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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엔저 칼춤에 베일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휘두르는 ‘일본도(엔화 약세)’의 칼날이 예사롭지 않다. 서울 여의도 증권가에선 세계 시장에서 일본 업체와 맞상대하는 국내 대기업의 실적 전망치를 대거 낮춰 잡았다. 일본 수출이 많은 중소기업은 “사실상 이미 영업 적자”라며 아우성이고, 일부 회사는 엔저 여파까지 겹쳐 생산 감축 상황까지 몰렸다.



수출 중소기업 76%, 외환전문가 없어 사실상 영업 적자
설 이후가 더 공포 … 납품가 인하 요구받으면 이중 타격

 경기도 부천시의 A전자부품업체는 몇 달째 이어진 환차손으로 울상을 짓고 있다. 매출의 절반을 일본 수출에 의존하는 회사는 대금을 엔화로 받고 있는데 최근 엔화 값이 급락한 탓이다. 회사 관계자는 “환차손 규모가 매출의 10%에 달한다”며 “수출 계약을 1년 이상 장기로 맺은 상태여서 당분간 피해가 불가피한 처지”라고 전했다. 일본에 전자부품을 수출하는 광주광역시의 B업체는 최근 한 달 새 엔당 원화가치가 15%가량 높아지자 단가 인상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사실상 영업적자 상태”라 고 말했다.



  한국GM 부평2공장은 지난달부터 아침 잔업 2시간을 없앴다. 이 회사에서 17년째 일하고 있는 김모씨는 “일감이 줄어 주말 8시간씩 하던 특근도 사라졌다”며 “한 달 40만원가량인 초과근무 수당을 받지 못하게 됐다”고 한숨을 쉬었다. 회사 관계자는 “판매 부진도 있지만 원화가치 하락으로 수출 채산성이 낮아지자 생산량을 조정한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내수부진에 ‘엔저 공습’ 여파까지 겹치면서 이 회사 근로자 1만5000여 명(협력업체 포함)의 월급봉투가 얇아진 셈이다. 엔저 여파는 국내 대표 수출업체의 발목도 잡았다.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는 지난달부터 엔저를 앞세운 일본 자동차 메이커의 판매 신장세가 두드러진다. 도요타자동차는 지난달 미국에서 14만1514대를 팔았다. 2011년 1월보다 판매 대수가 26% 급증한 것. 혼다 역시 지난달 미국에서 8만4137대를 팔아 전년 동기 대비 판매 대수를 12.7% 늘리며 선전했다. 같은 기간 현대·기아자동차 판매량이 2.2% 증가에 그친 것과 대조된다. 문제는 이 같은 엔저 현상이 지속될 경우 주요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차와의 판매량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란 점이다.



 이처럼 ‘엔저 쓰나미’로 국내 기업들이 휘청거리는 것은 물론 직장인들의 생활에도 그늘이 지고 있다. 특히 수출 중소기업의 타격이 상대적으로 더 크다. 일본 수출에 의존하는 일부 중소기업의 경우 지난해 말부터 수익이 거의 나지 않는 사례도 있다. A전자부품업체 관계자는 “중소기업에는 외환 전문가가 없어 환율 변동이 있을 때마다 속수무책인 상황”이라고 전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수출 중소기업 500곳을 조사한 결과 76%가 환차손이 발생한다고 대답했다.



 반대로 ‘엔저 혜택’을 누리지 못해 가슴앓이를 하는 중소기업도 있다. 엔화가치 하락으로 일본에서 들여오는 상품 가격은 하락하게 마련. 하지만 일본산 원자재를 조달하는 일부 중소기업은 수입 단가 인하에 따른 수혜를 보지 못하고 있다. C중소기업 대표는 “대기업을 통해 일본에서 원자재를 수입하고 있는데 이 회사가 단가 인하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며 “마치 국제 원유가격이 떨어졌는데 동네 주유소가 휘발유값을 내리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말했다. 중소기업중앙회 김태환 통상진흥부장은 “환차손을 중소기업에 전가하는 대기업은 있어도 환차익을 공유하는 대기업은 거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새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경제민주화 정책이 ‘엔저 앞의 촛불’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자동차·전자부품 등 수출 시장에서 일본 기업과 맞상대하는 대기업들이 비용 절감을 추진하면 연쇄적으로 부품·협력업체가 ‘된서리’를 맞게 될 것이란 지적에서다.



 가뜩이나 환차손이 커지고 있는데 납품단가 인하 같은 압력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실제로 D금속 백모 대표는 “설 연휴 이후가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대기업 측에서) 별다른 말이 없지만 엔저가 지속되면 1~2주쯤 지나서 어떤 ‘조치’가 내려올지 몰라 걱정”이라며 “중소기업에 ‘엔저 쓰나미’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연구원 오동윤 연구위원은 “엔화가치 하락으로 대기업이 ‘앓는 소리’를 해도 환헤지 등으로 상당 부분 이를 흡수할 여력이 있다”며 “또 최종적으로 납품 단가에 전가할 수 있기 때문에 중소업체가 더 타격”이라고 말했다.



이상재·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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