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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gether We Can! 설원 누비며 아름다운 도전

평창 알펜시아 바이애슬론 경기장에서 열린 스노슈잉에 참가한 선수들이 혼신의 힘으로 달리고 있다. 스노슈잉은 신발에 덧대는 알루미늄 재질의 스노슈즈를 신고 눈밭을 달리는 종목이다. 김성룡 기자
“참 순수한 것 같아요. 웃는 모습이 너무 해맑아요. 선수들에게 배우는 것이 더 많습니다.”

편견 깨는 특별한 올림픽

2013 평창 동계스페셜올림픽에서 자원봉사하고 있는 배은희(20)씨의 말이다. 배씨는 겨울방학에 스펙을 쌓는 대신 파푸아뉴기니에서 온 지적장애인 로사 네게(24)를 돕고 있다. 지난해 평창에서 열렸던 스페셜올림픽 프레대회 때도 봉사에 나섰다는 그는 “지적장애인을 가까이에서 접하면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무조건 돕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야 하는 것을 익히고 배웠다. 그래서 또 자원봉사를 신청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29일 지적장애인들의 스포츠 축제인 스페셜올림픽이 강원도 평창에서 개막했다. 전 세계 106개국에서 3100여 명의 지적장애인이 5일까지 8일 동안 평창에서 7개 종목(알파인스키·크로스컨트리·스노보드·스노슈잉·피겨스케이트·쇼트트랙·플로어하키) 59개 경기에 참가한다. 한국에선 193명의 지적장애인이 출전했다. 이들은 한국에 있는 지적장애인 16만 7000여 명을 대표해 지적장애에 대한 편견과 싸우고 있다.
자원봉사자 배씨처럼 평창 스페셜올림픽은 지적장애인을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고 있다.

시범 종목인 플로어볼 경기 한국-스위스 전에서 득점한 뒤 한국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강릉=뉴시스]
장애인 차별은 산업화 산물
지적장애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산업화 이후 강화되고 고착된 역사적 산물이다. 조선시대에선 장애는 차별의 대상이 아니었다.
『역사 속의 장애인은 어떻게 살았을까』 『조선에서의 장애인 인식』 등을 쓴 정창권(48·국문학) 고려대 교수는 “산업화 이전에 한국인들은 장애에 대한 편견이 없었다”고 말했다. “조선시대에는 지능이 낮다고 인품까지 떨어진다고 천대하지 않았다. 신분에 따른 차별은 있었지만 장애는 차별이나 멸시의 근거가 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용재총화』에 나온 형제의 이야기를 사례로 꼽았다. 『용재총화』는 조선 전기 성현(成俔·1439~1504)이 민간 풍습 등을 정리한 책이다. 지적장애를 갖고 있는 형을 동생이 물심양면으로 도우면서 함께 살아가는 일화를 담고 있다. 정 교수는 “장애인을 괴롭히고 차별하면 오히려 이웃의 질타를 받는 분위기였다”고 설명했다.

19세기 말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화 물결은 장애에 대한 인식도 뒤흔들었다. 정 교수는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사람을 돈으로 판단하는 인식이 생겨났다”며 “성공 지향적인 사회에서는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인격도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낮춰보게 됐다”고 말했다.
1935년 계용묵이 지은 『백치 아다다』는 물질만능주의에 휩쓸린 순수한 지적장애인 여성의 비극적인 삶을 다루고 있다. 이런 인식은 최근까지도 쉽게 변하지 않았다. 개발이 우선시되면서 인권과 복지는 뒤로 밀렸다. 20세기까지 한국 사회에서 지적장애인은 정신박약아·정신지체인 등 부정적인 언어로 표현됐다.

이런 부정적인 단어는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바뀌었다. 2000년 장애인복지법령을 개정하며 “지체됐다는 표현이 정상과 비정상의 개념 구도로 나누고 정상에서 뒤처진다는 열등개념을 담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지적장애란 말로 순화했다.

2005년 나온 영화 ‘말아톤’과 2006년 ‘맨발의 기봉이’는 지적장애인과 스포츠를 소재로 감동적인 스토리를 엮어냈다. 흥행에서도 성공을 거뒀고, 스포츠를 통해 지적장애인의 무한한 가능성을 그려냈다. 산업화 이후 약 150여 년 넘게 이어진 장애에 대한 딱딱한 편견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스페셜올림픽은 스포츠를 통해 지적장애에 대한 편견을 깨는 게 목적이다. ‘Together We Can(함께하면 할 수 있다)’이라는 슬로건은 대회 정신을 잘 설명해 준다. 제1회 스페셜올림픽은 1968년 미국 시카고에서 열렸다. 미국의 유니스 케네디 슈라이버 여사는 “비장애인이 생각하는 수준 이상으로 지적장애인들이 스포츠와 신체활동 분야에 뛰어난 자질을 보유하고 있다”며 조셉 케네디 주니어 재단의 후원을 받아 시카고에서 대회를 개최했다. 3년 뒤인 71년에는 유엔 총회에서 ‘지적장애인 권리선언’을 발표하며 차별을 철폐해야 한다는 7개 조항이 채택된다.

한국에서도 78년 ‘한국특수올림픽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지적장애인을 위한 스포츠 단체가 탄생했다. 그리고 같은 해 5월 스페셜올림픽 태평양지역 하계대회에 참가했다. 그러나 지적장애인들을 위한 스포츠는 좀처럼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제자리 걸음을 했다. 85년 국제스페셜올림픽위원회(SOI)로부터 잠정 승인을 받았지만 정식 승인은 2004년에 받았다. 스페셜올림픽 국제대회도 2003년 더블린 대회에 16명이 출전한 것이 처음이었다. 2008년 한국스페셜올림픽위원회(SOK)는 한국에서 대회를 열기로 결의한다. 그리고 2010년 겨울 스페셜올림픽 유치가 확정됐다.

스페셜올림픽은 승패보다는 지적장애인의 도전과 노력, 지적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어울림에 의미를 둔다. 장애인 중 엘리트 체육인이 출전해 국가 단위의 경쟁을 벌이는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과는 구분된다. 1~3위 입상자는 금·은·동 메달을, 실격하지 않고 대회를 치른 나머지 참가자는 리본을 받는다. 동·하계 올림픽, 장애인올림픽과 마찬가지로 4년 주기로 열린다.

‘평창 선언’과 변화의 시작
지난달 30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컨벤션센터에서는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 여사가 단상에 올랐다. 스페셜올림픽의 부대 행사 중 하나인 ‘글로벌 개발 서밋(Global Development Summit)’에서 기조연설을 했다. ‘그늘에서 빛으로’라는 제목의 연설에서 그는 “지적장애인이 자신의 권리를 알고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자선이 아니라 사랑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글로벌 개발 서밋’에는 김황식 국무총리, 조이스 반다 말라위 대통령 등 전 세계 지도자 2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지적장애인에 대한 범세계적 관심을 촉구하는 ‘평창 선언’을 채택했다.

▶장애인들의 자기 주도적인 삶 ▶지역사회에 통합된 삶 ▶국제사회의 이행 촉구라는 내용을 담은 선언문을 통해 지적장애인에 대한 공동체의 관심을 촉구했다. ‘평창 선언’은 구속력은 없지만 세계 각국이 지적장애인 문제를 풀어나가는 기준이 될 것이다.

나경원 평창 스페셜올림픽조직위원장은 “이번 스페셜올림픽은 역사적인 일이다. 한국 사회에서 지적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부정적인 인식이 바뀔 것”이라며 “나 스스로도 지적장애인과 관련한 여러 정책을 수립했지만 그것은 비장애인 입장에서 본 것이었다. 이제 자세를 바꿔 지적장애인의 안목으로 경청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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