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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눈 쌓인 밤 할머니의 옛이야기 요즘 아이들도 필요하다

[일러스트=강일구]


호사가들은 흔히 ‘조선 3대 구라’로 백기완(81)·방배추(78·본명 방동규)·황석영(70)을 꼽는다. 『문화유산답사기』로 유명한 유홍준 명지대 교수도 입심이 대단하지만 그 동네에서는 그의 구라를 ‘교육방송’이라 해서 따로 분류한다. 국어사전은 구라를 ‘거짓말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 정의한다. 그러나 다음에 ‘이야기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는 뜻풀이가 있다. 조선 3대 구라의 기준은 바로 이야기 구사 능력이다.



 새벽 3시까지 이어진 술자리에서 황석영 선생의 구라, 즉 ‘황구라’의 진수를 맛본 적이 있다. 서울 인사동이었는데, 남녀 대여섯 청중이 연신 배꼽 잡느라 정신 못 차릴 정도였다. “자, 비암(뱀)이요 비암…”으로 시작하는 전설의 약장수 구라도 레퍼토리 중 하나였다. 내남없이 가난하던 시절, 데이트 장소가 마땅치 않았던 청춘남녀가 중국식당 방에 들어가 달랑 짜장면 하나 시켜놓고 수작하는 상황을 화교인 식당 주인의 시점에서 풀어내는 이야기는 압권이었다. “짜장에 가시가 있나. 왜 아야아야 해….” 5·16 직후 국토건설단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강원도 산골로 도피해 가축을 키우던 주먹의 경험담을 묘사한 ‘염소와의 연정(戀情)’ 편도 웃다 웃다 끝내 눈물을 흘릴 지경이었다.



 스포츠든 예술 공연이든, TV 화면으로 대하는 것과 현장에서 보고 듣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이야기도 그냥 책으로 읽는 것과 프로 이야기꾼으로부터 듣는 것은 느낌이 상당히 다르다. 어린이들이 동화책 읽어주는 것을 유독 좋아하는 이유다. 어린이뿐이랴. 이 마을 저 마을 다니며 이야기책을 전문적으로 구연(口演)하던 전기수(傳奇<53DF>)는 조선시대의 어엿한 직업인이었다.



 TV와 전자기기에 찌든 요즘 어린이들도 이야기꾼에게서 재미와 감동을 선사받을 자격이 있지 않을까. 한국국학진흥원이 5년째 벌이고 있는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 사업은 시사점이 크다. 2009년 대구·경북에서 시범적으로 시작돼 작년에 전국으로 확대됐다. 할머니·할아버지가 손자손녀에게 옛이야기를 들려주던 ‘무릎 교육’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이야기 할머니로 선정돼 청주시내 유치원을 돌며 활약 중인 김덕희(64·청주시 분평동)씨는 “어린 시절 어머니한테 심청전·장화홍련전을 듣던 추억을 떠올리며 즐겁게 일한다”고 말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학진흥원은 다음 달 8일까지 지원서를 받아 새로 600명을 더 선발할 예정이다.



 세대 간 단절로 무릎 교육이나 밥상머리 교육이 거의 사라졌다. 윗세대의 지혜를 이대로 그냥 사장시켜선 안 된다. 눈이 소복이 쌓인 오늘 같은 날이야말로 할머니 무릎 베고 옛이야기 듣기에 그만이다.



글=노재현 기자

사진=강일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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