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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미의 마음 엿보기] 다변과 과묵

옹알이를 할 때부터 죽기 전까지 언어는 사람의 내부와 외부를 연결시켜 주는 통로다. 언어를 통해 상대방의 마음을 짐작하게 된다.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조증(Mania·躁症) 시기에는 말도 많고 빠르다. 반대로 우울증, 긴장형 정신분열증, 함구증 등에서는 말문 트는 것도 힘들고 말의 속도도 느리다. 내용도 빈약하다. 말이 빠른 사람들 중에는 머리가 좋아 혀가 생각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상대방이나 상황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발음이 꼬이기도 한다. 여자들은 대개 수다스럽고, 남자들은 말이 적다는 고정관념이 있지만, 술자리 남자들 수다는 여자들 못지않게 요란하다. 다만 감정 기능이 대체로 발달된 여자들은 ‘감정’ ‘느낌’ ‘분위기’ 등의 주제에 집중하고, 사고기능을 상대적으로 강화시키며 사는 남자들은 ‘사실’ ‘논리’ ‘명분’ 등에 치우친다는 차이가 있다.

말수가 적은 사람들은 대체로 신중한 인상을 주지만, 실수에 대한 불안감이나 상대방에 대한 불신 등으로 자신의 본 마음을 숨기는 사람도 있다. 보통 외향적인 사람들이 다변이고, 내성적인 사람들이 말수가 적다고 짐작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일러스트 강일구
외부에 대한 관심이 도를 넘어 남의 시선과 평가에 지나치게 좌우되면, 상대방이 비난하거나 무시할까 봐 입을 다물게 된다. 반대로 극단적으로 내향적인 사람들 중에는 남들이야 상처를 받건 말건, 나를 비난하건 말건, 하고 싶은 말을 뱉어버려 주변에 상처를 주기도 한다.

과묵함을 뜻하는 라틴어 taciturnitas의 어근인 taceo는 침묵과 비밀을 뜻한다. 단순화시키자면 숨길 게 많아 입을 닫는다는 뜻이다. 특별히 감출 것도 없는데,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같은 한국 속담이나, “말이 많으면 죄도 많다”(성경 잠언 10장 19절)라는 식의 가르침에 젖어 입을 잘 떼지 않는 신중한 사람도 있다. 다만 해야 할 말을 너무 하지 않고 참다가 답답함 때문에 화병이 생길 수도 있고, 다른 이들에게 쓸데없는 의심과 오해를 사서 고립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요즘 말을 유창하게 잘해야 된다는 강박관념으로 스피치 학원, 아나운서 학원, 성우 학원 등에서 말 잘하는 것을 배우는 현상도 좀 우습다. 면접시험이나 직장 프레젠테이션 때문이라지만, 유창한 포장보다는 내용이 충실한 게 으뜸이다. 말만 번지르르한 달변보다는 어눌한 진실함이 오히려 더 빛나고 아름다울 수 있다. 히틀러는 어릴 때부터 식탁 위에 올라가 연설하는 것을 즐겨서 누가 말려야 말을 그쳤다 한다. 도대체 누가 히틀러를 닮고 싶어 하겠는가.

스타일이나 남들 평가에 신경쓰지 말고 내 생각을 남과 나눈다는 열린 태도만 갖춘다면, 말이 많고 적고 빠르고 느린 건 중요하지 않다. 옛날부터 말은 많아도 흠, 적어도 흠이다. 따지고 보면 자신의 말 때문에 한 번도 비난받지 않은 사람이 세상에 과연 있겠는가?

‘기훼다언(旣毁多言), 우훼눌인(又毁訥忍), 역훼중화(亦毁中和), 세무불훼(世無不毁)’. 법구경 ‘분노품’ 중 한 구절의 뜻은 이렇다. “말이 많다고 비방하고, 말이 어눌하다고 비방하고, 말이 적어도 비방하니, 세상에 욕 안 먹는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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