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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칼럼] 밀실, 그리고 비밀의 실종

김효정
한국외국어대 독일어과 4학년
긴 머리를 총총히 땋고 다니던 어린 시절의 나에게는 혼자만의 밀실이 있었다. 빛 바랜 책상 아래, 의자가 드나들도록 뚫려 있던 네모난 공간. 어린 소녀가 팔다리를 움츠린 채 앉으면 꼭 들어맞는 자리였다. 재미난 읽을거리를 하나 골라잡고 토굴 같은 책상 밑으로 들어가면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는 의식해야 할 시선도, 지켜야 할 규칙도 없었기 때문이다.



 책상 밑의 아지트에서는 제멋대로의 나일 수 있어 행복했다. 일단 밀실에 들어앉아 의자로 입구를 가리면 여간해선 어린아이의 몸이 보이지 않는다. 어느 날은 내 방문을 열어보신 어머니께서 나를 찾으러 현관 밖을 헤매신 적도 있었다. 책상 아래 웅크린 소녀는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줄도 모르고 조용히 비밀을 쌓기에 바빴다. 그곳에서 나는 어른들이 읽지 말라던 만화책을 훑어보거나 몰래 색색의 화장품을 발라보곤 했었던 것이다.



 물론 몸집이 커진 지금은 책상 밑에 억지로 몸을 밀어넣지 않는다. 공간의 협소함은 둘째치더라도 20대가 하기엔 너무 아이다운 행동이라서 그렇다. 과연 나이를 먹을수록 남의 시선에 민감해지기는 하나 보다. 한적한 자투리 시간에는 그저 남들 하는 대로 평범하게 휴식을 취한다. 혼자서 스마트폰 액정을 만지작거리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혼자라도 혼자가 아니고, 휴식이 휴식답지가 않다. 휴대전화를 느닷없이 울리게 하는 광고 메시지도, 메일함을 가득 채운 이벤트 알람의 울음도 성가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도 마찬가지다. 쉴 새 없이 알 듯 말 듯한 사람들의 인사치레가 오가니 마음이 편하지 않다. 친구의 친구, 알 수도 있는 친구, 친구 요청을 수락한 친구, 새로운 사진을 올린 친구….



 정보화 시대, 지구촌도 좋다만 지나치면 관계의 늪에 빠진다. 클릭 한 번에 댓글이 우수수 달리는 세상에서 비밀을 품기는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요즘엔 그 어느 때보다 포근한 책상 속 밀실에서처럼 혼자만의 시간을 갖길 원한다. 남들의 이목이나 평가에서 벗어나 오로지 나 자신에게 투자할 수 있는 시간 말이다. 나만의 비밀이 하나 둘씩 싹틀 때마다 나만이 가질 수 있는 개성도 함께 꽃폈다.



 조만간 나만의 공간을 하나 찾아야겠다. 어린 나에게 달콤한 휴식과 풍성한 비밀을 가져다주었던 추억의 밀실 같은 곳. 책상 밑이 좁아졌으니 좀 더 널찍한 공간을 찾을 생각이다. 그만큼 아늑하고 안전하다는 느낌만 있으면 된다. 그런데 그 전에 꼭 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끄는 일이다. 전원 버튼을 누른 뒤 오늘 하루만큼은 철저히 나만의 공간에서 혼자가 되련다.



김효정 한국외국어대 독일어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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