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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을 비는 간절한 마음 옷고름에 찰랑찰랑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서울 인사동. 번화가 한복판에서 몇 발짝 떨어진 골목에 작지만 아름다운 박물관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조선시대 노리개와 가락지를 비롯한 각종 장신구와 목기, 나전, 칠화 등 귀중한 우리 유물 1만 5000여 점을 소장한 보나장신구박물관이다.

나의 애장품 <12>김명희 보나장신구박물관장의 노리개

미술을 전공했지만 줄곧 전업주부로 살아왔던 김명희(66) 관장은 특히 노리개를 사랑한다. 젊은 시절부터 한복을 즐겨 입고 노리개 다는 것을 좋아해 ‘노리개 아줌마’라 불렸던 그다. 몰락한 왕가에서 비밀리에 금은방에 나온 귀한 노리개를 사들이기 시작한 것이 지금은 1000점을 헤아린다. “젊었을 땐 몇백 년 된 유물을 겁도 없이 달고 다녔어요. 나중에는 두 딸에게 물려주고 싶어서 계속 모았죠.”
우리 노리개는 장식성뿐 아니라 기복의 염원도 담고 있다. 아들 낳고, 오래 살고, 건강하길 바라는 소망을 여인들은 늘 지니고 다녔다. “외국 생활을 오래 하면서 우리 것이 아름답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어요. 외국인들이 귀한 걸 먼저 알아보거든요. 노리개는 일본과 중국에도 없고 우리만 있는 것이라 더욱 가치 있는 유물이에요.”

금융인 남편의 직장을 따라 10여 년 동안 외국 생활을 하면서 붙인 취미가 박물관 탐방. 낡은 바바리코트를 걸치고 박물관을 거니는 노부부와 마주치면 그렇게 멋스러울 수가 없었단다. 80년대 잠시 귀국했을 때는 국립중앙박물관 박물관대학에서 유물 공부를 하며 가진 돈을 몽땅 유물 구입에 쏟아부었지만 당시엔 박물관을 열게 되리라곤 꿈도 꾸지 않았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남편과의 사별은 인생에 뜻하지 않은 전환점이 됐다. “남편이 떠나고 한동안 아무것도 못했어요. 딸들이 억지로 저를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밀어넣으면 하루 종일 유물을 보며 현실을 잊었죠. 한국에 돌아와서도 아무도 만나지 않았어요. 아침 11시만 되면 혼자 운동화 신고 박물관에 가 하루를 보냈죠.”

그렇게 세월을 보내던 김씨는 2002년 월드컵을 맞아 열린 호암미술관 조선목기전을 통해 세상과 소통할 결심을 하게 된다. “제가 대여한 소장품 몇 점이 찬사를 받으며 성공적으로 전시를 마치니 우리 유물의 아름다움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생겼어요. 세상 물정 모르고 살던 전업주부가 수집품 덕에 제2의 인생을 살게 된 셈이죠.”
재산 대부분을 유물 구입에 쏟아부어도 말없이 지지해주던 남편을 그리며 그는 지금도 매년 남편의 생일에 맞춰 기획전을 연다.

김씨의 아름다운 컬렉션은 일본 언론에 소개되면서 외국인들에게 더 유명해졌다. “아름다운 조선시대 장신구를 볼 수 있는 유일한 사립박물관을 찾는 한국인은 거의 없네요. 명품을 몸에 두르고도 입장료 5000원에 그만 발길을 돌리죠. 젊은 사람들이 많이 보고 우리 아름다움을 재창조해 가야 할 텐데 아쉬워요. 허름한 차림으로 와서 입장료를 당연하게 내고 우리 유물에 감탄하고 가는 일본인들을 보면 마음이 복잡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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