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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승무원과 6개월만에 이혼男 "살아 보니…"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지난해 말 ‘돌싱(돌아온 싱글)’이 됐습니다. 지금 너무 행복합니다. 아이에게는 더 좋은 엄마가 됐고 직장 생활도 훨씬 원만해졌어요. 인생이 술술 풀리는 것 같아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한 번 갔다 온 게 대수냐” 당당한 돌싱, 결혼시장 블루칩 …
“화려한 싱글은 환상” 경제력 없으면 결혼보다 못한 삶



 언뜻 보면 ‘왜 이혼했느냐’는 면접장의 질문 같지만 사실은 2년간의 결혼 생활을 마감한 뒤 싱글로 돌아온 김지윤(가명·31·여)씨의 ‘당찬’ 자기소개다. 김씨는 돌싱들이 자주 모이는 카페에 가입해 자신의 프로필과 이혼 사연을 올리고 아이 사진과 일상도 공유하며 활발히 활동 중이다. 김씨는 “돌싱들끼리 살아가는 얘기를 나누며 마음의 안정을 찾고 위안도 받곤 한다”며 “얼마 전부터는 돌싱녀들의 모임에도 참석해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뿐만이 아니다. 네이버나 다음 등 대형 포털사이트에는 ‘해피 돌싱’ ‘돌아온 싱글들의 만남’ ‘이혼에서 재혼까지’ 등 관련 카페 수십 개가 돌싱들의 커뮤티니 공간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이곳에서 돌싱들은 서로의 마음을 터놓으며 새로운 짝을 찾기도 한다. 불과 수년 전만 해도 비밀리에 이뤄지던 이 같은 모습이 지금은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개적인 인터넷 공간에서 당당히 펼쳐지고 있다. ‘120만 돌싱 시대’의 새로운 현상이다.



 이제 이들을 맞는 건 ‘이혼녀·이혼남’이라는 주홍글씨가 아닌 ‘또 다른 미혼의 세계’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1년 이혼한 부부는 11만4300여 쌍으로 하루 평균 313쌍에 달한다. 지금 우리 주변에서도 매시간 평균 13쌍이 이혼하고 있다. 어느새 돌싱이 일반화된 세상에 살고 있는 셈이다.



 돌싱은 대중매체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개그우먼 조혜련은 지난해 공개석상에서 “돌싱이 됐다”고 선언했고, 돌싱 연예인들도 토크쇼에 출연해 이혼 후의 삶을 가감 없이 풀어놓는다. 티슈를 옆에 두고 눈물을 닦으며 고해성사하듯 이혼을 고백하던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다. 개그맨 김국진의 ‘이혼 경력’은 그가 출연하는 연예 프로그램에서 단골 유머 소재로 쓰이곤 한다. 이혼은 금기어였고 이혼 남녀는 부정적인 캐릭터로만 그려지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돌싱들도 브라운관과 각종 연예매체에서 당당한 게스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돌싱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바뀌면서 이혼을 결심하는 시기도 점차 빨라지고 있다. 이 같은 추세는 사회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젊은 세대에서 더욱 뚜렷하게 감지된다. 결혼한 지 몇 달도 안 돼 쉽게 ‘돌싱’을 선언하는 경우도 적잖다. 주모(35·여)씨는 성격 차이로 1년간의 별거 끝에 결혼 2년 만에 이혼 도장을 찍었다. 명문대 출신으로 연봉이 7000만원에 달하는 주씨는 주위에 당당히 이혼 사실을 밝힌 뒤 새로운 남자친구와 연애를 하고 있다. “혼인신고도 안 했고 애도 안 낳았어요. 식만 올렸지 호적상으로 깨끗한데 한 번 갔다 온 게 무슨 상관이에요?”



골드미스들, 돌싱남에 러브콜 줄이어



 돌싱들의 ‘화려한’ 귀환은 결혼시장의 질서도 바꿔 놓았다. 과거엔 ‘이혼했다’는 사실을 최대한 숨겨야 했던 돌싱들이 최근 들어 결혼정보시장에서 상종가를 올리기 시작했다. 특히 안정된 경제력과 자상한 성격을 가진 돌싱 남성의 경우 ‘리본족’이라 불리며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다. 리본(Reborn)족이란 ‘이혼 후 다시 태어났다’는 의미로, 경제적 능력을 갖춘 젊고 매력적인 이혼 남성을 뜻하는 신조어다.



 20여 차례의 소개팅 끝에 만난 돌싱 남성과 지난해 말 결혼식을 올린 한정은(31)씨는 “그동안 맘에 드는 남성을 도통 만나지 못했는데 새신랑은 외모부터 온화한 성격까지 모든 게 내가 찾던 이상형이었다”며 “난 초혼이지만 그가 재혼이란 점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고 말했다. 재혼 정보회사 온리유의 손동규 대표는 “예전엔 이혼남이라고 하면 무조건 기피 대상에 꼽히곤 했지만 요즘 여성들은 자상하고 능력이 있다면 돌싱 남성도 무관하다는 반응들”이라며 “특히 골드미스의 경우 돌싱남과의 만남을 원하는 비중이 상당히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돌싱남에게 적극적으로 러브콜을 보내는 골드미스 못지않게 돌싱녀와의 만남을 기다리는 남성들도 늘고 있다. 특히 출산 경험이 없는 젊은 돌싱 여성의 경우 골드미스보다 경쟁력에서 우위를 보이기도 한다. 결혼정보업체의 한 관계자는 “골드미스들은 초혼이라 이것저것 따지는 데 비해 돌싱 여성들은 결혼에 대한 압박도 적고 조건도 크게 중시하지 않는 경향이 많다”며 “골드미스는 무슨 문제가 있어 결혼을 못한 게 아니냐는 선입견을 가진 남성들도 적잖다”고 설명했다.



 최근 골드미스와 돌싱 여성들을 잇따라 소개팅한 정현욱(41·미혼)씨는 “골드미스는 만난 지 얼마 안 돼 연봉부터 물어보더라”며 “1억원대 연봉자인 나도 기분이 나쁜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지난해 온리유의 조사에 따르면 36~43세 미혼 남성 고객 588명 중 42.7%가 "돌싱도 배우자로 무방하다”고 답했다. 이 중 17%는 "돌싱만 소개해 달라”고 따로 주문을 넣기도 했다.



 실제로 돌싱만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는 김모(42·건축설계사)씨는 “주변의 돌싱 여성들을 보면 참 괜찮은 분인데 개인 사정으로 이혼한 경우가 많더라”며 “사람만 좋으면 이혼은 하나의 경험으로 생각하고 넘기면 된다”고 돌싱 선호 이유를 밝혔다. 통계청 조사에서도 1990년대 초반 전체 혼인 건수의 2%대에 불과했던 초혼남과 이혼녀의 혼인건수는 2010년 6.7%로 늘었다.



 그렇다면 돌싱들은 왜 다시 ‘싱글의 세계’로 귀환했을까. 이들은 “이혼해도 괜찮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한몫했다”고 입을 모은다. 친구나 직장 동료 등 주변에서 쉽게 돌싱을 접하게 되면서 ‘나도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갖게 됐다는 얘기다. TV에서도 돌싱들이 등장하는 프로그램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최근엔 SBS의 ‘짝’ 돌싱 특집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12년간의 결혼 생활을 청산하고 지난해 6월 이혼한 김선호(45·사업)씨는 “사람들이 수군거릴 줄 알았는데 다들 이해해 줘 적잖이 안심이 됐다”며 “친구와 지인 몇 명의 이혼 과정을 지켜보면서 자연스레 결심을 굳히게 됐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정익중(사회학) 교수는 “과거 이혼남과 이혼녀는 부정적인 아이콘으로 낙인찍혔지만 이젠 이혼도 개인의 자연스러운 선택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라며 “이혼 사유도 ‘성격 차이’가 대세를 이루는 추세”라고 말했다. 지난해 가을 승무원이었던 아내와 결혼 6개월 만에 갈라선 정호진(가명·33)씨는 “비행기에서 보고 첫눈에 반해 1년을 쫓아다녀 결혼했지만 성격이 너무 달라 도저히 결혼 생활을 이어 갈 수 없었다”며 “연애할 때 쿨하게 헤어지는 것처럼 나에게 또 다른 선택의 기회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혼 전에 자립 능력부터 갖춰야



 “이혼하면 반드시 1년에 두어 번 해외여행을 갈 겁니다. 마음 맞는 사람 만나 다시 새 인생 살 거고요. 취미 생활도 하나 이상 만들고 외국어도 하나쯤은 마스터하고 싶네요.”



 최근 이혼 상담을 받기 위해 부부클리닉을 찾은 이모(39·여)씨는 ‘이혼하면 뭘 하고 싶으냐’는 상담사의 질문에 이같이 밝혔다. 하지만 상담사로부터 충격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결혼 후 줄곧 전업주부로 사셨고 벌어 놓은 돈도 없으신데…. 이혼해도 위자료 얼마 못 받습니다. 나이도 있으시고 관리도 안 하셨고, 웬만하면 참고 사세요.”



 고정희 부부 상담 클리닉의 강용 상담연구원은 “충분한 준비가 뒷받침되지 않은 이혼은 결혼 생활보다 못한 삶을 가져다주기 쉽다”며 “상담 때마다 ‘신데렐라’ 환상을 버려라. 현실은 정반대라고 조언한다”고 말했다. 『여자들은 매일 이혼을 꿈꾼다』의 저자이자 이혼 전문 변호사로 활동 중인 이인철(법무법인 윈) 변호사도 “말이 좋아 돌싱이지 경제력도 절반으로 줄고 생활영역도 줄어드는 ‘반쪽짜리’ 삶이 되기 쉬운 게 이혼”이라며 “싱글만의 자유를 누리는 것도 좋지만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충분한 기반을 다지는 게 우선”이라고 충고했다. 그는 “이혼 부부들 중 상당수가 새로운 인연과 함께 또 다른 삶이 눈앞에 펼쳐지기를 기대하지만 그런 삶은 전체 돌싱 중 10%도 안 될 상류층 돌싱들의 삶”이라고 덧붙였다.



 이렇다 보니 경제력과 직업·경력 등에 따라 이혼 후 제2의 인생이 확연히 갈라지는 ‘돌싱의 양극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경제력이 좋은 돌싱 남녀는 초혼·재혼시장에서 모두 환영받지만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고 자기관리도 제대로 안 된 돌싱들은 어디서나 외면당하는 게 현실이다. 올 초 10년간의 결혼 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아들(10) 한 명을 키우며 살고 있는 정모(40·여)씨는 “남편에게 ‘다 필요 없으니 제발 이혼만 해 달라’고 빌고 빌어 결국 이혼했는데 아이 학원비 대고 생활비 벌려니 마트와 식당에서 하루 종일 일해도 빠듯한 실정”이라며 “화려한 돌싱은커녕 그저 이혼녀 아줌마일 뿐”이라고 씁쓸해했다.



 반대로 정씨와 비슷한 조건의 김모(40·여)씨는 비교적 여유로운 싱글 라이프를 누리고 있다. 초등학생인 아들과 함께 주말마다 수영을 배우고 유럽여행을 꿈꾸며 한 달에 30만원씩 꼬박꼬박 저축을 하고 있다. 틈틈이 남성들과 맞선 자리도 갖는다. 김씨의 직업은 초등학교 교사. 개인 고정 수입이 확보돼 있는 것은 물론 은퇴 후에도 연금을 받을 수 있어 인기가 높다. 희망재무설계의 조영경 팀장은 “초혼과 달리 경제력과 안정감을 우선시하는 재혼시장에서는 경제력이 제1의 스펙이자 필요조건”이라며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이혼은 혼자의 삶도, 재출발의 삶도 모두 힘들게 할 뿐”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돌싱 양극화 현상에 대해 “새 짝을 만나기에 앞서 똑똑하게 이혼하는 게 먼저”라고 조언한다. 단지 ‘갈라져서 행복한 삶’이 아닌, 홀로 자립해서도 행복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인철 변호사는 “솔직히 이혼한 뒤 혼자 살 만큼 준비가 안 돼 있거나 자립 능력이 없을 경우엔 이혼을 재고하라고 한다”며 “진정한 돌싱 반열에 들고 싶다면 이혼을 왜 해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이혼 뒤의 삶도 진지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막연히 ‘돌싱’의 꿈만 갖고 섣불리 이혼하면 미혼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혼도 아닌 ‘중간자’로 애매하게 살기 쉽다”며 “현명하고 신중하게 이혼하는 것이 돌싱의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글=송지영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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