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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령님 타령만 해선 안 통해” 디지털로 무장, 힐링에 방점

#지난달 30일 오후 4시. 전남 고흥에서 첨단과학기술의 결정체인 나로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된 시간, 서울 역삼동의 한 빌딩에 자리 잡은 백운산 철학관은 손님들로 붐볐다. 대기실과 소파에는 예약 손님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성 손님이 많았지만 아들로 보이는 청년과 함께 온 말쑥한 정장 차림의 신사도 있었다. 약속 시간을 훌쩍 지나 기자와 마주앉은 백운산(본명 유영대·70)씨는 “무더운 한여름을 빼고는 손님이 꾸준한 편”이라고 했다. 그는 “나로호 성공에서 보듯 올해 국운이 풀리는 한 해가 될 것”이라며 말을 이어갔다.
“과학기술이 발전해도 불안하고 어려운 사정에 처한 사람은 계속 있어요. 자살을 생각할 만큼 어려운 사람들에게 힘내라고, 좋은 운이 돌아온다고 위로를 건넵니다. 사방이 꽉 막힌 듯 느끼는 이들에게 새로운 방향을 가르쳐 줍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힐링’을 합니다.”

불안·불만·불황  ‘3不시대’ 운세산업 新풍속도


#같은 날 오후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화서문로의 점집 거리. 900m 남짓한 화서문로 양쪽에만 30여 곳, 인근 골목길까지 합치면 100여 곳의 점집이 밀집해 있다. 대부분의 점집이 태극기, 만(卍)자가 적힌 흰 천, 빨간 천이 순서대로 걸린 장대를 내걸고 있었다. 접신을 쉽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한 집에 들어서자 거실에 굿 음식으로 보이는 한과·과일이 쌓여 있다. 신년 운세를 보고 싶다고 하자 불상이 있는 방으로 안내했다. 정씨는 노란 천이 달린 방울을 왼손에, 빨간 천이 달린 부채를 오른손에 들고 흔들었다. 기자에게 대뜸 “외로움을 많이 타고 쓸쓸할 거야”라며 “내가 너를 살릴 수도 있어. 그리고 죽일 수도 있어. 살려줄까? 살려줄까?”라고 물었다. 섬뜩했다. 다음 월요일에 꼭 ‘오래 입은 속옷’을 들고 찾아와야 편안하게 해줄 수 있다는 신신당부를 듣고서야 점집을 나섰다.

운세 산업은 21세기에도 여전하다. 한국역술인협회 백운산 회장은 “협회 회원이 꾸준히 30만 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며 “무속을 뺀 역술 분야만 연간 2조원 이상으로 추정되는 큰 산업”이라고 말했다. 무속 분야 종사자(약 15만 명)의 매출(약 1조5000억원)까지 합치면 연간 매출이 3조5000억원쯤으로 늘어난다. 지난해 우리나라 건강기능식품 시장이 이 정도 규모다.

이정재 경희대 국문학과 교수는 “점술 등 운세산업이 확장 추세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는 “현대사회에서 전통적 종교의 역할이 줄면서 그런 공백이나 정신적 방황을 일부 메워주는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국무속학회장인 이용범 안동대 민속학 교수는 “불안감이 무속산업을 살찌운다. 종교의 가장 큰 적은 복지라는 말이 있지 않느냐”며 “사회가 불안하고 경제가 안 좋아 삶의 문제를 해결할 길이 막히면 종교적인 것에서 해답을 찾으려 하는데, 점집의 번창도 이런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갖게 되는 불만은 운세산업의 조미료 역할을 한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13대 국회의원을 거친 뒤 철학원을 내 화제가 됐던 역술인 이철용씨는 “잘되면 자기 덕, 안 되면 남의 탓을 하는 게 인지상정 아니냐”며 “현재의 불만을 해결하지 못하고 조상과 부모를 탓하다가 사주, 이름, 심지어 손금까지 탓하는 심리가 점술에 의지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하지만 운세산업도 속사정을 보면 변화의 바람이 감지된다. 전통적인 무속은 어려움을 겪는 반면,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거나 서양 점성술인 타로 등 소비자들의 관심에 올라탄 신종 점술이 세를 키우고 있다.

좌) 서울 미아리의 한 전통 무속인 집 풍경. 우) 한 포털 사이트의 운세 코너.
조상 탓, 사주 탓, 손금 탓하다 점술에 의지
전통 무속은 사정이 좋지 않다. 국내 최대의 무속인단체인 대한경신연합회 최수진 이사장은 “2011년 하반기부터 어려워지더니 지난해에 아주 힘들었다”며 “굿이나 치성을 들이는 수요가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알아주는 최상위 무속인만 그렇지 대부분은 활동도 뜸하고 경제적으로도 위축돼 있다”고 말했다.

점집 거리에서도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지난달 31일 오후에 찾은 서울 미아동 점집촌 일대. 지하철 성신여대입구 역에서 5분쯤 떨어진 이 일대에는 학생 등 유동인구가 많지만 점집에 관심을 두는 사람은 찾기 어려웠다. 미아리에서 오래 영업해 온 맹인 역술인 강철환(유림운명철학관)씨는 “미아리 하면 옛날부터 외국에까지 이름이 알려질 정도로 유명한 점집 거리였는데 지금은 한풀 꺾인 느낌”이라고 말했다. 수원 화서문 일대 점집거리도 갈수록 쇠락하고 있다. 수원시 팔달구청 관계자는 “한때 120개가 넘었던 점집이 조금씩 줄고 있다”고 말했다.

무속인이 관련된 사기 사건들도 영향을 준다. 복채가 오가는 수준인 사주 등과 달리 치성·굿 등의 명목으로 큰돈이 오가는 무속의 특징 때문이다. 경남 창원 중부경찰서는 지난달 14일 굿을 안 하면 가족이 죽을 것이라며 주부를 협박해 2억원 가까이 뜯어낸 무속인 이모(52·여)씨를 구속했다.

하지만 정교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거나 기술과 해석의 혁신으로 손님을 모으는 신세대 역술인이 늘고 있다.

서울 역삼동에 자리 잡은 ‘더 레드 컴퍼니’. 깔끔한 간판 디자인과 상호만으로는 업종을 짐작하기 어렵다. 대표 전진우씨의 상담실에는 큼직한 모니터 두 대가 켜져 있다. 상담을 청하자 아이패드를 꺼내들었다. 전씨는 앱과 모니터를 오가며 자신이 재해석한 자미두수(紫微斗数)를 활용해 설명했다.

자미두수의 어떤 부분을 재해석한 것일까. 전씨는 “예컨대 옛날 자료는 여성에게 ‘문서’의 운이 들어 있으면 흉하다고 봤다. 여성이 억압받던 시절에 학문을 아는 총명한 여성의 운명이 평탄했을 리 없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지 않나. 시대 상황에 맞게 재해석했다”고 말했다.
전씨는 자신의 해석을 따르는 젊은 역술인들을 가르쳐 조만간 똑같은 상호를 가진 사무실을 홍대 앞이나 강남에 새로 낼 예정이다. 그는 “성공할 경우에는 국내 최초의 역술 프랜차이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삼성동의 한 빌딩에 자리 잡은 송병창씨의 사무실에는 ‘라이프비젼 미래휴먼 컨설팅’이라는 상호가 붙어 있다. 송씨는 진로나 적성에 맞춰 진학·편입학·유학의 시기와 방향을 정해 주는 교육 컨설팅이 전문 분야다.

송씨는 신세대 역술인의 원조쯤 된다. 1990년대 초반 스스로 고안한 역술 프로그램과 데이터베이스를 여전히 활용 중이다. 송씨는 “그동안 쌓인 수만 명의 데이터와 시대적 변화상을 접목해 풀이를 해준다”며 “막연한 인생 상담보다는 선택의 기로에서 어떤 방향이 본인과 맞는지를 설명해 주는 게 주된 업무”라고 말했다.
 
국내 최초 역술 프랜차이즈도 등장할 듯
고객의 수요와 유행의 변화를 재빨리 찾아내는 것도 중요하다. 전통적인 사주풀이나 신점 등은 기성세대의 전유물이다. 총선과 대선이 있었던 지난해 유명 역술인들이 호황을 누린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젊은 여성층을 중심으로 수년 전부터 크게 유행하는 서양 점성술 타로는 전혀 다른 세계다.

서울 압구정동에서 타로점을 보는 박보미(44·여)씨는 “인생 전반을 따지는 사주와 달리 그때그때 물어보는 질문에 대해 답이 정확하게 나오는 게 타로의 묘미”라고 말했다. 유명 연예인이나 사업가도 많이 찾아온다는 박씨는 “적중도보다 힐링 차원이 중요하다. 결국 속 얘기를 들어주고 함께 답을 구하는 심정으로 얘기해 준다”고 말했다.

결국은 역술도 시대 흐름과 고객의 요구에 맞춰 변화해 가야 한다는 뜻이다.

무속계도 변화를 시도 중이다. 대한경신연합회는 무속인들에게 교육과 시험을 통해 ‘무속 심리상담사’ 자격증을 발급하고 있다. 연합회 최수진 이사장은 “무속인도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하려면 신령님만 얘기해서는 안 된다”며 “지난해부터 연간 두 차례 시험을 보는데 무속인들의 관심이 많다”고 소개했다.

역학 관련 잡지를 내고 교육사업도 하는 한국역학협회 전용원 대표도 무속과 역학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예언 사업’에 공감했다. 그는 “우리 역학 교육 기관에 수년 전부터 무속인 출신의 수강생이 꽤 들어왔다”며 “그분들 말을 들어보면 요즘 손님들은 학문적이고 체계적으로 설명하지 않으면 잘 듣지 않는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용범 교수는 “앞으로 전개될 삶을 준비한다는 면에서는 순기능이 있다”면서도 “사회가 투명해지고 복지가 잘 갖춰져 예측 가능성이 커지면 점에 의존하는 경향은 자연히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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