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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밭 가운데 앉아, 산과 바다를 얻었다

제주 ‘플로팅 L’은 귤나무 밭 위에 떠 있는 집이다. 집 오른쪽으로 서귀포 앞바다가 훤히 보인다. 거실에 놓인 툇마루는 통창 너머 베란다까지 이어져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쉼터 역할을 한다. [사진 건축사진작가 진효숙]
건축가에게 ‘집 짓기’는 또 하나의 성장기다. 건축가 조재원(43·사진)에게 제주돌집 ‘플로팅 L’이 그랬다. 그는 3년 전, 제주 바다가 내다보이는 귤나무 밭 위에 이 집(서귀포시 중문동)을 지었다.



젊은 건축가들과 함께하는 즐거운 집짓기 ⑤ 조재원 ‘플로팅 L’
경사진 땅 모양 그대로 살려
제주도 현무암·삼나무 사용
외관은 심플, 창은 과감하게

 조씨는 운 좋은 건축가였다. 건축주가 고모 내외였다. 20여 년 전, 미국인과 결혼해 미국에서 살고 있는 고모는 제주로 신혼여행을 왔었다. 부부는 은퇴 후, 제주와 미국을 오가며 지내길 원했다. 이 집은 일종의 ‘세컨드 하우스’다.



 까다롭지 않은 건축주가 요구한 건 세 가지였다. 제주의 재료를 쓰고, 사람들이 모여 쉴 수 있는 공간과 벽난로를 만들 것. 나머진 건축가에게 일임했다. 땅을 구하는 것도 건축가의 몫이었다.



 조씨가 지인을 통해 알게 된 이 땅은 왼쪽으로 한라산, 오른쪽으로 바다가 보이는 귤나무 밭이었다. 도로면적을 포함해 1238㎡(약 374평) 규모의 땅은 변화무쌍했다. 시커먼 현무암이 곳곳에 박힌 땅의 경사 차이는 6m나 됐다.



 ◆귤밭 위에 떠 있다= 통상 건축은 터 파기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건축가는 이 방정맞은 지형을 살리기로 했다. 땅 위에 집을 띄웠다. 처음엔 지형에 따라 복잡한 모양의 집을 구상했다. 그런데 집의 구조가 복잡할수록, 아름다운 제주의 풍경을 바라볼 여유가 사라지는 것 같았다.



 조씨는 “수백 개의 모형을 만든 결과, ‘L자형(92.5㎡·28평)’의 심플한 외관으로 정했다”고 말했다.



 대신 창을 적극 활용했다. 창이 제주의 풍광을 담은 액자 역할을 하도록, 대지처럼 변화무쌍하게 창을 냈다. 그는 “화장실 변기나 침대에 앉아서, 거실에 앉거나 섰을 때 다른 풍경을 마주할 수 있게 고민했다”고 했다.



 L자 집을 앉힐 곳의 귤나무만 잘라냈다. 침실 창엔 벚나무가, 화장실 욕조 천창 곁엔 소나무가 바짝 붙어 있다. 집 현관에 이르려면 귤나무를 지나야 한다. 제철이면 탐스럽게 달린 귤 하나를 툭 따 까먹으며 집 안에 들어설 수 있다. 그렇게 집은 원래 땅에 슬며시 들어섰다.



 건축주의 요구대로 거실에 벽난로를 설치했다. 사람들이 모여 쉴 수 있게 툇마루를 만들었다. 이 마루는 거실을 이면으로 둘러싼 베란다 밖으로 뻗어 있다. 집 안팎의 툇마루에 앉아 제주의 거센 바람을, 뜨고 지는 해를 마주할 수 있다.



 가구는 삼나무로 직접 만들었다. 제주의 삼나무는 바람에 맞서, 귤나무를 재배하기 위한 방풍림으로 흔히 쓰인다. 조씨는 값은 싸지만 재질은 무른 이 나무를 오랫동안 말려 근사한 가구로 만들었다. 덕분에 은은한 향이 실내에 감돈다.



 내부 마감은 벽지 대신 페인트로, 바닥재는 타일로 했다. 습기와 바람에 견디기 위해서다. 건물 입구 외벽은 현무암을 썼다. 건축가가 육지에서 가져온 재료는 화장실 거울과 그 위에 설치한 등, 거실의 벽난로뿐이다. 조씨는 “제주에서 조달할 수 있는 재료로 제주의 사람들과 소통하며 집을 지었다”고 했다.



 집은 6개월 만에 준공했다. 가구 제작이며 집 내부를 꼼꼼히 채우는 데 1년이 더 걸렸다. 이렇게 만든 집은 2010년 제주 건축문화대상 주거부문 본상을 수상했다.



① 거실 툇마루를 포함해 모든 가구는 삼나무로 만들었다. ② 주출입구 벽면은 현무암으로 마감했다.
 ◆제주에서 산다는 것=건축가로써의 일은 끝났다. 이어 도시인 조재원의 제주 생활기가 시작됐다. 그의 고모 내외는 일 년에 한 두 달 가량 이 집에서 머문다. 제주에서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그는 한 달에 한 두 차례씩 제주로 내려와 집을 돌본다. 그가 실제 살고 있는 곳은 수도권의 아파트다.



 도시생활에 익숙한 그에게 ‘플로팅 L’에서의 생활은 낯설었다. 당장 귤나무를 가꾸는 것도 일이었다. 한 해 내버려둔 결과, 귤나무는 잔뜩 귤을 생산했고, 이듬해 열매 맺기를 중단했다. 몸살이 난 것이다.



 그렇게 직접 부딪힌 자연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계획적인 도시의 삶에 익숙했기에 이 자연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막막했다.



 조씨는 “제주의 사람들은 거칠 것 없이 몸으로 부딪히며 자연을 익혔지만 도시인인 나는 머릿속으로 온갖 시뮬레이션을 그리며, 예측할 수 없는 결과에 대해 두려워만 할 뿐이었다”고 회상했다.



 자연을 알기 위해 서울에서 도시 농부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플로팅 L은 그에게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알려줬다. 최대 효율에 맞춰 지어진 공간 속에 몸을 구겨 넣고, 살기에 바쁜 도시와 달랐다.



 거주공간에 따라 삶은 달라졌다. 직접 집을 짓고 그 속에서 살아본 건축가는 이렇게 고백했다. “집을 짓는다는 것은 또 다른 삶을 기획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던진 질문 하나. “우리는 지금 거주하고 있는 공간 속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제주=한은화 기자



◆건축가 조재원=도시건축연구소 0_1 스튜디오 대표. 서울시 공공건축가. 연세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네덜란드 베를라헤 건축대학원을 나왔다. 2011년 대구 동구 어울림극장으로 대한민국 공공디자인 대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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