톱 밑 가시’를 뽑는 일을 하겠다는 발언과 일맥상통한다. 새로 출범하는 한·중의 정권 모두 중소기업을 키워 민생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럼 5년 후 결과는 어떻게 될까. 문제의식이 비슷하니 결과는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가려질 것이다. 실천은 굳센 의지가 이끈다. 이 점에선 중국이 우리보다 우위에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중국의 위정자들이 개혁에 실패하면 혁명을 당할 것이란 절박감으로 무장돼 있기 때문이다. 때론 중국에서 배울 필요가 있겠다.

유 상 철 중국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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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