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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辛라면'에 중독된 지구 최남단 마을

칠레 최남단 마을에서 5년째 라면 가게를 운영 중인 윤서호 사장. 윤 사장은 마치 아는 사람을 만난 것처럼 기자를 반겼다.


“라면 노르말(보통), 라면 삐깐떼(맵게).”

라면가게 5년째 윤서호씨



 칠레인 커플이 5평(16.5m²) 남짓한 허름한 가게에서 라면 두 그릇을 주문했다. 남극 취재를 가며 들른 지구 최남단 마을 칠레 푼타 아레나스. 흔하디 흔한 프랜차이즈 가게 하나 볼 수 없는 이곳에서 윤서호(60) 사장은 5년째 라면을 팔고 있다. 가게 이름은 ‘辛(신)라면’.



 윤씨는 이 지역 사람들에게 ‘라면’의 존재를 처음 알린 인물이다. 그는 “유행에서 워낙 소외된 지역이라 그런지 주민들이 라면 자체를 모르더라”며 “마을에 일본인들도 살긴 하지만 일본식 ‘라멘’ 가게는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Ramen’이라 하면 오직 윤씨가 파는 한국식 인스턴트 라면밖에 없는 줄 안다.



 원래 수산물 유통업체 사장인 윤씨가 부업으로 라면을 팔기 시작한 건 긴 외국생활의 외로움을 이겨내기 위한 소일거리였다. 한국식 분식집을 만들면 한국 사람들이 모일 수 있겠다 생각해서다. 2005년 칠레에 온 지 3년 만인 2008년 라면 가게를 열었다. 가게 2층에 사무실을 차려두고 ‘본업’에도 충실했다. 윤씨는 “요리 경험이 없어 다른 음식은 포기하고 라면에만 집중키로 했다”며 “가게를 열기 전 한국으로 가 라면 공급 문제를 놓고 농심과 협상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얼마 뒤 윤씨는 전략을 바꿨다. 여름에 잠깐 머무는 세종기지 대원과 며칠 걸러 두세 명씩 찾아오는 한인 관광객만 상대해선 가게 운영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칠레인들을 공략하기로 했다. TV와 신문 등에 자신의 가게 ‘신라면’ 광고까지 냈다.



 현지인들의 반응은 의외로 좋았다. 여름시즌을 빼면, 손님 대부분은 칠레 사람들이다. 하루 평균 50~100명이 찾는다. ‘노르말’(보통) 대신 ‘삐깐떼’(맵게)로 주문하는 마니아들까지 생겼다. 라면을 현지어로 ‘고기국수’라 부르기도 한다. “라면 맛에 중독돼 단골이 된 손님들이 꽤 많아요. 이들이 우리 라면을 맛있게 먹는 걸 보면 이상야릇한 통쾌함까지 느껴집니다.”



 그는 수산물 유통 사업을 그만두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그날까지 계속 라면을 팔 생각이다. “5년 전만 해도 아시아라고 하면 일본밖에 몰랐던 마을 사람들이 지금은 한국 사람을 보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합니다.” ‘혹시 라면 때문이냐’는 질문에 그는 손사래를 쳤다. 2004년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이후 자동차 등 한국 상품이 점점 더 많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최근엔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대히트를 친 게 영향을 줬다는 거다.



 윤씨는 “한국 젊은이들은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친다. 우리 세대와 너무 다른 모습에 뿌듯하다”며 “앞으로도 라면을 팔며 한국의 달라진 위상을 계속 느끼고 싶다”고 덧붙였다.



글·사진 이현 JTBC 기자 <2str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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