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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안 된 것으로 된 것이고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벌써 2월이다. 새해 첫 한 달이 무엇 하나 건진 것도 없이 그야말로 베잠방이 방귀 새듯 후딱 지나갔다. 2013년을 맞이해 그래도 한두 가지 목표는 세웠었는데, 이미 흐지부지다. 곧 설날이 닥쳐오니 다시 마음을 가다듬어 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이미 싹수가 노란 터에 엄두를 내기조차 면구스럽다. 따져 보면 지난 한 달뿐이랴. 작년, 그리고 재작년, 나아가 지난 세월 전체가 못 이룬 것 투성이다.



 하지만 내심 반발이 일어난다. 못 이뤄서 어쨌단 말인가. 못 이룬 가운데 그럭저럭 이뤄진 것 또한 적지 않다. 내가 주도해 이뤘다기보다 어영부영하는 사이에 ‘이루어진’ 것들이다. 게다가 이루고 못 이루고에 상관없이 이제까지 살아왔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성사(成事)다. 일본의 원로작가 이츠키 히로유키(五木寬之·81)는 내 삶을 좌우하는 무언가 커다란 힘을 ‘타력(他力)’이라 표현했다. 그 말이 맞기는 맞는 것 같다.



 부모형제가 일찍 세상을 뜨는 등 어려서부터 신산(辛酸)한 삶을 살아온 이츠키는 “인간은 그저 하는 일 없이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힘든 법”이라고 말한다. “안 되는 건 안 되고, 못하는 건 못한다. 개인의 노력이나 선의도 보답받지 못할 때는 보답받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그런 경우가 많은 게 인간세상”이라고 냉정하게 자른다. 암도 낫는 건 낫고 낫지 않는 건 낫지 않는다. 그렇다고 개인의 준비나 노력이 필요 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바람이 불어왔을 때 나룻배의 돛을 내리고 앉아서 졸고 있다면 달릴 기회도 놓치게 된다”고 충고한다(이츠키 히로유키 『타력』).



 1월의 끝자락에 겨울휴가를 다녀왔다. 일본 혼슈(本州) 최북단 아오모리(靑森)현은 생전 처음이다. 나흘간 온천을 질리도록 들락거렸다. 흰 눈을 이고 지고 덮은 겨울 숲을 노천온천 탕 속에서 바라보노라니 시간이 이대로 멈췄으면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만큼 내가 다른 많은 직장인들이 그러하듯 ‘안달복달 증후군’에 중독돼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울리히 슈나벨은 진정한 휴식의 조건으로 다음 두 가지를 들었다. 자신이 시간의 주인이 되는 느낌을 가질 것, 그리고 새로운 가능성과 대안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일을 현명하게 포기할 줄 알 것이다. 이츠키의 지론과 상통하는 면이 있다. 부정 속의 긍정이요, 체념 속의 의지다.



 비슷한 깨달음의 글귀를 얼마 전 김기택·이진명 시인 부부와 같이 식사를 하다 얻어들었다. 저작권자인 이진명 시인께 허락을 받아 소개하면,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안 된 것으로 된 것이고,’이다. 이 시인은 글귀가 문득 떠오르고 나서부터는 무슨 일이 생겨도 담담해진다고 말한다. 바닥을 쳐본 이의 내공이 느껴진다. 그런 경지에 이르지 못한 내게도 희망은 듬뿍이다. 올해가 아직 11개월이나 남았다.



글=노재현 기자

사진=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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