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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복 칼럼] 워싱턴에 북한은 없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가 시작됐지만 워싱턴은 아직 어수선한 분위기다. 취임 축하 퍼레이드를 위해 백악관 주변에 임시로 설치했던 관중석조차 아직 철거되지 않았다. 내각과 백악관 보좌진도 아직 진용을 다 갖추지 못했다. 상원에서는 장관 지명자들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진행 중이다. 한반도 정책을 담당할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라인이 확정되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지난주 뉴욕과 워싱턴을 다녀왔다. 당장 오늘 북한이 핵실험을 해도 이상할 게 없는 긴박한 상황이지만 미국에서는 별로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 미국인들의 관심은 온통 어제 오전 열린 미식 프로축구 결승전인 수퍼보울에 쏠려 있었다. 미 정치권의 최대 관심사는 이민법 개혁과 총기 규제였다. 한반도 정세는 그걸로 밥벌이를 하는 담당 관리와 한반도 전문가, 관련 언론인의 관심사일 뿐이다.



 지난주 있었던 척 헤이글 국방장관 지명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나라는 이스라엘과 이란이다. 8시간 동안 이스라엘과 이란은 각각 178회와 169회 언급됐다. 반면 북한은 세 번 언급되는 데 그쳤다. 핵 프로그램에서 북한은 이란보다 월등히 앞서 있지만 표에 민감한 정치인들은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이란의 핵 개발에 훨씬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워싱턴서 만난 의회 관계자는 “북한이 핵실험을 하면 정치권이 잠시 시끄럽겠지만 곧 다시 잠잠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의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3차 핵실험을 기다리는 분위기마저 감지된다. 북한의 핵 능력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또 한 번의 핵실험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는 것이다.



 유엔 차원의 대북제재를 담당하는 안보리 관계자들은 북한의 3차 핵실험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지난달 채택된 대북제재 결의(2087호)에서 안보리는 북한이 추가도발을 하면 ‘중대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했지만 그것이 평양의 핵실험을 막진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시 안보리가 소집돼 대북 추가제재를 논의하겠지만 기존 제재를 강화하는 선에서 타협이 이루어질 거라는 게 대체적 전망이었다. 유엔 미 대표부의 대북제재 담당자도 “제재만으로 북한의 행동을 바꿀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며 “제재는 외교가 효과를 발휘할 때까지 시간을 버는 수단”이라고 말했다.



 대북제재 이행을 감시하는 안보리의 전문가 패널도 제재의 한계를 인정하고 있다. 국제법적 구속력을 갖는 안보리의 대북 결의 1718호와 1874호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제재 이행 실태를 안보리에 보고한 나라는 193개 유엔 회원국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93개국뿐이었다. 북핵 문제는 미 국민과 정치권의 주요 관심사에서 벗어나 있고,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망에는 구멍이 뚫려 있다. 그 틈새를 비집고 북한은 보란 듯이 도발을 계속하고 있다.



 미 국무부와 국방부, 유엔 관계자들, 그리고 여러 싱크탱크의 한반도 전문가들과의 면담을 통해 내린 결론은 북핵 문제를 큰 틀에서 바라보고 의연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도발을 할 때마다 당장 큰일이 날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것이야말로 평양이 바라는 바이고, 북한 페이스에 말려드는 것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가졌어도 근본적으로 달라질 건 없다. 북한은 국제 비확산 체제가 인정하는 핵보유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북한이 한국이나 일본, 미국을 겨냥해 핵 발사 단추를 누르는 상황은 SF소설에서나 가능한 얘기다. 소설이 현실이 되는 순간 물리적으로 북한은 지도에서 사라지게 된다.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은 김씨 왕조의 체제유지 수단이다.



 미국과 중국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상황을 원치 않는다. 북한 체제의 안정을 중시하는 중국과 한반도 비핵화에 무게를 두는 미국의 입장이 갈등을 빚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한반도의 무력 충돌로 비화하는 빌미가 돼서는 안 된다는 데 양국은 이해를 같이 하고 있다. 북한의 3차 핵실험은 오히려 미·중 간 거리를 좁히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 북한의 핵실험 이후 미·중이 나란히 6자회담 무용론을 내세우며 한반도 문제의 근본적 해결 방안을 놓고 머리를 맞대는 상황이 와도 놀랄 일은 아니다.



 협상파인 존 케리의 미 국무장관 취임과 헤이글 전 상원의원의 국방장관 지명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북·중 간 불협화음이 잦아지고,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하면 대북지원을 중단해야 한다는 사설이 중국 관영언론에 실리고 있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미·중이 주도하는 한반도의 새 판 짜기에서 한국이 소외되지 않도록 워싱턴·베이징과의 소통을 강화하는 것은 박근혜 외교의 최대 도전이 될지 모른다.



배 명 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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