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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대해, 나이듦에 대해 아랫목 둘러앉아 두런거리듯

출판사: 문예중앙 가격: 1만3000원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 차 한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 김치 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 우리 집 가까이에 있었으면 좋겠다 //….”

유안진 산문집 『상처를 꽃으로』

유안진 교수의 시 ‘지란지교를 꿈꾸며’는 젊은 날의 애송시였다. 부러 고른 편지지에 아끼던 만년필로 또박또박 베껴 마음 맞는 친구에게 전해준 적도 여러 차례다.

유 교수가 이번에 내놓은 산문집 『상처를 꽃으로』는 “밤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 놓고 보일 수 있는” ‘지란지교’들과 편하게 주고받는 이야기다. 본인 스스로 “마치 고향집 아랫목에 어머니를 중심으로 피붙이들과 둘러앉은 기분”이라고 서문에 밝혔을 정도다.

살아가는 일상에 대해, 나이듦에 대해, 또 젊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저자의 목소리는 구수하면서 정겹다. 시계가 없었지만 오감으로 우주와 소통했고 그래서 오히려 더 직관력이 있었던 시절(‘시계 밥 줘라’)과 ‘골목마다 아롱점박이로 익어가는 풋대추 마을과 담 너머로 풋감알 오지리 자지리 매달린 감나무 가지’(‘송편 모양이 신랑 모양인데’) 얘기는 읽는 이에게 절로 미소를 짓게 한다.

‘옛날 애인이 불행하다고 하면 가슴이 아프고, 행복하다고 하면 배가 아프고, 다시 사귀자고 하면 골치가 아프다’는 속언을 거론하면서도(‘사랑은 짐이다’) 두 줄짜리 짤막한 시구로 슬며시 진심을 털어놓는 시인의 고백은 매력적이다. “봤을까? / 날 알아봤을까?”(시 ‘옛날 애인’)

나이듦에 대해서도 피카소의 위트를 적절히 활용한다. “애들 낙서 같다”고 지적하는 기자에게 “그렇다. 아이가 되는데 80년이 걸렸다”고 응수한 피카소의 말은 긴 여운을 남긴다.

시인이 특히 애정을 표현하는 것은 아름다운 우리말이다. 그중에서도 ‘꽃’과 ‘하늘’은 한글의 아름다움이 응축된 단어라고 단언한다. ‘꽃’은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이 ‘꼬오옻’으로 다 모여드는 듯하고 ‘하늘’에서는 그렇게 모여 응축된 꽃향기가 상하좌우로 끝없이 울려나가는 어감을 느낀단다. 심지어 하늘의 ‘ㅎ’을 쓸 때도 첫 획을 눕혀 쓰지 말고 세워 써야 하는데 그것도 위에서 아래가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 써야 날아갈 듯한 느낌을 제대로 담을 수 있다고 말한다.

뿐이랴. 보라색도 도라지보라, 진달래보라, 오동보라로 구분했던 어머니의 어휘구사력이나 문 닫고 들어와, 문 잠그고 나가 등 모순 어법의 절묘함도 시인에겐 여전히 경탄의 대상이다.

삶을 관조하는 시인은 이제 모자란 곳에서 충만함을 찾는다. 그의 시 ‘빈방 있습니까’의 배경이 되기도 한 일화가 자꾸 귓가에 맴돌아 여기 소개한다.

전교생이 크리스마스 연극을 하게 된 시골학교. 조금 모자란 우리의 윌리에게도 대사 하나가 주어졌다. 성모 마리아를 데리고 여관방을 구하는 성 요셉이 “빈 방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없어요”라고 대답하면 그만. 하지만 정작 무대에서 윌리는 요셉의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보다 못한 선생님이 옆에서 속삭였지만 요지부동. 만삭의 마리아와 요셉을 멀뚱멀뚱 보던 그가 마침내 깊고 따뜻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 방 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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