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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의 시시각각] 새 정부의 첫 시험대, 용산 개발

권석천
논설위원
택시를 타고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앞을 지날 때였다. 새 정부의 관심을 촉구하는 1인 시위 피켓들 속에 ‘제2의 용산사태’가 눈에 띄었다. ‘서부이촌동은 죽음의 도시’라고?



 겨울비가 내리는 지난주 금요일 저녁. 서부이촌동 거리는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도로변 상가 점포 중 몇 곳만 불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었다. 상가 앞에서 마주친 ‘이촌반점’ 주인 김홍재(59)씨는 화부터 냈다.



 “용산국제업무지구 한다고 철도 정비창이랑 우편집중국 옮기면서 상권이 완전히 죽었어요. 하루에 자장면 서너 그릇 팔고 있으니…가게도 못 내놓고 보상금은 안 나오고 대한민국이 국민 죽이고 있는 겁니다.”



 희미한 가로등이 서 있는 뒷골목과 아파트 벽엔 플래카드 수십 개가 을씨년스럽게 나부끼고 있었다. “내 목숨 잃고 가족 지키는 것이 낫다!” “단계개발 2020년 보상 웬 말이냐?” “통합개발 포기하고 주민 고통 배상하라.”



 서민들의 생활 터전이 황량한 전쟁터로 변해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단군 이래 최대’라던 개발사업은 왜 무산 위기에 빠진 걸까.



 이 사업에 시동을 건 것은 노무현 정부였다. 2004년 철도 구조개혁 과정에서 4조5000억원의 빚을 안고 출범한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이 만성 적자의 늪에 빠졌다. 2006년 노 대통령 지시로 꾸려진 총리실 TF팀은 “부동산 개발로 부채 문제를 해결하자”며 용산역세권 개발 대책을 세웠다. 이에 서울시가 당시 오세훈 시장의 ‘한강르네상스’ 사업 연장선에서 서부이촌동도 개발 대상에 포함시킬 것을 요구했고 결국 통합개발로 가닥이 잡혔다.



 상당수 주민의 반대에도 서울 강북 한복판에 세계 최고의 명품 도시를 짓겠다는 꿈은 커져만 갔다. 2007년 8월 이주대책기준일 공고와 함께 주민들의 재산권 행사가 사실상 묶였고 코레일과 SH공사, 28개 민간 출자사가 1조원의 자본금을 모았다. 총 사업비 31조원, 경제유발효과 82조원, 일자리 40만 개….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로 부동산 경기가 가라앉으면서 사업은 표류하기 시작했다. 땅값 갈등 속에 주간사가 삼성물산에서 롯데관광개발로 교체됐지만 지난해 2월 정창영 코레일 사장 취임 후 이번엔 사업성 논란에 발목이 잡혔다. 사업 시행사 대주주인 코레일과 롯데관광개발이 각각 단계적 개발, 통합개발로 맞서며 진통이 이어지고 있다.



 그 사이 시행사 자금은 5억원으로 줄었다. 추가 자금을 조달해 3월 12일 만기가 돌아오는 58억원의 금융이자를 갚지 못하면 부도가 불가피하다. 이 경우 민간 출자사·코레일 간의 대규모 소송전, 대외신인도 추락은 물론이고 주민 1만 명이 직격탄을 맞게 된다. 현재 전체 2290여 세대 중 54%가 평균 3억4000여만원의 대출 상환 부담을 지고 있다. 사업 발표 후 두 배로 치솟았던 집값이 폭락하면 대출금이 주택 가격을 넘어설 수 있다. 이촌2동 11개 구역 대책협의회 김찬(45) 총무는 “사업 무산 땐 경매가 쏟아져나올 것”이라며 입술을 깨물었다.



 “보상금 나온다니까 그걸 믿고 대출 받은 거죠. 사업이 6, 7년씩 늦춰지면서 이자 부담에 또 대출을 받고…부도요? 우리도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습니다. 철로라도 점거해서….”



 물론 꿈에 들떠 선택을 그르친 개개인의 잘못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주민들을 ‘개발 이익의 신기루’에 갇히게 한 정부와 서울시, 코레일, 출자사의 책임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해관계자 간의 자체 해결이 어렵다면 정부라도 나서야 한다. 관련자들을 불러놓고 책임 분담의 원칙에 따라 어느 쪽으로든 결론을 내야 한다. 지금처럼 곪아터질 때까지 비켜서 있는 건 곤란하다.



 용산은 박근혜 정부가 출범 후 첫 번째로 맞이할 대형 이슈가 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의 실패와 시장의 실패가 맞물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시한폭탄의 초침은 지금 이 순간도 움직이고 있다.



권 석 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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