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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독학으로 이창호 누른 ‘미스터리 13세’ 신진서

신진서는 인터넷을 스승 삼아 혼자 바둑을 익힌 탓에 바둑 스타일도 교과서적이 아닌 ‘괴초식 바둑’이다. 이 점이 더 큰 기대를 갖게 한다. [권혁재 기자]


바둑을 무지무지하게 잘 두는 꼬마는 또래 아이들과 어떻게 다를까. 신진서를 만나러 응암동 충암바둑도장으로 가면서 계속 머릿속을 맴돈 궁금증이다. 신진서는 여러 가지 미스터리를 지닌 소년이다. 우선 나이에 비해 바둑이 너무 세다. 신진서는 2000년 3월 17일생으로(만 13세) 국내 280명 프로기사 중 최연소다. 지난해 최초로 시행된 영재 입단대회에서 12연승을 거두며 신민준(1999년생)과 함께 프로가 됐다. 올 초 열린 영재-정상 대결에서 이창호 9단을 격파해 세상을 놀라게 한다. 변상일-신민준-신진서 3명의 영재 대결에서 1위를 했고 중국 최정예와 벌인 한·중 교류전에서도 5승3패로 좋은 성적을 거뒀다. 만 14세에 세계 4강에 오른 중국 최고 신예 셰얼하오를 꺾은 것은 특히나 좋은 징조였다. 중국의 인해전술에 밀리기 시작한 한국 바둑에 회심의 미소를 짓게 만드는 엄청난 ‘재목’이 나타난 것이다.

지난해 12연승으로 영재 입단대회 통과 … 국내 최연소 프로



지난해 이미 실력을 보여준 이동훈(98년생)-변상일(97년생)에 이어 신민준-신진서가 등장하며 한국 바둑의 미래는 잿빛에서 분홍빛으로 바뀌었다. 진짜 미스터리는 따로 있다. 스승이 따로 없이 ‘독학’으로 경지에 올랐다는데 이것만은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부산에서 자라며 ‘인터넷 바둑’으로 실전을 익혔고 4학년 때부터 전국 어린이 대회를 휩쓸었다. 신진서가 충암바둑도장에 와 한종진(프로 8단) 사범으로부터 지도를 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3월부터다. 도장에서 자란 다른 소년 고수들과 궤적이 다르다.



 바둑 스타일도 매우 독특하다. ‘괴초식’이란 이름이 붙을 정도로 상상을 절하는 수를 잘 둔다. 프로들은 이 점을 특히 높이 사고 있다. 1월 29일 충암도장에서 만난 신진서는 지난해 7월 입단할 때에 비해 키가 부쩍 자란 모습이었다. 갸름한 얼굴에 장난기를 띤 초롱초롱한 눈이 예뻤다. 가늘고 긴 손은 피아니스트의 손을 연상케 했다. 조용히 맞은편에 앉은 신진서가 어른보다 더 차분한 자세로 질문을 기다린다.



 -만화책은 보나. 좋아하는 TV프로는?



 “주변에 만화책이 없는데요. TV는 크게 재미있는 것이 없고요, 좋아하는 프로도 딱히 없는데요.”(부산 사투리가 살짝 섞인 말투가 조용조용 이어진다. 다른 13세 소년들과는 너무도 다르다. 바둑을 두면 이렇게 차분해지는 걸까. 지난해 입단 인터뷰에서 했던 ‘바둑’에 대한 대답이 떠오른다. 신진서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바둑을 미치도록 좋아한 적도 없고 그렇다고 싫어한 적도 없어요. 주변의 공기처럼, 옷처럼 바둑은 그냥 제게 생활이에요.”)



 -바둑은 언제 누구에게 배웠지. 아버지가 바둑학원을 했으니 꽤 고수겠네.



 “아버지는 아마 5단인데요, 학원을 20년 하셨어요. 바둑은 5살 때 엄마한테 배웠어요. 엄마는 3급이에요.”(처음 배운 뒤 1년 후 1급이 됐고 주로 인터넷에서 실전을 익혔다. 지금도 인터넷 바둑을 많이 둔다. 때로는 새벽까지 둔다. 지난해 3월 부산 생활을 접고 신진서의 뒷바라지를 위해 가족이 서울로 이사 왔다. 지난 1년간의 도장 생활에서 실력이 부쩍 늘었다.)



 -또래 하고는 잘 어울리나. 주로 뭐 하고 노나.



 “복기하고 사활 문제도 풀고, 그렇게 지내요.”(놀이에 대해선 그냥 미소를 지은 채 대답이 없다. 허장회(프로 9단) 원장이 “법이 바뀌어 요즘엔 프로 선수들도 의무적으로 학교에서 오전 수업을 한다”고 말한다. 또래들과 어울릴 기회가 많다는 얘기다. 하지만 진서는 주로 선배 프로들과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바둑 연구를 하며 보낸다. 공부 그룹이 실력에 따라 나뉘기 때문인데 특히 신진서는 수양이 잘되어 있다는 한종진 8단의 설명이다.)



 -지난 1월 처음 중국에 갔는데 중국 기사들과 대국해본 소감은.



 “매너가 좋은 기사들도 있지만 나쁜 기사들도 꽤 있어 놀랐어요. 상대를 빤히 보거나 자기가 유리한데도 나쁜 척해요.”



 -바둑 스타일이 괴초식이라던데 자신의 스타일을 평한다면.



 “(씩 웃으며) 실제로 마구잡이 전투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에요. 굳이 예를 든다면 박정환 9단을 닮지 않았을까 생각해요.”(한 살 위의 신민준은 두터운 바둑을 구사한다. 그 역시 뛰어난 재목이다. 신진서는 불리할 때 예측불허의 수법으로 판을 흔드는 능력, 즉 ‘흔들기’가 발군이다. 흔들기는 조훈현 9단과 이세돌 9단의 전매특허다.)



 -이창호 9단과 이세돌 9단 얘기를 부모님에게 많이 들었겠지.



 “( 고개를 흔들다가 재차 물으니) 아버지가 인품은 이창호 9단을 닮고 바둑 스타일은 이세돌 9단을 닮으라고 한 적이 있어요.”



 -가장 존경하는 기사가 이창호 9단이라 했는데 그와 대국할 때는 어떤 느낌이었나.



 “배우는 바둑이었어요. …그래도 승부는 승부니까 열심히 두었던 것 같아요.”(이창호와의 대국은 신진서의 다른 면, 즉 정밀한 계산 능력과 세기(細技)를 보여줬다.)



 -바둑 공부 중 가장 재미있는 것은.



 “실전이 가장 재미있고요, 사활도 재미있어요.”(현현기경을 7살 때 봤는데 한 문제를 놓고 몇 시간씩 씨름한 적도 있다고 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들어봤나. 재미있지.



 “(덤덤한 어조로) 들어는 봤어요. 뭐랄까…신경은 안 써요.”



 -바둑의 길로 들어섰으니 근사한 목표를 정했겠지.



 “부모님과 사범님들이 자만심 갖지 말고 하루하루를 열심히 하라고 말씀하세요.”



 신진서를 인터뷰하다가 기자가 손을 들었다. 인간의 뇌는 도대체 몇 살에 절정에 이르는 걸까. 바둑은 아이들의 사고력을 어디까지 증진시킬 수 있을까. 수많은 유명 기사들이 배출된 충암도장에서 신진서는 그 일부가 된 듯 차분하고 의젓했다. 너무 의젓해서 걱정이었다. 40년간 도장을 운영해온 허장회 9단은 이렇게 말했다. “도장 생활이 이곳이 처음이라 조심하는 거예요. 진서의 진정한 장점은 고정되지 않고 출렁출렁하는 것이지요. 상상력이 놀라워요. 그게 진서의 비범성입니다. 지금도 강하지만 어떻게 변할지 모르죠.”



 당대 일인자인 이세돌 9단과 선(先)으로 내기 바둑을 두면 누가 이길까. 이 이상한 질문에 도장 사범인 김영삼 9단과 한종진 8단은 “지금이라면 이세돌 쪽일까요?”하더니 이렇게 덧붙인다. “그 얘기는 진서가 6집만 늘면 무적이 된다는 뜻도 됩니다.”



글=박치문 전문기자

사진=권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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