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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책] 2월의 주제 OO에서 온 편지



‘이달의 책’ 2월의 주제는 ‘OO에서 온 편지’입니다. 각기 장르도, 주제도 다르지만 서로 얘기를 걸고, 의지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체온이 담긴 신간 세 권을 골랐습니다. 철학자와 시인, 그리고 소설 속 주인공이 보내온 편지들입니다. 우리의 삶을 살찌우게 하는 영양제 같은 책입니다.



좀도둑들의 유쾌한 조언 “배부른 고민은 그만”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현대문학

456쪽, 1만4800원




점을 보는 심리에 대해 친구가 그럴듯한 분석을 내놨다.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들으러 갈 때까지 점집 쇼핑을 하게 된다는 거다. 결정의 순간을 앞둔 때는 더 그렇다. 앞날을 예견하고 인생을 상담한다는 거창한 명분의 속살은 자신의 결정에 맞장구를 쳐줄 누군가를 찾는 것일지도 모른다.



 소설은 이 이야기를 좀 다른 방식으로 풀어낸다. 과거와 현재의 대화다. 매개물은 편지. 과거와 현재의 중간지대는 나미야 잡화점이다.



 어느 날 좀도둑 세 명이 폐가가 된 나미야 잡화점에 몸을 숨긴다. 30여 년 전 주인장인 나미야 유지의 친절한 인생상담으로 유명했지만 오래 전 폐업한 이곳에는 사람의 발길을 찾을 수 없다. 그런데 갑자기 고민을 상담해달라는 편지가 날아든다.



 경찰에게 쫓겨 ‘내 코가 석 자’인 신세지만 좀도둑들은 측은지심을 발휘해 답장을 쓰기 시작한다. “별로 대단한 충고는 못해주더라도, 당신이 힘들어한다는 건 충분히 잘 알겠다, 어떻든 열심히 살아달라, 그런 대답만 해줘도 틀림없이 조금쯤 마음이 편안해질 거”라면서.



 상담 스타일은 좀 거칠다. 돌직구를 던진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가업인 생선가게를 물려받아야 할지, 가수의 꿈을 지켜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에게 팔자 좋은 소리라 일갈한다. 발끈한 피상담자와 좀도둑들 사이에 편지 배틀도 벌어진다.



 “앞으로 삼십 년만 지나보세요. 그런 태평한 소리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니까. 일할 데가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에요. 대학을 무사히 졸업해도 취직이 될까 말까 하는 시대가 옵니다. 틀림없이 와요.”라고.



 그렇다. 일상에서는 “너나 잘하세요”라는 퉁을 듣기 일쑤인 좀도둑들이 확신 가득한 조언을 마음껏 뱉을 수 있는 건 이들이 피상담자의 입장에서 보면 미래에 살고 있어서다. 물론 그들에게는 현재지만…. 답을 알고 있으니 속 편하게 혹은 싸가지 없게 답해줄 수 있는 거다.



 이야기를 더 풍성하게 하는 것은 좀도둑들에 앞서 상담자 역할을 했던 주인장 나미야 유지의 답장 내용과 여러 사람의 이야기다. 타인의 고민을 흘려 듣지 않고, 비록 정답이 아닐지라도 귀 기울여 들어주는 것이 어떻게 사람을, 운명을 바꾸는지 보여준다. 나미야 잡화점이 만든 기적의 순간이다.



 하지만 그 기적은 잡화점의 주인이 만든 것이 아니다. 나미야 유지가 “나에게 상담을 하시는 분들을 길 잃은 아이로 비유한다면 대부분의 경우, 지도를 갖고 있는데 그걸 보려고 하지 않거나 혹은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알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라고 말했듯 기적의 씨앗은 각자가 품고 있어서다. 다만 싹을 틔워낼 물과 온도가 부족했던 것일 뿐. 그래서 물을 주고 빛을 쬐어주듯 모자란 무언가를 채워준 한마디 말에 힘을 얻은 것이다.



 치밀한 얼개로 촘촘히 짜인 기존의 히가시노 게이고류 추리소설을 기대했다면 다소 실망할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책은 따뜻한 아랫목에 앉았다가 스스르 살풋, 잠들었다가 깬 듯한 느낌을 준다. 그 꿈의 끝자락에 나미야 유지의 답장 한 구절이 스쳐간다.



 “당신의 지도가 백지라면 난감해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백지이기 때문에 어떤 지도라도 그릴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당신 하기 나름인 것이지요. 부디 스스로를 믿고 인생을 여한 없이 활활 피워보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하현옥 기자





로마 현인 세네카, 평생을 분노 속에 보낼 것인가



화에 대하여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

카 지음, 김경숙 옮김

사이, 252쪽, 1만3000원




화는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불이다. 마음의 불을 어떻게 끌 것인가. 고대 로마 철학을 대표하는 세네카(BC4∼AD65)가 전하는 ‘심화(心火) 처방’은 그 울림이 잔잔하면서도 강렬하다. 2000년 세월을 뛰어넘어 인간의 본성과 한계를 생각해보게 한다.



 사적이건 공적이건 ‘욱’하고 격하게 올라오는 경험은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하게 마련이다. 일상적 다반사에 대해 세네카는 적당히 감정을 조절하라는 식으로 얼버무리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도 화를 내지 말 것을 제안한다.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고, 이성의 동의 없이는 화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바로 그 이성으로 화를 제어할 수 있다는 논리다.



 언뜻 현실적으로 동의하기 힘든 듯한 세네카의 제안은 그가 산 시대를 연상하면 이해가 갈 법도 하다. 세네카는 정치적 음모에 연루되어 8년간 코르시카섬에서 유배생활을 했고, 유배 이후엔 역대 최악의 폭군으로 불리는 네로 황제의 가정교사 5년을 거쳐 보좌관까지 8년을 지내다 끝내 네로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공포와 광기가 소용돌이치는 시대였다.



 세네카의 철학적 이상형은 평정심을 유지하는 현자(賢者)로 표현된다. 아무리 현자라도 눈앞의 비열한 행동엔 화가 나지 않을까. 세네카의 대답은 이렇다.



 “현자가 비열한 행위에 대해 항상 화를 내야하고 범죄적 행위로 인해 짜증을 내고 우울해 해야 한다면, 그는 세상에서 가장 괴로운 사람일 것이다. 아마 평생을 분노와 비판 속에서 보내야 할 테니 말이다.”



 역설적이다. 이런 말도 했다. “책망해야 할 일이 현자의 눈에 띄지 않는 순간이 단 한 순간이라도 있을까? 집을 나설 때마다 그는 죄짓는 자들, 탐욕스러운 자들, 방탕아들, 파렴치한들, 그리고 그런 악덕에 편승해 이익을 챙기는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걸어가야 할 것이다.” 도처에 범죄와 악덕이 득실득실한 세상에서, 그 모두에 화를 내지 않으려면 아예 처음부터 그 모두를 한꺼번에 용서해야 한다는 게 세네카의 생각이다. 그가 볼때 화는 솔직함이 아닌, 분별없음의 표현이다. “화를 내며 보내기에는 우리 인생은 얼마나 짧은가!”란 말로 끝을 맺는다.



 오랜 세월 인간은 많이 변한 것 같으면서도 변하지 않았다. 화를 억제하려는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서양철학사에서 그 첫 자리는 세네카 몫인 듯하다.



배영대 기자





시인 정호승, 좋은 날이 어디 따로 있습니까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정호승 지음

비채, 483쪽, 1만3000원




귓등으로 스쳐 넘긴 한마디는 짧다. 그러나 마음에 뿌리내린 한마디는 어떤 책보다 강한 힘을 발휘할 때가 있다. 인상 깊었던 한 지인의 이야기다.



 그는 어릴 적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가 많았다. 어른이 되고 나선 아버지의 말에 늘 트집을 잡았고, 다퉜다. 그런 그에게 어머니는 한마디 문자를 보냈다. “나이 드는 건 서러운 일이란다.” 그는 아버지를 다시 생각했고, 자신을 돌아봤다고 했다.



 두툼한 책엔 이와 같은 한마디 에피소드가 일흔여섯 소절이나 들었다. ‘너는 실패해도 성공했다’거나 ‘무엇을 시작하기에 충분할 만큼 완벽한 때는 없다’ ‘남에게 자신을 설명하는 것은 자신감의 결여를 반증하는 것이다’처럼 제목만 곱씹어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시인 정호승은 제목들이 선언적 구호에만 그치지 않도록, 생생한 사례로 뒷받침했다. 사례는 동·서양을 넘나들고,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아마도 저자는 사느라 지친 영혼들에게 현대판 탈무드 한 권을 건네며 용기를 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지금이 그때다’는 한마디에선 법정 스님의 이야기가 나온다. 스님의 ‘무소유의 정신’은 유명하지만, 스님은 늘 ‘지금’을 강조했다고 한다. “삶은 미래가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입니다. 매 순간의 쌓임이 세월을 이루고 한 생애를 이룹니다” “좋은 날이 어디 따로 있어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 순간순간,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좋은 날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라고.



 시인은 남의 이야기만 늘어 놓지 않는다. 스스로 고백한다. 지난 잘못과 찰나의 깨달음을. 어쩌면 책은 그의 참회록이자, 성찰기이기도 하다. 그는 “작은 일에 왜 모든 힘을 다해 대항해 왔는지 모르겠다. 본질을 벗어난 생각과 행동의 과잉이 내 삶을 지배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종이 한 장 자르는 데 도끼질하지 마라’는 한마디가 나오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알 수 없는 미래를 두려워하는 청춘에게 전하는 말도 있다. “미래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다”라고 했다. 노력과 준비에 따라 미래는 얼마든지 여러 개 만들 수 있고, 그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는 거다. 그래서 그가 보는 미래학은 예언이 아니라 선택의 미학이다.



한은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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