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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사로잡을 매력남” … 돌체&가바나, 이 남자 콕 찍었다

패션 모델 유혁재는 ‘스스로를 맘껏 표현해 보라’는 주문에 다양한 표정과 몸짓을 보여줬다. 천진난만한 소년의 모습에서부터 이성을 유혹하는 끈적한 눈빛까지 자유롭게 표현했다
이탈리아 브랜드 ‘돌체&가바나’를 운영하는 패션 디자이너 도메니코 돌체와 스테파노 가바나가 ‘찍은’ 남자가 있다. 지난해 밀라노에서 열린 자신들의 패션쇼 무대에 세운 모델 유혁재(25)다. 돌체와 가바나는 그를 “세계인의 눈을 사로잡을, 차세대 매력남”이라고 치켜세웠다. 10여 년 전 미국으로 이민 간 유혁재의 미국식 이름은 제이유(Jae Yoo), 세계 무대에서도 이렇게 불린다. 미국 브랜드 캘빈클라인은 지난해 여름용 패션쇼 모델로 그를 발탁했다. 아시아인 모델로는 처음이다. 유씨는 “이탈리아에 본사를 둔 유명 브랜드의 새 광고 주연 모델로 최종 계약을 앞두고 있다”고 밝혔다. 성사될 경우 전 세계 80여 개국, 5000여 개 매장에서 선보일 광고에 한국인이 주역으로 등장하는 것이라고 한다. 미국 미시간대학(앤아버)에서 신경과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면서 세계 패션계 무대를 종횡무진하는 그를 만나 그 성공 스토리를 들었다. 그는 최근 광고 촬영 등을 위해 방한했다.



패션무대 종횡무진, 재미 한국인 모델 유혁재

글=강승민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1999년, 유혁재는 투자이민을 결심한 부모를 따라 미국 시애틀로 갔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부산 토박이 초등생은 이민이 뭔지도 잘 몰랐고 친구들과 떨어져 낯선 땅에서 사는 게 마땅치도 않았다. 영어학원 한번 다니지 않았다. 아무런 준비 없이 시작한 타국 생활이었다. “영어를 못하니 학교에서도 따돌림을 당했죠. ‘한국으로 보내달라’고 부모님에게 떼를 쓰며 영어를 안 배우고 버텼어요. 어차피 한국으로 곧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학교에선 영어로 욕을 하며 그를 괴롭히는 친구들을 무작정 때렸다. 맞벌이에 바빴던 부모가 교장실로 호출되기 일쑤였다. “학교에 불려 온 부모님이 타이르시더군요. ‘영어를 할 줄 알면, 너도 친구들 때리지 않고 말로 맞받으면 될 것을….” 부산에선 반에서 줄곧 우등생으로 부모에게 순종적이었던 그는 이내 마음을 고쳐 먹었다. “타국에서 힘들게 일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학교 도서관에 무작정 가서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어요. 뜻도 모르는데 계속 읽고 또 읽었죠. 영어를 잘 못하는 학생을 위한 선생님이 따로 계셨는데 그분께도 매달려 도와달라고 했고요.”



 마트 종업원으로 시작해 대형마트를 인수하며 자리 잡기까지 유혁재의 부모는 밤낮없이 일했다. 사업이 잘되는가 싶더니 그가 대학에 진학할 무렵엔 그마저도 어려워졌다. 치과의사인 자형을 보며 “너도 치과의사가 되라”는 부모의 뜻에 따라 미시간대에 진학한 게 2008년이었다. 아르바이트로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 가며 공부했지만 형편이 좋지 않은 집안 사정도 계속 외면할 수는 없었다. “2010년 4월 일단 휴학을 하고 뉴욕으로 갔어요. 뉴욕 남쪽 뉴저지에 자리 잡은 부모님을 도우며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서였죠.” 한인이 운영하는 요거트 아이스크림 가게, 한국음식점, 책방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뉴욕 컬럼비아대에서 짬짬이 여름학기 수업을 듣고 지냈다.



 패션 모델이 된 건 ‘길거리 캐스팅’ 덕분이었다. 키 1m89㎝, 농구와 축구로 다져진 탄탄한 몸매의 그를 알아본 한 스카우터의 눈에 띈 것이다.



 “젊은 사진가 겸 모델 기획자 샤미어 칸에게 거리에서 명함을 받았어요. ‘사기꾼이려니’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죠. 패션에 별 관심도 없었거니와 한 번도 모델을 꿈꾼 적이 없었으니까요.” 가을로 접어들 무렵 여름학기 수업이 끝나 미시간으로 돌아가려다 지갑에 꽂아둔 채 잊었던 스카우터의 명함을 다시 발견했다.



 “부모님께 의향을 물었죠. 당연히 반대하셨고요. 그런데 그냥 호기심이 생기더라고요. 무작정 찾아가서 만났더니 그날로 사진을 찍자더군요. 허름한 건물 옥상에서, 그냥 제가 입고 있던 평소 차림으로 사진을 몇 장 찍었어요. 아직도 그중 한 장은 제 이력서에 쓰이고 있죠.”



 그렇게 시작한 모델 생활은 처음부터 순탄하게 풀렸다. 유명 모델들이 다수 속해 있는 기획사 ‘메이저’에 둥지를 틀었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미국 브랜드 ‘타미힐피거’의 여름용 카탈로그 촬영에 투입됐다. 3시간에 걸친 촬영, 네 벌의 옷을 입었고 2500 달러를 벌었다. 일식집에서 5시간을 꼬박 일해야 60달러를 벌던 대학생에겐 생각지도 못한 큰돈이었다. 연달아 패션잡지 ‘보그’의 일본판 화보도 찍었다. 당시 화보 기획엔 팝스타 레이디가가의 스타일리스트가 참여했다. 단번에 업계의 주목을 끌 만한, 신인으로선 엄청난 기회였다. 이후 미국 뉴욕, 이탈리아 밀라노, 프랑스 파리의 쟁쟁한 브랜드 패션쇼 무대에 섰다. 그는 자신이 광고주, 패션 디자이너, 패션 기자들의 눈에 든 이유를 “아직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여전히 서양 모델 위주인 세계 모델계에서 몇 안 되는 동양인으로 무대에 선 지 4년째.



 “여전히 (신인처럼) 떨리고 흥분된다”는 게 현재 그의 심경이다. “모델은 언제 어디서나 자신을 어떻게 몸으로 표현해야 할지 알아야 하는 직업”이라고 정의한 그는 “아시아 모델에게 조금씩 더 기회가 넓어지고 있는 게 최근 패션계의 뚜렷한 흐름”이라고 말했다. “저 말고 몇몇의 다른 동양인 모델들도 활약 중이죠. 또 몇 년 후면 제가 아직 서지 못한 또 다른 세계적인 브랜드 패션쇼 무대에 설, 한국인 후배 모델들도 분명히 나올 겁니다. 조만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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