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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준 “죄 안 지었지만 존경받는 총리 되긴 틀렸다”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차량 뒷좌석)가 29일 오후 총리 후보 사퇴 의사를 밝힌 뒤 서울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29일 오후 7시 김용준 총리 후보자의 사퇴는 지난 24일 지명 발표 때만큼 갑작스러웠다. 하지만 이상 징후는 오전부터 감지됐다.

 김 후보자는 이날 아침 8시30분쯤 무악동 자택을 나서 통의동 사무실로 향했다. 평소 오전 7시쯤 출근하던 것에 비하면 1시간30분이나 늦은 시각이었다. 매일 해오던 아침 수영도 걸렀다. 오전 9시쯤 자신의 청문회를 위해 사무실에 나와 있던 총리실 관계자들에게 "그동안 수고가 많았다”며 사퇴의 뜻을 내비쳤다. 이어 점심 무렵 유일호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당선인과의 면담 시간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박 당선인이 아웅산 수치 여사를 면담한 직후인 오후 2시30분쯤 당선인을 만나 후보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 두 사람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박 당선인도 김 후보자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고 있어 적극적으로 사퇴를 만류하진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김 후보자는 오후 3시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에서 열린 인수위 법질서사회안전분과 국정과제 토론회에 참석했다. 하지만 평소와 특별히 다른 점을 보이지 않아 참석자들은 김 후보자의 사퇴를 눈치 채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곤 오후 6시8분 김 후보자는 인수위 윤창중 대변인을 불러 사퇴 발표문을 정리했다.

 김 후보자는 전날 새누리당 지도부와 만난 자리에서 “아들 병역과 관련해선 (국민이)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적법한 절차라 의혹을 말끔하게 해소할 수 있다”면서도 “재산 문제는 예상하지 못한 문제여서 자료를 준비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리겠다”고 말했다. 이때만 해도 김 후보자가 하루 만에 사퇴로 선회할 것으로 짐작한 사람은 없었다.

  김 후보자가 사퇴를 결심한 배경은 부동산 투기 의혹과 두 아들 병역 면제 논란이 확산되면서 인사청문회 통과가 만만치 않다는 판단을 내린 것은 물론 설령 통과되더라도 사실상 많은 상처를 입게 될 것이란 점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김 후보자는 박 당선인으로부터 총리 후보 지명을 통보받기 전까진 자신이 총리로 갈 것이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인사검증 문제에 대해선 아무런 대비가 없었던 것 같다. 김 후보자는 후보 지명 직후 언론에서 편법 증여 등의 의혹을 제기했을 때만 해도 “나는 법적으로 문제 될 일은 하지 않았다”는 시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의혹이 계속 꼬리를 물고 커지자 최근 한 지인에게 “난 죄를 지은 적이 없다. 그러나 존경받는 총리가 되긴 틀렸다”고 착잡한 심정을 토로했다고 한다. 그는 이날 사퇴 발표문에서 “상대방의 인격을 최소한이라도 존중하면서 확실한 근거가 있는 기사로 비판하는 풍토가 조성돼야 한다”며 언론 보도에 불만을 표시했다.

 새누리당 분위기가 돌아서고 있는 것도 김 후보자에게 부담이 되었을 것이란 분석이다.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은 이날 CBS라디오에 출연해 “가장 수준 높은 도덕성, 법 원칙, 대쪽 같은 소신이 김 후보자의 트레이드 마크였는데 그게 사라져버린다면 남는 게 뭐가 있겠느냐”며 “이번 청문회 역시 결코 쉽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부동산이나 병역 문제는 위법 여부를 따지기 이전에 국민 정서와 직결된 사안이어서 자신이 아무리 해명한다고 해도 이런 여론을 되돌리기 어렵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자신의 임명동의안 처리가 난항을 겪을 경우 새 정부 조각 일정이 줄줄이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어 박 당선인의 부담을 덜기 위해서라도 조기 사퇴가 불가피했다는 분석도 있다.

 일각에선 김 후보자가 고령(75세)을 우려하는 언론의 지적에도 압박감을 받았을 것이란 말도 나온다. 윤 대변인은 “김용준 인수인원장이 위원장직 문제에 대해선 대통령 당선인의 결심에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지만 김 후보자가 인수위원장직도 정상적으로 수행하기 어려울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하지만 이정현 당선인 정무팀장은 “김 후보자는 인수위원장직 사퇴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며 "당선인이 김 후보자를 총리 후보에서 (강제로)사퇴시킨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인수위원장직은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인수위 활동이 중반을 넘어선 시점에서 새 인수위원장을 찾는 것이 어렵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그럼에도 김 후보자가 너무 큰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인수위원장직을 유지하더라도 사실상 ‘식물위원장’ 신세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김 후보자는 이날 오후 6시쯤 인수위 기자실에 400인분의 떡볶이와 귤을 돌렸다. 한 시간 뒤 그것이 작별 인사였음이 드러났다.

김정하·류정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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