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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호의 시시각각] 우체국이 홍어 특수부위인가

남윤호
논설위원
술잔이 비어도 아무도 술을 따라주지 않는다. 내 잔 받으시오 하며 다가오는 이도 없다. 그럴 때 누군가 알아차리고 술을 권한다. 그러면서 흔히 하는 말. 이 사람, 우체국장이구먼. 장(長)자가 붙지만 끗발이 없다. 딱히 부탁할 일도, 인사할 일도 없다. 그래서 술자리 우체국장을 투명인간이라 하지 않나 싶다.



 이 우체국이 요즘 정부조직 개편 과정에서도 비슷한 대접을 받고 있다. 우정사업본부는 5년 전 정보통신부가 없어지면서 지식경제부 소속이 됐다. 이번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개편안에 따라 신설될 미래창조과학부로 적을 옮긴다.



 그런데 우체국이 미래창조, 과학과 무슨 관계가 있나. 미래창조과학부가 담당할 정보통신기술(ICT)과의 연관성, 그리고 조직의 역사성을 감안했다는 게 인수위 설명이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우선 우정사업과 ICT의 연관성이 뚜렷하지 않다. 우체국의 편지·택배나 예금·보험이 과연 ICT인가. ‘우편=통신’이란 등식은 옛날 얘기다. 유엔의 국제표준산업 분류에도 우정사업은 ICT에 들지 않는다. 억지로 정보서비스업에 넣을 수는 있지만, 그렇게 치면 ICT에 안 들어가는 게 없다. 지경부와도 업무 연관성이 약하긴 마찬가지다. 다만 정통부 직계인 정보통신정책연구소(KISDI)가 지금도 우정사업 관련 연구를 하고 있다는 게 진화의 흔적처럼 남아 있기는 하다.



 조직의 역사성을 따지기 시작하면 얼굴 붉히는 분이 많다. 광화문 네거리에서 종로통 초입의 큰 길을 사이에 둔 정통부와 우정사업본부의 직선거리는 200m 남짓이다. 걸어서 3분 거리다. 큰 길 하나만 건너면 금방이다. 그런데도 이 길은 우정사업본부엔 ‘감히 넘볼 수 없는 길’로 통했다. 정통부에서 우정사업본부로 내려갈 수는 있어도 여간해선 거꾸로 올라가진 못했다. 정통부 관료들이 우정사업본부를 인사적체 해소 수단으로 곧잘 활용했기 때문이다. 도가 지나치자 인사만행이다, 학대다 하는 말도 불거졌다. 가정폭력에 빗대는 이도 있다.



 현재 우정사업본부의 고위직으론 1급 본부장 외에 2급 14명, 3급 6명이 있다. 고위 공무원들 자리 돌리기엔 여유가 있는 편이다. 게다가 연간 예산 6조9000억원, 직원 4만5000명, 전국 우체국망 3600여 개, 자산 100조원이 있는 조직이다. 1급 기관장이 거느리는 조직으로 이만 한 곳은 없다. 어느 부처인들 탐내지 않겠나. 인사적체에 시달리는 타 부처 공무원들이 군침을 흘릴 만하다.



 우정사업 조직을 둘러싼 논의는 지난 20년간 여러 차례 오락가락해 왔다. 1993년 우정사업의 공사화 추진안이 나왔다 96년 중단됐다. 그러다 2000년 정통부 산하에 지금의 우정사업본부 조직이 만들어졌다. 이명박 정부에선 ‘우정청 전환 후 민영화’ 로드맵이 나왔으나 흐지부지됐다. 또 19대 국회엔 여야 의원들이 우정사업본부를 우정청으로 승격시키는 정부조직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인수위와는 상충되는 내용이다.



 물론 우정사업을 어느 부처에 두고, 어떤 형태로 운영하느냐에 대해선 정답이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정부가 직접 운영하는 나라는 한국과 미국뿐이다. 영국·스위스는 공사화했고, 일본·독일·네덜란드는 민영화했다. 나라별 산업구조나 정치적 판단에 따라 선택하기 나름이다.



 문제는 이리저리 조직을 옮기는 과정에서 고객의 의견은 아무런 고려 대상이 못 됐다는 점이다. 국민을 위해 우편 서비스의 효율과 공공성을 어떻게 향상시키느냐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안 보인다는 얘기다. 요즘 인수위는 크고 굵직한 일들을 돌보느라 여념이 없는 듯하다. 그래도 누군가는 디테일을 챙겨야 한다. 국회에서 막 시작된 정부조직법 개정안 심의에선 그런 디테일이 꼭 담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특정 부처 관료들에게 감투 잔치판 벌여줄 위험이 있다. 나중에 전국의 우체국장들이 ‘우체국이 홍어 특수부위냐’며 들고 일어나면 어찌 감당할 건가.



남 윤 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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