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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양온천, 1970년대 최고 신혼여행지 … 최근엔 의료 관광지 각광

전국적으로 ‘복고’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급변하는 디지털 시대가 사람들의 아날로그 감성을 깨우고 있다. 추억의 공중전화기, 카메라 등 옛날 물품을 수집하거나 관심을 보이는 이들도 늘었다. 한국의 고대·근대사 등을 공부하거나 전문지식을 쌓으려는 학생들도 덩달아 증가추세다. 하지만 정작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의 역사는 어떻게 되는지 관심을 두는 이는 많지 않다. 중앙일보 천안아산&에서는 각계각층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우리 동네의 역사와 문화재·인물 등을 5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우리 동네 그때 그 시절 아산 ①

조영민 기자

도움말·사진=박노을 온양아산향토문화연구원장

사진=아산시 제공



하늘에서 내려다본 아산의 최근 전경.


아산은 삼한시대 마한의 염로국 지역이었다. 백제시대에는 탕정군, 아술현, 굴직현에 속해 있었고 통일신라시대에는 탕정주, 기량현(중앙에서총관 파견)이었다고 전해진다. 고려시대에는 온수군, 인주현, 신창현으로 조선시대에는 온양군, 아산현, 신창현으로 나뉘어 발전했다. 1914년 3월 1일 아산군으로 개편(부령 제253호)됐다. 1986년 1월 1일 온양읍에서 온양시로 승격 됐다. 1995년 1월 1일 아산군과 온양시가 통합돼 아산시가 탄생했으며 현재 2읍 9면 6동을 관할하고 있다.



아산은 한반도의 중앙부 및 충남의 서북단에 위치해 있어 수도권과 충남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북쪽은 차령산맥의 여맥에 속하는 낮은 구릉성 산지를 이루고 남쪽의 산지에서 발원하는 곡교천이 서류해 평야를 형성하며, 삽교천에서 통합해 아산만에 유입된다. 남쪽으로는 광덕산, 북쪽에는 영인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남고북저의 지형인 아산은 중앙이 낮고 평평한 평야가 전개되고 있다. 동쪽으로는 천안시와 남쪽으로는 공주시, 서쪽으로는 예산군 북쪽으로는 경기도 평택이 접하고 있다. 서해안·경부고속도로, 장항선 등으로 서해안 내륙지방의 수송기능이 강화됐다. 경부고속철도는 서부지방으로의 수송을 유리 하게해 관광자원을 보유한 아산을 지역개발 잠재력이 풍부한 곳으로 지목 받고 있다.



현재 아산의 인구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지리적 여건이 우수해 대규모 공장과 기업들이 많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아산시 인구는 2013년 1월 기준으로 29만여 명으로 집계돼 있다. 매년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인구 수만큼 차량등록대수도 늘고 있다. 11만3685대 세대당 1.01대다.



아산시 관계자는 “아산은 오랜 역사와 전통이 깃든 도시다”라며 “현재 충남에서 인구유입이 가장 활발한 도시로 이 추세라면 2년 내에 3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아산은 충남도내에서 가장 높은 무역흑자를 기록했다”며 “관광객도 최근 꾸준히 늘어 지난해에만 1151만5000여 명이 아산을 방문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산의 최대 관광지 온양온천



2온양읍에서 온양시로의 승격을 기념하는 아치(1986년 1월1일). 3.1970년대 온양
시내. 4.1990년대 초 온천제 행사 당시 모습.
아산시의 가장 대표적인 문화 관광 자원을 꼽는다면 단연 온천이다. 관광객 중 70% 이상이 온천을 방문하기 위해 아산을 찾는다고 한다. 아산에는 3대 온천이 있다. 온양·도고·아산이다. 이 중 온양온천은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한다. 온양 온천은 지질이 단상흑운모, 각섬석 화강암으로 구성돼 있으며 용출되는 온천 수의 수온이 58℃ 내외로 고온온천이다. 온천수의 수질은 약알카리성으로 수량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숙박시설·상가·음식점 등 주변시설이 잘 발달된 곳이다. 이 때문에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는 지역 최대의 명소로 자리하고 있다.



문헌에 따르면 온양온천은 국내에서도 가장 오래된 온천이다. 백제, 통일 신라시대를 거쳐 그 역사가 1300년이 되는 것으로 기록돼 있다. 고려시대에 온수군(溫水郡)이라 불리었던 것으로 보아 실제 온천의 역할을 수행해 온 기간은 600여 년이 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세종대왕 15년(1433년) 정월에 안질치료차 행차한 후세조·현종·숙종·명종·영조·정조 등 여러 왕이 온궁을 짓고 휴양이나 병의 치료차 머물고 돌아간 다수의 기록과 유적들이 남아있다.



 또한 현종·숙종·명종 당시에는 온양온천에서 과거 시험을 직접 주관해 지역의 숨은 인재를 발굴했던 기록도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에도 온양온천은 그 명성이 자자했다. 온천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은 온양온천을 최고의 관광 코스로 뽑았다고 한다. 당시 일본인 사장이 설립한 온양온천주식회사가 독점으로 온양온천을 경영했다. 1927년 이후는 경남 철도주식회사가 경영했다고 전해진다. 그 후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온양온천은 폐허가 돼버렸다. 1963년 신정관과 일본인 소유의 탕정관 등 2개소뿐이었던 온천장을 신천개발이 인수하면서 온양온천을 재개발했다. 그것이 계기가 돼 지금은 38개 온천장이 온양온천 중심부에 걸쳐있다.



  이후 아산시는 국내최고의 온천의료관광단지 구축을 위해 2011년부터 대전대학교와 업무 협약을 통해 ‘메디컬 스파’로 특화, 새로운 의료관광 개발 및 온천산업을 활성화하고 있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보양온천 내에 메디컬센터를 설립했고, 화장품, 입욕제 등을 개발했다. 아산시에서는 처음으로 관광상품이 개발된 것이다.



 박노을 온양향토문화연소장은 “온양온천이 재개발된 1970년 이후부터는 신혼여행지로 각광을 받으며 가장 많이 찾는 명소이기도 했다”라며 “아산시의 꾸준한 노력으로 온양온천은 서서히 옛 명성을 되찾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어 “최근에는 영화와 드라마에서도 온양온천이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앞으로도 온양온천의 발전을 위해 시민 모두가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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